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북·미 정상회담의 불확실한 앞날

6월 12일 전 세계의 이목은 싱가포르로 쏠렸다. 거기에서 북한과 미국의 두 정상이 역사상 처음으로 악수를 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회담을 일종의 판타지나 공상과학 영화로 생각할 것이다.”

분명 낯선 장면이었다. 미국과 북한은 70여 년 동안 대치해 왔다. 게다가 지난해 긴장이 한껏 높아져 서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올 1월에만 해도 트럼프는 “더 크고 강력한 핵 버튼이 있고 내 버튼은 작동도 한다”고 김정은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러나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트럼프는 김정은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리고, 그와 “특별한 유대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부시나 오바마에게선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이런 극적인 상황 전개를 보면서 많은 한국인들은 다행으로 여겼을 것이다. 회담이 어떤 합의를 도출하느냐를 떠나, 북·미 정상들이 만났다는 것만으로 지난해의 긴장 국면이 끝난 걸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 세간의 관심은 앞으로 북·미 대화가 당장의 긴장 완화를 넘어 핵 없는 한반도와 항구적 평화 체제 수립에 이를 수 있는지에 쏠리고 있다.


정상회담 결과에 격노한 미국 주류와 한국 우파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을 모든 사람들이 반긴 것은 아니었다. 한국의 우익들은 일제히 회담 결과를 성토했다. 홍준표는 북·미 정상회담은 미국이 김정은에게 놀아난 대실패라고 맹비난했다. 〈조선일보〉도 북·미 정상회담이 “손해 보는 거래”였고 “최악의 결과”를 냈다고 혹평했다.

그러나 냉전 우익의 본성을 드러낸 모습에 다수 대중의 반응은 차가웠다. 이것이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한 주된 이유가 됐다.

그런데 많은 미국 지배자들도 이번 정상회담을 비난한다. 그들의 감정에 대해 탐사보도 전문기자 팀 셔록은 〈네이션〉에 이렇게 전한다. “트럼프가 한·미 연합훈련을 하지 않기로 한 것, 트럼프가 김정은과 새로 친분 관계를 튼 것, 북한과의 합의가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것 때문에 미국 정치인과 전문가들이 격노했다.”

미국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 낸시 펠로시는 북한이 변하지 않았는데도 북한을 미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올려 줬다고 트럼프를 비난했다. 공화당 내에서도 정상회담을 비판하는 얘기가 많다.

대외 정책 면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을 각각 비둘기파(온건파)와 매파(강경파)로 구분하는 게 잘못임이 새삼 확인된다. 호전적 제국주의자라는 점에서 민주당·공화당 정치인들이나 트럼프는 오십보백보다.

미국 지배자들은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의 구체적 목표(“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이하 CVID)”)와 비핵화 시기, 검증 방식 등 구체적 이행계획이 적시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그러나 CVID는 애당초 북·미 대화에서 쉽게 합의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조지 부시 2세 정부가 고안한 개념인 CVID는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 가입국들의 권리인 ‘평화적 핵 이용’ 즉, 민간용 핵발전과 그런 목적의 연구 등을 할 수 있다는 점 자체를 부정한다. “돌이킬 수 없는”을 제대로 충족하려면 핵시설을 모두 파괴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관련 핵심 연구자들 전원을 북한 밖으로 강제 구인해야 할 수 있다. 북한이 CVID는 패전국에게나 강요할 법한 일이라며 강하게 거부해 온 까닭이다. 그래서 과거 6자회담의 합의문들에도 CVID는 온전히 명시된 적이 없다.

되돌릴 수 없는 평화의 시대가 열릴까?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만난 김정은과 트럼프 ⓒ출처 Kevin Lim/THE STRAITS TIMES

오십보백보

북한과 ‘터무니없는 협상’을 했다는 비난을 넘어, 미국 주류 정치권 다수는 트럼프가 미국 대외정책의 기존 지향을 흔드는 것 자체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트럼프는 서방 동맹국들의 회의인 G7 정상회담을 망쳤고, 동맹국 캐나다의 총리 트뤼도를 매우 부정직하고 나약한 자라고 직접 비난했다. 그 직후 — 트럼프는 김정은과 악수했고 김정은을 신뢰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미국 지배자 다수가 당혹해하는 것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북한 ‘위협’론을 동아시아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동맹을 강화하는 정교한 패권 전략의 하위 전술로 자리매김해 왔다. 이 점은 전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이 2013년 6월 골드만삭스가 주최한 행사에서 한 비공개 연설로 드러난다. “북한이 주기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이는 굳이 나쁘게 볼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미국의 입장에서는 반길 만하다.”

