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조선 파업 현장 취재:
문재인 정부의 대량해고 지시에 저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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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도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 선 STX조선 노동자들이 3월 26일 무기한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채권단(산업은행)이 노조에 통보한 자구안 합의 시한은 4월 9일. 그때까지 생산직 노동자의 무려 75퍼센트를 자르고, 700여 명 가운데 170명만 남기는 구조조정을 수용하라는 것이다. 안 그러면 법정관리로 넘기겠다는 협박을 하고 있다.
3월 26일 전면 파업 첫날, 노동자들은 공장에 집결해 간단히 집회를 하고 창원 시내 곳곳에서 대시민 홍보전을 벌였다.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문재인 대통령! 1년이 지난 지금 좋은 일자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노동자 다 죽이는 잘못된 정부 정책! 구조조정 박살 내자!”
길가 한 켠에 노동자들이 줄 지어 서서 커다란 현수막 수십 개를 펼쳐 들었다. 나는 함께 현수막을 들고 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노동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지금 STX조선에서 정규직 500명을 자르고 그 자리를 하청 노동자들로 채우겠다고 합니다. 모두 비정규직으로 만들겠다는 겁니다. 이명박·박근혜와 다른 게 뭐랍니까?”
STX조선은 한때 잘 나가던 조선업체였다. 2008년 클락슨(영국의 조선·해운업 전망기관)이 발표한 조선업체 순위에서 세계 4위를 기록했다. 노동자들의 피땀이 일군 성과다.
그런데 2008년 세계경제 위기의 여파로 STX조선도 타격을 입었다. 사측이 이윤 확대를 위해 시도한 해외 투자가 오히려 수익성을 갉아먹는 악재로 작용하고, 미친 듯한 경쟁 속에 늘린 저가 수주가 또 발목을 잡았다. 정부는 이를 정책적으로 지원하며 부실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하루에도 수억 원씩 손실이 나던 해양플랜트 공사를 보면서, 우리는 ‘저 돈으로 우리 월급이나 제대로 주지’ 했습니다. 그런 투자를 우리가 결정했습니까? 왜 우리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웁니까?”
벌써 다섯 번째 ‘희망퇴직’
위기를 만든 것은 사측과 정부였다. 그런데 지금 그 고통은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돌려지고 있다. 입사 40년차의 한 노동자는 울분을 토했다.
“저는 사번이 1번입니다. 40년 동안 일했습니다. 나는 실수 하나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을 구조조정 한다니, 눈물이 납니다.”
STX조선은 2013년 자율협약(구조조정 프로그램 중 하나)을 시작으로 노동자들을 공격했다.
“2013년 이후 벌써 다섯 번째 희망퇴직입니다. 전체 정규직이 3600명에서 지금은 1300명도 안 됩니다. 그 사이 비정규직도 5000명에서 1000명으로 줄었어요.”
“임금이 2011년부터 동결됐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상여금도 일부 반납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연봉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어요.”
노동자들은 지난해부터 7개월씩 돌아가며 순환 휴직을 해 왔다. 평균임금의 70퍼센트를 받지만 생계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그중 1개월가량은 무급으로 쉬어야 했다. 현재 휴직 중인 한 노동자는 말했다.
“임금이 적으니 보험 깨고 근근이 살 수밖에 없어요. 휴직 기간에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이중 취업은 ‘불법’이라] 회사에게 해고의 빌미가 될까 걱정돼서 하지도 못합니다.”
사측이 실시한 ‘희망퇴직’은 노동자들의 삶을 파괴했다.
“몇 달 전에는 2년 전 ‘희망퇴직’을 쓰고 나갔던 제 동료가 자살을 했어요. 자식도 셋이나 있는데,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건 자살이 아니에요. 회사가 죽인 거죠. 그런데 뉴스에 한 줄도 안 나오더라고요. 한국GM 노동자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연대
전면 파업 둘째 날인 3월 27일, STX조선 노동자들은 창원 시내에서 행진을 하고 민주당 경남도당 사무실 앞에서 집회를 했다.
집회가 시작될 즈음, 노조 간부와 일부 조합원들은 민주당 경남도당 사무실에 들어가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그리고 기습적으로 당직자들을 밀어내고 농성을 시작했다.
“내가 당신들을 뽑아 줬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우리를 어떻게 배신할 수가 있어!” 노동자들은 성난 분노를 토해 냈다.
민주당사 밖에서 대열을 짓고 있던 노동자들은 점거 소식에 환호했다. “일자리 대통령이라면 있는 일자리라도 제대로 지켜라!”
금속노조 홍지욱 경남지부장은 4월 9일 대의원대회를 열어 연대 투쟁 계획을 논의하고 4월 27일 창원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금속노조의 연대는 절실하고 매우 필요한 일이다. 중형 조선소, 한국GM 등 곳곳에서 구조조정 공격이 진행되는 지금, 금속노조가 구조조정 저지 투쟁을 앞장서 조직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경남지부의 투쟁 계획은 공격을 막아 내기에는 상당히 부족해 보인다. 정부와 STX조선 사측이 4월 9일까지 자구안을 수용하라고 압박하는 상황에서, 서둘러 실질적 연대가 조직돼야 한다. 금속노조 지도부는 그동안 “현장 투쟁”이 부족하다고 말해 왔는데, 이것이 핑계가 아니었다면 STX조선 노동자들이 전면 파업에 나선 상황에서 연대 파업으로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STX조선 구조조정은 조선업을 비롯한 전체 금속 노동자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3일 현대중공업 사측이 대규모 희망퇴직 계획을 발표한 데서 보듯, 조선업 빅3에서도 사용자들은 인력 감축, 순환 휴직, 외주화, 임금 삭감 등을 추진하고 있다. 중형조선소 구조조정을 막는 투쟁은 다른 노동자들의 조건을 방어하는 데서도 중요하다.
STX 사측은 3월 31일까지 ‘희망퇴직’, 아웃소싱(비정규직화)에 115명이 신청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제 권고사직을 실시할 것이라고 한다.
투쟁의 전진
4월 2일 다시 만난 노동자들은 이를 거부하고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는 희망퇴직을 하지 않으면 정리해고를 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퇴직 위로금도 줄 수 없다고 협박했어요. 이거라도 받자며 일부가 나간 거죠.”
“사측은 지난해에도 권고사직을 실시했어요. 명단을 발표한 뒤 사직을 거부한 동료에게 ‘네가 버티니까 계속 공격이 들어온다’는 압박이 가해졌어요. 회사가 정말 교묘하게 노동자들을 갈라 놓더라고요.”
“관리자들은 우리더러 회사를 생각해서 희생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내가 없는 회사가 무슨 소용입니까? 우리는 더 잃을 것도 없습니다. 끝까지 싸울 겁니다.”
일각에서는 임금이나 복지 후퇴는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설사 임금 양보로 당장 소나기를 피할 수 있게 되더라도, 그것은 지속 가능한 고용 보장책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STX조선 노동자들 자신의 경험이기도 하다.
일부 노동자들은 투쟁 수위를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잘리면 갈 데가 없습니다. 정부가 끝내 인력 감축을 포기하지 않으면, 공장 문을 걸어 잠그고 파업을 해야 합니다. 점거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들이 조금씩 나옵니다.”
어떤 노동자들은 〈노동자 연대〉가 일자리 보호를 위한 대안으로 제시한 국유기업화, 이를 위한 공장 점거와 연대의 필요성에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권고사직이 시작돼 노동자들이 ‘산 자’와 ‘죽은 자’로 갈라지기 전에 점거파업에 나선다면 정부와 사측의 이간질에 맞서고 연대를 확대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