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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동자들의 투쟁과 삶 고려대분회 서재순 부분회장:
“해마다 싸운 덕에 변화가 생겼어요”

다음은 노동자연대가 3월 8일 주최한 ‘[3·8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집회] 차별과 착취에 맞선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연설한 내용을 녹취한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고려대분회 서재순 부분회장 ⓒ이미진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고려대분회 부분회장 서재순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투쟁 장소에서 조합원들 앞에서만 얘기해 봤지, 이렇게 초대받아서 얘기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에요. 제가 두서없이 말해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2009년에 알바로 고려대에 고용됐어요. 청소 노동자는 비정규직인데 여성이 훨씬 많아요. 임금이 적은 데는 항상 여성이 있어요. 그렇죠?

제 아이가 지금 서른 살이에요. 그런데 제가 아이들을 키울 때는 아이들 맡길 데가 없었어요. 유치원도 그렇게 많지가 않았어요. 어릴 때부터 아이를 봐주는 데도 동네에 하나 있을까 말까 했어요. 그래서 어떤 때는 아이들을 가둬 놓고 울면서 일 나가곤 했어요.

요즘 많이 달라지고는 있어요. 그러나 여전히 여성들은 집안에서도 힘들고, 밖에 나가서도 힘들어요. 그래서인지 ‘여성이 여성의 적’이라는 말도 나오죠. 고려대분회가 투쟁할 때도, 제가 앞장서서 무슨 일을 하자고 하면, [조합원] 여성들이 반발하곤 해요. 왜 자꾸 투쟁하자고 하냐, 지금 이 임금도 괜찮다. 이런 식으로요.

지금 [대학에서] 청소하시는 분들이 거의 고령이에요. 대개 60살이 넘었어요. 예전에는 나이가 많다고 막 내보내지는 않았지만, 소장님한테 잘 보여야 했어요. 또, 병가 제도가 없었어요. 민주노총 서경지부가 집단교섭을 해서 병가 제도를 만들었어요.

2009년 고려대분회가 투쟁을 했는데, 엄청 큰 투쟁을 처음으로 한 거예요. 그 투쟁 이후 대학의 청소 노동자들이 해마다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서 제일 크게 투쟁하기 시작했어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저희 중에는 최저시급도 못 받는 노동자가 엄청 많았어요. 2011년 서경지부가 집단교섭과 임금 투쟁을 시작하면서 [바뀌었죠.] 고려대나 연세대 등 큰 대학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투쟁한다고 많이 이슈화됐어요.

저희의 시급이 얼마나 오르냐에 따라 최저임금도 조금씩 달라졌어요. 그걸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 저희는 피부로 느껴요. 2011년 투쟁 때, 6월에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광화문이나 서울역에서 열린 집회에 고려대·연세대·홍대·이화여대 등 저희 노동자가 빨간 조끼 입고 어마어마하게 많이 갔거든요. 아시죠?

밤샘 투쟁

저희는 해마다 크게 투쟁했어요. 그 다음 2013년에도 투쟁했고요. 그때는 시급 300원, 500원 올리려고 밤새워 투쟁했어요. [연대하러 온] 학생들까지 밥을 다 해 먹이면서 저희가 이 단계까지 왔어요.

그리고 올해 투쟁을 말씀드릴게요. 최저시급이 오르면 오를수록 학교가 꼼수를 부려요. 배운 사람들이 더 무섭더라고요. 저희처럼 없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우 소중한 시급이] 조금 오르는 것을 어떻게 해서라도 줄이려고 해요. 인원을 줄여서 일을 더 시키려 하고, 단시간 고용 제도를 들여오고요. 8시간 근무해야 되는 근무지에 3시간짜리 노동자를 넣는 것은 사회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 고려대분회는 올해 [퇴직으로 생긴 자리에] 3시간짜리 단시간 노동자가 아니라 8시간짜리 정상 근무자를 넣으라고 투쟁했어요. 1월 1일 새벽 4시부터 나가서 [단시간 노동자의 근무를 저지하는] 투쟁을 시작했어요. 노동자가 먼저 투쟁을 시작했지만, 그 뒤에는 학생들이 있었어요. 학생들이 그 새벽에 나와서 도와 줬기 때문에 저희 고려대분회가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뤘다고 봐요.

저희가 아무리 크게 투쟁해도 [학교는] 저희 목소리를 잘 듣지 않아요. 그런데 저희의 힘인 학생들이 있잖아요. 그 학생들이 진짜 잠도 많은데, 새벽에 나왔어요. 나와서 자더라도요. (청중 웃음) 학생들이 저희에게 큰 힘이 돼요. 고려대 총무과 부장님이 자기한테 가장 무서운 게 학생이래요. [용역들에게] 학생은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했대요.

이 투쟁을 할 때 처음에는 업체가 덩치 큰 젊은 남자들 15~20명씩 데리고 왔어요. 우리한테 [힘으로] 대항하기 위해서요. 몸싸움도 했어요. 당시 있던 학생들하고도 몸싸움이 있었어요. 학생들이 목소리 크게 외치며 싸워 주고, 와서 잠을 자더라도. (청중 웃음) 새벽에 나와서 함께 있어 준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큰 힘이 됐어요. 고려대분회가 이번에 투쟁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뤘고, 홍대도 조금 나아졌어요. 그런데 아직 안정적인 성과는 아니에요.

올해 1월 고려대 청소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공동 결의대회를 열고 인력감축 반대, 단기 알바 투입 반대, 적정인력 확충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진

올해 또 협상해야 하거든요. 매년 퇴직자가 많아서요. 전에는 소장님 마음대로 아무 때고 [노동자들을] 내보냈어요. 마음에 안 들면 내보내기도 했어요. 그런데 노동조합이 생기고 나서는, 소장님들이 많이 바뀌었어요. 저희가 집단교섭으로 정년을 70세로 만들어 놨는데, 이제 [노동자들이 나이가 드니까] 해마다 점점 퇴직자가 많아져요. 그래서 해마다 투쟁이 커질 것 같아요.

또, [얼마 전] 9차 임금 교섭이 끝났어요. 쟁의조정에 들어갔고요. 이제 [조합원] 찬반투표를 해서 임금 투쟁에도 들어가야 해요. 여러 투쟁을 해 봤지만, 임금보다 퇴직자 자리 지키는 투쟁이 더 힘들더라고요. 저희도 투쟁하겠지만, 여러 동지들이 도와 줘야 저희가 승리할 수 있어요. 연대해 주지 않으면, 고려대분회가 아무리 잘났어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학교가 학생과 우리에게 만날 하는 말이, 등록금이 8년째 동결돼서 학교 재정이 어렵다는 거예요. 도저히 노동자 월급을 줄 수가 없대요. 그래서 매년 퇴직으로 생기는 자리에 단시간 노동자를 넣을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저희의 싸움이 젊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봐요. 그래서 앞으로 이 투쟁에 여러 동지들이 도와 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