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낙태 선택권을 온전히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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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법무부가 낙태죄 위헌 심판 공개변론에 제출한 “낙태죄 합헌” 의견서가 여성들의 커다란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법무부는 낙태하려는 여성을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은 원하지 않는” 무책임한 사람으로 낙인찍었다. “태아의 생명권 보호” 운운하며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무시하고, 임신과 출산을 모두 여성의 책임으로 규정했다.
많은 여성들은 ‘내 자궁이 국가의 것이냐’, ‘법무부 장관은 임신을 원할 때만 섹스했냐’며 법무부의 성차별적 주장을 성토했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여성의 기본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낙태죄 폐지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산부인과 의사인 낙태죄 위헌 소송 청구자는 “태아는 그 생존과 성장을 전적으로 모체에 의존”하므로 “태아는 생명권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며 “태아 생명권” 논리를 정면 반박했다.
청구인 측 변호사도 “낙태는 인권 문제이고 여성차별을 철폐하기 위해서도 보장해야 한다”며, “임신 상태를 유지하고 출산을 강요하는 것은 여성에게 특별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무부가 불법 낙태로 고통받는 여성의 현실은 외면하면서 “생명권 수호” 운운하는 것은 가당찮다. 뱃속 태아만 보호받아야 할 생명이고, 이미 태어난 여성은 생명이 아닌가?
태아는 결코 독립적 생명체가 아니다. 임신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출산은 여성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여성만이 낙태·임신·출산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자격이 있다.
여성의 온전한 낙태권이 보장돼야 한다
일각에서는 올해 헌재 구성원이 2012년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렸던 구성원과 다르다며 낙태죄 위헌 판결을 기대한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위헌 결정 가능성을 크게 본다.
그러나 낙태·임신·출산은 자본주의 이윤 중심 체제에 필요한 노동력 재생산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체제를 수호하는 보수적인 국가기관이 낙태죄 폐지를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일랜드의 낙태권 운동처럼 강력한 아래로부터의 운동으로 압박하지 않으면 말이다.
일부 헌재 재판관들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의 조화”가 필요하다며 개인적 의견으로 낙태죄 개정을 시사한 적 있다. 일부 좌파를 포함해 진보 진영 내에서도 이런 입장이 흔하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조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견해이기 쉽다. 낙태 전면 허용은 사회적 파장이 크므로 절충하려는 것이다. 임신 초기(약 12주 이내)나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 인정안을 지지하는 의견이 흔한 듯하다.
〈한겨레〉는 “임신 12주 이내의 낙태를 허용하는 ‘한정위헌’ 결정 정도를 기대한다”고 밝힌 헌법소원 청구인의 입장을 소개하며 부분적 낙태 허용을 긍정적으로 다뤘다.
물론 임신 초기나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부분적 낙태 허용은 현행보다 진전된 안이다. 그럼에도 부분적인 낙태 허용으로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온전하게 보장할 수 없다. 단서 조항이 많다면 개선의 효과는 더욱 떨어질 것이다.
낙태를 제한적으로만 허용하면 낙태를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낙태는 불법이고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경제적 사유 적합성은 국가 기관이나 의료 기관이 판단하고 허가한다. 여성이 낙태 결정의 주체가 아닌 것이다.
여성의 몸은 출산을 위한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여성 자신의 것이다. 신체에 대한 자유와 기본권을 억압하는 낙태죄는 당장 폐지돼야 한다. 여성이 원하면 언제든지 안전하게 낙태를 선택할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낙태약 제공과 시술은 무상으로 제공돼야 한다.
낙태죄 폐지뿐 아니라 낙태를 전면 합법화할 때 온전한 낙태권을 성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