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교육연구소 정책연구팀 글에 대한 반론:
기간제 교사 차별 반대 운동을 위해
무늬만 정규직화가 아닌 온전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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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진보교육연구소 정책연구팀(이하 연구팀)이 《진보교육》 68호에 「현 단계 ‘정교사 전환론’의 한계와 문제점에 대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은 지난 1년 동안 진행돼 온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운동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대부분 채워져 있다.
운동의 요구와 전술을 둘러싼 논쟁은 불가피할뿐더러 운동의 발전에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차별에 숨죽여 온 기간제 교사들이 처음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며 벌인 투쟁과 운동에 대한 지지와 공감을 별로 찾아볼 수 없는 점은 안타깝다.
그런데 연구팀은 전교조가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는 지지하지만 방안을 놓고 이견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전교조의 두 차례 대의원대회 결정을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한다.
그러나 전교조의 입장이 논란이 돼 온 이유는 분명하다.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문제는 단지 전교조 내에서만 벌어진 논란이 아니다. 그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맥락은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표방했음에도 기간제 교사 등 학교 비정규직 교·강사 전원을 정규직화 대상에서 제외한 상황이었다. 정부가 대상에서 제외한 마당에 정규직화 방안 문제는 쟁점도 아니었다.
그때 전교조는 정부가 학교 비정규직 교·강사를 제외한 것에 대해 단 한 마디의 비판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전교조가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화 입장을 명백하게 표명하고 정부에 항의하고 나섰다면 전교조가 비난받는 처지에 놓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전교조는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지지라는 ‘원칙적’ 입장을 실천에서는 보여 주지 않은 것이다.
즉,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전교조 태도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커진 것은 뭣도 모르는 사람들이 오해하거나 당시 전기련이 근거 없는 비방을 해서가 아니라 전교조의 실천이 입증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당시 정부의 첨예한 모순을 일절 언급하지 않고 그 대신에 노동조합으로서의 전교조 조직을 더 중시하는 노동조합 관료주의의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평가도, 올바른 방향 제시도 할 수 없다. 실제의 갈등과 충돌을 외면하고 회피하면서 엉뚱한 프레임과 문제 설정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소수를 제외하면 전교조 조합원의 대다수는 이 쟁점이 여전히 실재하고, 뜨거운 쟁점임을 알고 있다. 올해 3월에도 교육부 인사는 민주노총이 주최한 토론회 자리에서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 제외 문제를 해명할 때 교총과 전교조의 반대도 한 요인이라며 정당화했다.
이런 구체적 갈등의 현실을 왜곡이요 “가상의 쟁점”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책임 떠넘기기일 뿐이다.
연구팀은 ‘즉각 일괄 정규직화 방안’이 문제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글 전반에서 기간제 교사 차별을 폐지하는 길은 정규직 교사 전환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매우 분명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연구팀은 ‘정교사 전환’을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기간제 교사도 정교사다. 이미 2급 정교사 자격을 보유했을 뿐 아니라 최근 대법원은 기간제 교사도 정규직 교사와 동일하게 일정 자격과 경력을 갖추면 정교사 1급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필자는 ‘정규직 전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려 하고, 이를 비정규직 교사를 정규 교사로 전환하는 것을 뜻함을 미리 밝혀 둔다.)
따라서 정규직화 지지는 모두가 동의하는 바이고 그저 방안에서 의견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은근슬쩍 넘어가면서 쟁점 흐리기를 하는 것이다.
기간제 교사 정규직 전환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반론
연구팀의 주장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는 지지하지만, ‘정교사(정규직 교사) 전환’은 지지하지 않는다.
- ‘정규직 전환’은 정규직화 방안의 하나일 뿐인데, 그 방안은 현재의 제도적 조건에서는 실현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 이는 특히, 예비교사와의 이해충돌과 (기간제 교사가 수행하는) 대체 노동의 불가피성 때문이다.
- 따라서 당장 필요한 기간제 교사의 고용 안정을 이루려면, 예비교사의 이해관계와 정규직 교사의 순환근무조건과 충돌하지 않는 ‘대체전담교사제’라는 방안이 필요하다.
아래에서는 연구팀이 ‘정규직 전환론’의 반대 논거로 제시한 ‘예비교사와의 이해충돌’과 ‘한시적 대체노동의 불가피성’ 주장을 반박하고, 정규직화 방안으로 제시한 ‘대체전담교사제’의 난점을 짚어 보고자 한다.
