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협상은 이란 핵협정과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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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 예상대로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중단된 대이란 경제 제재를 재개한다고 했다.
이로써 중동의 혼란은 더욱더 가중됐고,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이 일어날 위험도 더 커졌다.
미국의 이란 핵협정 탈퇴는 북·미 정상회담을 비롯한 북핵 협상의 미래 때문에라도 살펴볼 가치가 있다. 백악관 안보보좌관 존 볼턴도 이번 조처가 북한에게도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했다.
2015년 이란 핵협정에 합의하며 서방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차단하는 대신에 대이란 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제하기로 약속했다. 이란은 북한과 달리 핵실험을 하거나 핵탄두 제작에 이르지 못한 상태였지만, 서방 측이 제시한 핵 개발 규제를 받아들였다.
이란 핵협정에는 이란의 협정 준수 여부를 검증하는 조항들이 있었다. 미국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조차 “검증 절차가 매우 강력하다”고 인정할 정도였다. 국제원자력기구도 이란이 협정을 잘 지킨다고 보고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협정에 “일몰 조항” 같은 중대한 결함이 있어서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란이 그런 ‘결함’을 이용하더라도, 핵무기 개발에 이르기에는 꽤 많은 시간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가 이란 핵협정을 파기한 것은 단지 핵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트럼프는 이란의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걸고 넘어졌다. 그리고 핵협정이 시리아·예멘 등지에서 이란이 벌이는 “사악한 행동”을 막지 못했다고 불평했다.
결국 트럼프 정부는 중동에서 이란의 영향력이 제고된 것을 문제 삼는 것이다. 핵협정 탈퇴는 이란의 위상 강화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강경 대응 선언이다.
뒤통수
이란 핵협정의 운명을 보면서, 북한 정부는 앞으로 갈 길이 만만치 않음을 새삼 실감했을 것이다.
이란이 협정을 지키는데도 미국은 협정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이 과정에서 검증 문제가 제기됐다. 트럼프는 기존 합의에 없는 새로운 문제(탄도미사일, 테러 지원)도 제기해 이란을 압박했다. 중동 지역의 정세 변화가 협정을 탈퇴하는 이유임도 숨기지 않았다.
과거 북한도 이란처럼 미국한테 뒤통수를 맞은 적이 많았다. 그리고 이렇게 손쉽게 이란 핵협정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 북한이 또 뒤통수를 맞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 존 페퍼의 지적대로, “워싱턴의 약속이란 그들이 트위터에 적은 140글자의 가치도 없다.”
게다가 북한은 1994년 제네바 협정 당시의 북한도, 2015년의 이란과도 다르다. 핵실험을 6차례나 실시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까지 단행한 국가가 됐다. 적어도 20기의 핵탄두를 제조했으리라 추정되며, 핵탄두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과 고농축 우라늄도 이란과 비교가 안 될 만큼 많다. 북한 핵사찰이 역사상 최대 규모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이다.
따라서 2018년 현재 북한과 미국이 맺을 새 비핵화 합의는 합의 도달, 이행, 검증 등 모든 면에서 1994년 제네바 협정이나 2015년 이란 핵협정보다 수십 배는 더 어렵다.
문턱 높이기
분명 북한은 체제 안전이 보장되면 핵무기를 없앨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새로운 요구를 내놓으면서 협상 문턱을 높이고 있다. 5월 2일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는 미국의 북핵 문제 해결 방침인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에서 “완전하고”를 “영구적이고”로 바꿨다. 애써 표현을 바꾼 것을 보아, 북한의 모든 핵기술과 핵시설을 발본적으로 뽑아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폼페이오, 볼턴 모두 북한의 중·단거리 탄도미사일, 생화학무기 프로그램, 인공위성 발사까지 협상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 일각에서는 북한 인권 문제도 거론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트럼프 정부의 이런 요구 추가하기가 정상회담을 앞두고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술일 뿐이라고 본다. 그러나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지적했듯이, 이란 핵협정을 파기한 트럼프로서는 북한과의 새 합의가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포괄적인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미국 최고위급 인사들의 발언이 단지 빈말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트럼프 정부는 이른바 리비아식 비핵화, 즉 ‘선 북한 비핵화, 후 보상’을 선호한다.
북한도 이를 감지하고 반발감을 드러냈다. 5월 6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우리의 평화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지 말라”고 미국에 경고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7~8일 중국을 다시 방문해 중국과의 “전략적 협동”을 약속했고 비핵화도 단계적·동시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말과 행동은 모두 미국을 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노벨 평화상
미국 지배계급의 주류이자 다수는 북·미 정상회담을 지지하지 않는다. 4월 27일 〈뉴욕 타임스〉의 한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주장했다. “만약 백악관한테 좋은 선택지가 없으면 현상 유지를 고수하라. 그것이 65년 동안 잘 먹혀 왔다.”
그래서 한국의 일부 친여권 인사들도 북·미 협상이 중장기적으로 난관에 봉착할 수 있음을 우려한다. “미국 주류 전략가들은 한·미·일 동맹과 대중국 봉쇄망 완성 전에 북핵 문제가 풀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일각에서 트럼프에게 노벨 평화상이라도 줘서 대화를 지속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까닭이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북핵 협상 테이블 바깥에서는 그것을 흔드는 요인, 즉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적 갈등이 점증해 왔다. 그리고 트럼프는 바로 그 문제에서 미국 지배자들 중 가장 강경한 노선을 추구한다.
따라서 제국주의적 경쟁이 낳는 정세 변화에 따라, 북·미 정상회담과 그 이후의 협상 과정에서 트럼프의 입장이 다시 바뀔 수 있다.
조만간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 상대방을 향해 미소 짓고 함께 사진을 찍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합의를 도출할 것 같다. 그러나 그 미소가 계속될지는 지켜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