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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돈벌이 우선하는:
‘의료산업 활성화’ 대책 중단하라

민감한 개인 정보를 기업 돈벌이에 쓰게 해준다? 누구 마음대로? ⓒ출처 보건복지부

세월호 참사 4주기 다음날인 4월 17일,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이 주최한 ‘신의료기술평가제도 발전 방안 모색을 위한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보건복지부는 올 하반기에 신의료기술의 ‘선 진입 후 평가’ 제도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문재인 정부의 ‘포괄적 네거티브 시스템’(사전허용-사후규제)이다.

보건복지부가 3월 30일에 확정 발표한 “2018년 제약, 의료기기, 화장품 산업 육성지원 시행계획”에도 이런 규제 완화 조처가 담겨있다. 이 계획을 보면, ‘첨단의료기술’을 의료시장에 신속하게 진입시켜 일단 병원 현장에서 일정 기간 사용한 후 재평가를 받도록 한다. ‘첨단바이오’ 의약품도 허가·심사를 신속히 처리해 국가 주도로 시판 후 안전관리를 한다. 신약의 경우 식약처의 승인 없이도 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예외를 늘려 나간다고 한다.

‘공익 목적’으로 수행되는 임상시험 비용은 건강보험에서 지급한다고 한다. 나중에 신약과 의료기기를 팔아서 얻는 이익은 제약회사들이 챙기더라도 말이다.

이런 계획들이 시행되면 환자들은 안전성과 유효성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은 의료기기와 약을 사용해야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는 환자들을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의료기기·제약 업체의 임상시험 대상으로 만드는 꼴이다. 그것도 건강보험 재정으로 말이다. 의료기기·제약 업체에게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비극이 여전한데도 문재인 정부는 안전은 뒷전인 ‘규제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사람 중심’을 표방하고도 정작 기업들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것이다.

보건의료 빅데이터 = 개인 질병정보의 상업화

또 다른 기업 챙기기는 ‘보건의료 빅데이터’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산업통상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보건복지부까지 나서서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기업들에 제공하는 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보건의료 빅데이터는 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립암센터, 질병관리본부 등 공공기관이 쌓아 놓은 임상 자료와 유전체 정보, 그리고 개인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스마트워치 등으로 기록되는 라이프로그(개인 일상) 정보를 일컫는다.

이런 자료는 개인 질병 등 매우 민감한 의료정보를 포함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민간 보험사, 통신사, 제약·의료기기 업체 등은 이 자료를 자유로이 사용하게 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이것을 활용해 개인들을 식별해 수익성 높은 보험상품 만들기, 질환 보유자의 보험가입을 막아 보험 수익률 높이기, ‘신약’ 개발(대부분 기존 약에서 새로운 적응증을 발견하는 ‘신약 재창출’) 등 돈벌이에 활용하려는 것이다.

박근혜는 공공기관이 개인 질병정보를 외부로 유출할 수 없게 한 현행법을 우회하려고 ‘비식별조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이를 추진했다. 법률도 아닌 가이드라인으로 법망을 피해 민감한 정보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 주려 한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손쉽게 폐기할 수 있는 이 가이드라인을 폐기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민간 보험사가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을 출시할 수 있도록 허용해, 보험사들이 개인의 혈당, 혈압, 라이프로그 등 의료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했다. 보험사들은 건강이 증진되면 보험료를 깎아 준다고 사탕발림하지만, 거꾸로 건강이 나빠지면 보험료를 올린다는 얘기일 뿐이다.

빅데이터가 평범한 사람들의 건강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다. 《빅데이터는 거품이다》를 쓴 빅데이터 전문가 김동환 중앙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는 빅데이터 광풍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김동환 교수는 빅데이터가 과거의 자료로서 통계적 상관관계를 보여 줄 수 있지만 인과관계를 확인할 수는 없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이용해 질병을 예측한다는 주장은 과장이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빅데이터 사업에 수백억 원을 쏟아붓는 것보다 복지에 투자하고 공공의료를 강화하는 것이 질병 예방에 더 효과적이다.

정부는 ‘국민건강 증진’, ‘질병 예방’ 같은 그럴 듯한 말로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포장한다. 하지만 대통령 직속의 4차산업혁명위원회와 복지부 등이 “산업적 활용 촉진”을 내세우는 것을 보면 보건의료 빅데이터가 이윤을 위한 것임은 분명하다.

의료 ‘산업계’의 이윤을 위해 평범한 사람들의 건강과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의료산업 활성화’ 대책은 중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