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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의료 운동이 시작되다

지난 5월 1일 메이데이 대회 장소에서는 5백여 명의 사회보험노동자들과 서울대병원지부노동조합, 보건의료계열 학생들과 의료인들이 모여 “암부터 무상의료, 무상의료 실현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사전집회를 열었다.

민주노동당 약진의 일등공신인 정책으로 자타가 공인해 온, 그러나 현실성 없는 구호라는 비판을 받아 온 ‘무상의료’가 드디어 구체적인 운동 목표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 건강보험재정은 1조 5천억 원의 흑자를 남겼고 민주노총 등이 주장해 이 흑자분은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에 쓰이도록 결정됐다. 이 결정 뒤에도 돈의 쓰임새에 대한 논란은 계속됐다.

올해 초 보건의료 운동 진영은 현재 보험적용이 안 되는 항목(비급여 항목)을 모두 보험에 적용시키는 데에 1조 원을 쓰고, 보험적용을 하고 나서도 본인부담금이 높은 사람에게 ‘의료비 본인부담 상한제’를 실시하는 데에 5천억 원을 쓰자고 주장했다.
현재 한국 건강보험 보장성은 OECD 평균 의료보장률 73.1퍼센트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54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주된 원인은 비보험 항목이 많기 때문이다.

이 원칙이 적용되면 입원환자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당장 80퍼센트가 넘게 된다. 또한 현재 6개월 3백만 원 이상 의료비를 정부가 부담하는 ‘의료비 본인부담 상한제’는 현재 보험항목에만 적용돼 빛좋은 개살구이지만 모든 비보험 항목이 보험항목이 되면 실제 그 효력을 작동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정부의 반대에 직면했다. 이유는 비보험 항목 전체에 대한 보험적용이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것이었다. 물론 실제 이유는 자본의 이윤 보호였다.

대형병원이 주로 이윤을 얻는 곳이 바로 이 비보험 항목이다. 비보험 의료비는 병원 마음대로 가격을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민간보험기업들도 바로 이 비보험 항목을 시장으로 하고 있다.

정부는 항상 하던 식으로 보험혜택을 찔끔찔끔 확대했다. MRI(자기공명영상장치)를 보험급여 항목으로 확대하고 이런 저런 질병에 조금씩 돈을 나누었다. 이렇게 7천억 원을 사용했다.

이러한 보험확대는 자본이 도망가기 가장 좋은 방식이다. MRI가 보험이 적용돼 정부의 가격통제를 받게 된다는 소식을 접한 대형병원은 앞다투어 페트(PET)라는 고성능 기계를 도입했다.

이제 병원들은 MRI로 찍던 사진들을 보험적용이 안 되는 PET로 찍는다. 1대에 1백억∼2백억 원하는 PET는, 유럽 국가에서도 나라 당 2∼4대 정도인데 한국에는 무려 45대가 도입됐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무상의료의 단계적 실현을 올해에 더 구체화했다. 민주노동당은 무상의료 1단계를 ‘모든 비보험 항목의 보험적용’, 그리고 이를 통한 ‘실질적인 의료비 본인부담 상한제 실시’, ‘저소득층 10퍼센트의 무상의료’와 ‘미취학아동의 무상의료’로 제시했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무상의료 1단계의 목표로 병원자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수가제도의 변화와 공공의료의 강화를 내걸었다. 민주노동당의 계산에 따르면 이는 3조 원이면 가능하다.

그리고 현재 가입자가 50퍼센트, 정부나 기업이 50퍼센트를 부담하는 보험료 체계를 기업과 국가가 60퍼센트 부담하는 것으로 변화시키면 이러한 무상의료 1단계는 노동자와 서민들의 보험료를 단 한 푼도 안 올리고도 시행이 가능하다.

정부는 4월까지도 7천억 원을 쓰고 남은 8천억 원을 그대로 쥐고 있으려 했다. 그러자 건강세상네트워크 등이 이 돈을 여기저기 나누어 쓰느니 한 군데, 특히 암으로 몰아 쓰자는 주장을 제기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3월 한 달 동안 단위별, 지역별 토론회를 거쳐 4월 10일 전국정책기획단 회의에서 8천억 원으로 암의 무상의료 실현이 가능하다는 사실과 무상의료운동을 결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보건연합은 “암부터 무상의료”를 상반기 운동의 주요 슬로건으로 채택했다. 암을 당장 무상으로 치료 가능하다는 사실과 무상의료 운동을 결합시킨 “암부터 무상의료”라는 구호는 매우 강한 호소력을 가졌다. 4월 20일 신문 보도가 나가기 시작했고, 4월 22일 사이버캠페인이 시작되자마자 TV와 라디오 토론 프로그램이 2개가 당장 잡혔고 인터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쇄도했다.

6월 초에나 8천억 원의 사용처를 밝히겠다던 복지부가 다급해졌다. 4월 27일 정부는 제대로 된 수치도 준비 못한 채 “암 등 고액중증환자 진료비 줄이는 데 건강보험재정 집중 투입“이라는 내용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 발표에서 암환자의 본인부담금이 30∼50퍼센트가 줄어들 것이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암 환자 본인부담의 15퍼센트 정도를 줄이는 이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비록 질병단위이기는 하지만 정부가 최초로 비보험 항목 전체를 보험 항목으로 인정한 조치로서 우리 운동의 귀중한 승리다.

노동운동과 보건의료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보건의료 사회단체들은 정부가 대형병원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면 당장 암 무상의료가 가능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5월 1일 사회보험노조등과 함께 “암부터 무상의료, 무상의료 이제 시작이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집회와 메이데이 가두 선전을 진행했다. 무상의료의 구체적 실현을 위해 “모든 의료를 건강보험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운동을 확대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의료서비스 산업화를 내세우면서 민간의료보험을 확대하고 병원을 주식회사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5월 안에 정부는 대통령 혹은 총리 직속의 의료산업화추진위원회를 설치할 계획이다. 의료서비스 산업화를 필두로 한 ‘서비스산업화’ 추진은 보건의료, 교육, 보육, 문화 등 공공서비스 분야 사유화를 위한 자본의 총공세이다. 무상의료, 무상교육 투쟁은 이에 맞서는 유일한 투쟁이다.

이제 투쟁은 시작됐다. 암부터 무상의료로 시작된 우리의 투쟁은 “모든 의료를 건강보험으로”, “민간의료보험 반대”, “주식회사병원 반대” 투쟁을 통해 전면적 무상의료 투쟁으로 한 걸음씩 전진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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