그래서 미국 지배자 다수는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고 한·미 연합훈련 중단과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까지 말한 트럼프 때문에 자칫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지 않을까 예민하게 반응한다.

부시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문제 수석담당관 마이클 그린이 5월 《포린 어페어스》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것은 시사적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이 협상들 속에서 체스 게임 2개를 동시에 하게 될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또 다른 플레이어인 중국은 더 큰 그림을 그리며 체스를 둘 것이 확실하다.”

미국 대통령이라면 북한과의 체스를 둘 때 중국·러시아 등과의 체스, 즉 제국주의적 경쟁이라는 더 크고 중요한 문제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훈수다.


그러나 트럼프는 믿을 수 없는 협상 상대

트럼프의 북·미 정상회담은 실로 파격이었고, 그만큼 그가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안보 정책과 관행에 연연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지금 북한과의 협상에 나름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그러나 북·미 대화의 앞날에는 대화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들이 여전히 많다.

우선, 미국 주류 정치권 못지않게 트럼프도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자다. 6월 11일 이란 외무부 대변인(바흐람 가세미)은 같은 “불량국가”인 북한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미국의 상습적인 약속 파기와 의무 불이행을 바짝 경계하고 상당히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는 트럼프가 “믿을 수 없고 돌출적인 협상 상대”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북·미 합의가 이란 핵 협정의 운명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였다.

미국의 상습적인 약속 파기는 북한이 지난 30년 가까이 미국의 민주·공화 정부들을 상대하며 숱하게 경험했다. 그래도 5월 24일 북한은 정상회담 취소라는 트럼프의 돌출적인 결정에 당황했을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게도 곤혹스런 일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조정자” 구실에 명백한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남·북한 정부들이 종전선언에서 중국을 배제하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나서야, 정상회담은 다시 추진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일은 또 일어날 수 있다.

북·미 대화에 영향을 줄 미·중 경쟁 올해 3월 남중국해에서 훈련 중인 미 항공모함 ⓒ출처 미국 국방부

이견

미국 주류 정치인들의 비난이 역겹기는 하지만, 이번 북·미 공동성명에 비핵화와 평화 체제 구축에 관한 구체적 내용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앙꼬 빠진 찐빵’에 비유되는 이유다.

정세현 전 장관을 비롯한 친여권 전문가들은 정상 간 합의에 구체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은 무식한 사람이나 할 소리라고 일축한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는 정상회담 직전까지 실무 협상에서 북한의 비핵화 이행 계획을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구체적으로 반영하려고 애썼다. 정상회담 전날인 11일 미국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CVID만이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결과”라며 북한을 압박했다. CVID 중에서도 V, 즉 검증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도 했다.

12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는 “시간이 없어서 [CVID를] 공동성명에 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것은 미국과 북한 간에 여전히 핵심 쟁점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음을, 그럼에도 일단 합의 가능한 (추상적인) 선에서 공동성명을 작성했음을 시사한다.

물론 한국의 친여권 전문가들이 지적하듯이, 북·미 간에 공개하지 않은 추가 합의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는 북한이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기하기로 했다고 단언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디테일에 숨은 악마’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당장에, 공동성명에 적시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놓고 미국과 북한이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를 신속하게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폼페이오는 아예 트럼프의 남은 임기인 2년 반 안에 주요 비핵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앞서 언급된 문제들 때문에 향후 실무 협상과 이행·검증 과정에서 온갖 우여곡절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즉, 좁고 길며 끝이 불확실한 길이 될 것이다.

