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제 시행 유예, 특별연장근로 허용, 유연근무 확대 …:
노동시간 단축 열망 배신한 문재인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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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지방선거 이후 열린 첫 당정청 회의에서 주 52시간제 시행에 6개월 ‘계도 기간’을 두겠다고 발표했다. 재계(경총)의 요구를 즉각 수용해 사실상 시행을 유예한 것이다.
정부는 이것이 주 52시간제의 “현장 안착화”를 위한 조처라고 말한다. 그러나 6개월만 기다리면 좋은 날 온다는 신호가 결코 아니다.
정부는 이미 1년 전에 잘못된 노동부 행정해석(주 68시간 노동 허용) 폐기만으로 즉각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도 시간만 질질 끌다 올해 2월에서야 국회가 2021년 7월까지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임금을 삭감하는(중복할증 폐지) 등의 내용을 담아 개정법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이제 7월 1일 법 시행을 불과 열흘 앞두고 또다시 시행을 유예한 것이다.
지방선거 직후 〈경향신문〉이 노동시간 단축의 “신새벽”이 열렸다며 “오래 일하는 것이 기업의 생산성을 담보해 주던 시대는 끝났다”고 전제한 것은 부적절했다.
사용자들은 여전히 노동시간을 연장해 착취율을 끌어올리는 방식을 선호한다. 노동강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이윤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중요한 이유다.
값싼 장시간 노동을 위한 꼼수
6개월 ‘계도 기간’은 정부와 사용자들이 여러 편법과 제도 개악, 조건 후퇴 등을 시험하며 주 52시간제를 더한층 누더기로 만들 준비 기간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가 제시하는 정책 방향이 이를 가리킨다.
우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특별연장근로를 꼽을 수 있다. 6월 26일 경제부총리 김동연은 ICT(정보통신기술) 업종에서 “특별연장근로를 인가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밝혔다.
ICT 업종은 이번에 간신히 특례업종에서 제외됐는데, 특별연장근로로 다시 무용지물이 되게 생겼다. 최저임금 ‘줬다 뺏기’ 공격의 유사품이다.
둘째, 문재인 정부는 최근 ‘유연근로시간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기업들에게 탄력근로제 도입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탄력근로제는 단위 기간(2주~3개월)의 평균 노동시간을 법적 상한선에 맞추되, 그 내에서 일일, 일주일 단위의 노동시간은 크게 늘리거나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은 일정 기간 동안 52시간을 넘겨 일해야 되고, 단위 기간에 평균 노동시간이 주 40시간을 넘는 경우에만 연장근무수당을 받을 수 있어 기존에 비해 연장근무수당이 크게 줄어든다. 게다가 최근 정부와 여당은 유연근무제의 단위 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유연근무제로 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며, 일·생활의 균형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홍보한다. 그러나 노동시간의 선택권은 노동자들이 아니라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좌우된다. 불규칙한 노동시간과 줄어드는 임금 등으로 노동자들은 더한층 생활이 불안정해진다.
셋째, 이미 현장 곳곳에서 임금 삭감, 노동강도 강화, 외주화 확대, 근태관리 강화와 현장 통제, 업체 쪼개기 등이 시도되고 있다. 정부는 이에 제재를 가하기는커녕, 수수방관하고 용인하고 심지어 권장하기까지 한다.
고용노동부는 이미 지난해 주52시간제 시행으로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임금을 줄인다는 방침을 세웠다. 노동부가 주당 노동시간이 평균 59.6시간인 18개 업종 노동자 107만여 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월 임금이 무려 12.7퍼센트(38만 8000원)나 줄어든다. 올해 3월 국회 예산정책처는 특히 용역, 한시근로, 기간제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폭이 클 것이라고 발표했다.
6월 21일 대법원이 성남시 환경미화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휴일근무수당에 대한 중복할증 요구를 불인정한 것도 그런 사례일 것이다. 사용자들이 중복할증이 폐지되기 이전 시점(올해 7월 1일 이전)의 체불임금까지 떼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통상임금 문제에서 ‘신의칙’을 근거로 체불임금 지급 의무를 면제해 준 것과 같다.
사업장 대응으로 방치하지 말아야
요컨대,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공약은 말만 요란한 빈수레였을 뿐이었다. 오히려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 열망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이런 공격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의 비상한 대응이 요구된다. 정부가 당정청 논의, 가이드라인 등 지침으로 기업주들을 적극 지원하는 상황에서, 노동운동이 이를 개별 사업장·부문별 대응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일부 노조들이 단체협약과 조직력을 통해 조건을 지킬 수 있더라도, 미조직·비정규직, 취약노조 등에서는 그렇게 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미조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건이 공격을 받으면, 그것이 다시 조직 노동자들의 조건 하락 압박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조직 노동자운동은 저임금·장시간 노동을 유지하려는 정부와 사용자들에 맞서 전 계급적 방식으로 항의를 확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