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적 춤’ 거부에서 첫 임단투 승리까지:
성심병원 노동자들이 오만한 재단을 물러서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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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병원 측의 ‘선정적 춤’ 강요를 거부하며 노조 설립에 나선 성심병원 노동자들이 첫 임단투에서 승리를 거뒀다.
노동자들은 인력확충, 인사제도 개선, 비정규직 정규직화, 적정임금 보장을 요구해 왔다. 재단 측은 반년 가까이 진행된 교섭에서 시종일관 노동자들의 요구를 외면했지만, 결국 노동자들의 투쟁 태세에 밀려 한발 물러선 듯하다.
파업을 앞둔 6월 26일 새벽에 타결된 교섭에서 병원 측은 자연 호봉 상승분 2.3퍼센트 외에 임금 총액 6퍼센트 인상, 85명 인력충원을 약속했다. 이 외에도 기간제 및 의무기록사 면허 파견 노동자 근로계약 만료 도래시 정규직화, 20년 이상 8급 재직자 1직급 승급, 교대근무자의 야간 노동시 1.5 시간외 노동을 인정하고 한 달에 일곱 차례 이상 야간 노동을 할 경우 추가 오프(휴일) 부여 등 노동조건 개선을 약속했다.
6월 25일 저녁 파업 전야제에 참가한 노동자들의 기세는 대단했다. 한림대의료원의 다섯 개 성심병원(강남, 동탄, 춘천, 한강, 한림대성심병원)에서 동시다발로 열린 파업 전야제에는 각각 조합원 수백 명이 참가했다. 지난 반년 만에 다섯 개 병원에서 2700여 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해 성심병원은 보건의료노조 소속 지부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규모로 성장했다.
20대 여성 조합원들이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집회 참가자들은 병원 로비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구호를 외치며, 병원 측을 규탄했다. “사람에게 투자하라” “병원 갑질 청산하라” “시간외 근로 인정하라” “노동조건 개선하라”
한림대성심병원(평촌) 이병주 부지부장은 노조설립 이후 첫 투쟁의 의의를 이렇게 밝혔다.
“2016년 촛불은 대통령도 민주주의를 유린하면 국민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줬습니다. 우리도 그걸 봤습니다. 한림대의료원 우리 2700 조합원들도 해낼 수 있습니다. 노동자가 먼저인 직장문화 만들어야 합니다. 노동자 존중받는 한림대의료원을 만듭시다.”
다소 딱딱한 발언에 ‘초보니 양해해 달라’는 집행부의 발언에 조합원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그동안 사측의 온갖 횡포와 갑질에 숨죽이며 살던 노동자들이 노조로 단결해 “을들의 반격”에 나서면서 사측에 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파업하면 임금을 못 받으니까,좀 걱정이 되긴 하죠. 그래도 이번에는 파업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좀 바꿔야죠.”(15년차 간호사 A)
이런 자신감은 지난해 노조설립 이후 스스로 쟁취해 온 변화 덕분이기도 하다.
“우리 뭐가 없어졌죠? 체육대회! 야유회! 심지어 바자회까지. 가뜩이나 인력 부족에 힘든 노동자들 말도 안 되는 행사에 동원해서 이상한 춤 추게 했는데 이제 그런 거 없어졌죠? 그분[이사장]이 보고 싶다고 제가 산타 복장까지 하고 무대에 올라갔어요. 그것도 가수 이은미 다음 순서에요. 누가 보기나 하겠어요?(조합원들 웃음)”(한림대성심병원지부 백혜성 사무처장)
“정기적으로 하던 화상회의 발표도 없어졌어요. 다섯 개 병원장들이 화상회의를 여는데 일선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이 회의에서 발표하도록 시킨 건데요. 뭐 우리 병동에서는 어떻게 했더니 비용이 절약되더라 이런 걸 경영 개선이라며 발표하라고 시킨 거에요. 그게 정말로 경영에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는 그거 발표 준비하느라 몇 주 혹은 몇 달을 고생을 해요. 그게 없어진 건 정말 잘 됐어요.”(15년차 간호사 B)
“환자 이송인력이 새로 생겼어요. 그 전까지는 간호사들이 환자 이송까지 다 해야 했거든요.”(7년차 간호사)
노동자들은 섹시 댄스만 강요당한 게 아니라 무보수로 매일 조기 출근과 연장 노동을 하도록 강요받아 왔다. 업무 인수인계에 따른 시간외 노동도 인정받지 못했다.
사측은 복잡한 승진 제도를 악용해 임금 인상도 억제해 왔다. 간호사들은 15개 직급으로 구분돼 승진이 쉽지 않다. 승진이 되지 않으니 임금 인상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오래 일해도 임금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며 간호사들의 승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제일 큰 불만은 임금이죠. 우리가 다른 병원들 통계까지 다 알지는 못하지만 들리는 얘기가 있잖아요. 그런데 들어보면 정말 많이 낮아요. 전 사실 나이가 좀 들어서 입사하는 바람에 이직할 생각을 못 했는데 조건이 나빠서 이직하는 간호사들이 정말 많아요. 제가 15년 됐는데 직급이 입사할 때 그대로에요.”(15년차 간호사 B)
이병주 부지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다른 대학병원들 보면 인건비 비중이 50퍼센트 안팎이에요. 그런데 한림대의료원의 인건비 비중은 35퍼센트 안팎인 걸로 알고 있어요. 사실상 그만큼 임금이 적다는 거죠.”
한림대의료원지부(동탄) 김성욱 부지부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수납, 행정직, 위생 보조원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파견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되고 간호 인력이 충원돼야 더 좋은 의료 서비스가 가능합니다.”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병원 측을 물러서게 한 데 기뻐하면서도 실질적인 변화가 있을지는 두고 보겠다는 반응이다.
노동조합 설립 반년만에 성과를 거둔 성심병원 노동자들의 승리가 더 많은 노동자들의 투지와 자신감을 고무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