국내의 많은 전문가들은 북·미 공동성명의 합의 사항 순서에 주목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과거 북·미 합의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약속이 먼저 제시되고 다음에 평화체제 구축과 북·미 관계 정상화를 후순위에 배치했는데, 이번에는 그 순서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그들은 트럼프 정부가 북·미의 적대적 관계가 풀리고 관계가 정상화돼야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음을 인정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먼저 선제적인 비핵화 조처를 내놓았음을 상기해야 한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상징적 성격이 강하지만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했다. 트럼프의 말대로, 같은 기간에 미국이 북한에게 반대급부로 해 준 것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순서”는 얼마든지 달리 해석될 수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정상회담 후 미국이 조·미(북·미) 관계 개선 진척에 따라 제재를 해제할 의향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정작 트럼프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조처가 언제나 한발 앞서 진행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14일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입증하기 전까지는 제재가 해제되지 않는다.” 이처럼 아직 공동성명 서명의 잉크가 다 마르지 않았는데도 벌써 해석상의 미묘한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트럼프는 한·미 연합훈련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대화를 하기로 한 이상 당연한 조처이지만,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 아님도 알아야 한다. “북한이 약속을 안 지킬 경우, 유엔 제재를 완화했다가 재개하는 것보다 군사훈련을 재개하는 게 훨씬 쉽다.”(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부보좌관 제임스 제프리)

1차 북핵 위기를 돌이켜 봄 직하다. 1992년 미국은 팀스피리트 훈련을 중단했지만 북한과의 협상이 어그러지자 불과 1년 만인 1993년 훈련을 재개했다. 이 때문에 한반도에서 긴장이 엄청나게 높아져 이듬해 여름 심각한 위기로 치달았다.

테이블 바깥

김정은은 싱가포르로 가면서 자국 항공기가 아니라 중국 정부가 제공한 전용기를 탔다. “에어 차이나(Air China)” 로고가 선명하게 찍힌 전용기에서 내리면서 김정은은 미국과의 협상력 제고를 노렸겠지만, 트럼프 정부 인사들은 그것을 보며 한반도 문제에서도 중국과 주도권 경쟁을 벌여야 함을 새삼 확인했을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이란 핵 협정 문서를 찢어 버리면서, 이것이 이란과의 핵 협정 바깥의 정세 변화 때문에 내린 조처임을 숨기지 않았다.

미국과 북한의 협상도 궁극적으로 협상 테이블 바깥의 변수들이 더 결정적일 것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점증하는 제국주의적 경쟁이 있다. 그런 점에서 궁극적으로 트럼프가 원하는 바(중국 제압)는 미국의 다른 주류 지배자들과 같다. 다만 그 전술이 다를 뿐이다.

트럼프에게도 북한과의 협상은 핵무기 비확산뿐 아니라 더 넓은 전선에서 중국과 벌이는 경쟁과 분리되지 않는 문제다. 그리고 그 경쟁 상황이 북핵 협상 테이블 자체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만약 북한과의 협상이 실패한다면, 또는 중국과의 갈등이 악화돼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힘을 과시할 필요가 심각하게 대두한다면, 상황이 지난해의 “화염과 분노”보다 더 악화할 개연성은 살아 있다. 우리가 트럼프의 미소를 보고 마냥 안심할 수 없는 까닭이다.

과제

물론 한반도의 상황은 지난해 가을 무렵에 견줘 분명 바뀌었다. 그때는 머지않은 미래에 미국이나 북한 어느 한쪽의 계산 착오로 엄청나게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한반도 평화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는 위기의식도 강했다.

그러나 올해 긴장이 완화하고 정부 당국 간 대화가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한반도 평화 운동 건설은 시급하고 당면한 과제로 여겨질 것 같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운동 일각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되돌릴 수 없는 한반도 평화시대를 열었다”며 정부 당국 간 회담을 지지하고 그것의 성공을 뒷받침하는 데 주력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문제적이다. 자본주의적 경쟁 속에서 항구적 평화 실현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항구적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경계해야 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 체제의 현 상황을 분석하고 설명하며, 자본주의·제국주의 체제에 도전할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강조해야 한다.

이메일 구독, 앱과 알림 설치
‘아침에 읽는 〈노동자 연대〉’
매일 아침 7시 30분에 보내 드립니다.
앱과 알림을 설치하면 기사를
빠짐없이 받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