1) 기간제 교사와 예비교사의 이해관계 충돌 문제
연구팀은 ‘예비교사와의 이해 충돌’ 문제를 앞세워 기간제 교사 정규직 전환을 반대한다. “[예비교사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기간제 교사를 정교사로 전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또한 객관적 이해를 무시한다는 점에서 정당하지도 않다.” 그러나 연구팀이 예비교사와 기간제 교사의 관계를 “객관적인 이해관계의 충돌”로 보는 것은 교사 정원을 늘릴 수 없다고 전제하기 때문이다. 즉, 정부가 정한 교육 예산과 교원 정원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만 두 집단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런 제로섬 관점에서 보면, 공무원연금 보장성 확대는 국민연금 가입자의 이해와 충돌하고, 정규직 임금 인상은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상충될 것이다.
정부는 기간제 교사를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배제하면서,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 놓고는 신규 임용 인원을 대폭 줄이고 중장기적으로 교원 수를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기간제 교사와 예비교사를 이간질하면서 각개격파를 노린 것이다.
둘의 이해관계가 “객관적으로” 충돌한다는 제로섬 관점으로는 정부의 이간질을 명쾌하게 반박하기도 불가능하거니와, (학령인구 감소나 재정 위기를 이유로) 교원을 축소하려는 정부 논리에 효과적으로 맞서기도 불가능하다.
“객관적” 이해관계는 본질적으로 계급적 이해관계 문제다. 예비교사들이 임용 경쟁과 실업으로 고통 받는 이유와 기간제 교사들이 고용 불안과 차별로 고통 받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둘 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불충분한 재정 투자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기간제 교사와 예비교사는 동일한 사용자에 대항하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우리가 정규직 전환과 교원 확충을 함께 내걸고 단결해 싸워야 하는 이유다.
정부가 신규 임용 규모를 확대하면 기간제 교사 정규직 전환이 예비교사들의 이해와 충돌할 필요가 없다. 또한 정규직 티오가 늘어나 예비교사들에게 더 나은 고용 기회가 제공될 수 있다. 객관적 이해관계의 충돌은 노동자들 사이가 아니라 사용자(정부)와 노동계급 사이에 존재한다.
연구팀은 예비교사가 반발하는 현실에서 전교조가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을 주장할 수 없고, 예비교사가 동의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간제 교사와 예비교사의 이해관계가 충돌한다는 생각 때문이지만,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은 비정규직 교사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정부의 고용 책임을 강제할 수 있다. 예비교사들의 미래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는 효과를 낼 수 있고, 효과가 크면 그들을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는 임용고사 체제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
특히, 기간제 교사들의 정규직 전환 투쟁이 승리하면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물론 예비교사들이 ‘신규 임용 확대’를 요구하며 투쟁할 자신을 얻을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노동계급 교원들 전체에 이롭다. 우리가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 요구와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해야 하는 이유다.
반면, 근시안적으로 보아 기간제 교사와 예비교사의 이해가 충돌하는 것으로 보고 전자의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것은 반대 효과를 낼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정부의 계급 분열 이데올로기와 힘이 강화되고, 노동계급의 단결력은 약화된다는 것이다. 그리 되면, 정부가 예비교사의 절실한 임용 기회를 빼앗아 가는 것에도 제대로 저항하기가 어렵다.
2) 한시적 대체 노동이므로 정규직 전환은 안 된다?
연구팀은 기간제 교사가 하고 있는 노동이 “한시적 대체 노동”으로, 정규직 교사와는 다른 노동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정부도 기간제 교사들이 상시·지속 업무를 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기간제 교사가 수행하는 노동은 정규 교사와 전혀 차이가 없다. 최근 대법원도 기간제 교사들은 “현실적으로 담임 교사직을 수행하는 등 정규 교원과 별 차이 없이 근무”하고 있다고 인정했다.
기간제 교사 제도는 역대 정부들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산물이지, 교직 사회나 교육 노동의 특수한 성격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정부는 정규교사 임용을 억제하고 기간제 교사 임용을 대폭 늘려 왔다. 그 결과 10년 사이에 중학교 정규직 교원 수는 실제로 줄었고, 고등학교 정규직 교원 수는 찔끔 증가한 반면, 중·고등학교 기간제 교사는 3배로 증가했다(2005년~2013년 교원 수급 통계). 2000년대 중반부터 교사들의 휴직과 퇴직이 급증했는데도(각각 3배와 2배) 신규 교원 임용은 계속 정체돼 왔다. 현재 기간제 교사는 4만 7천여 명에 달한다. 정부가 교원 구조조정을 염두에 두고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기간제 교사를 주로 채용해 온 탓이다.
휴직 대체 자리에 정규 교사를 배치하지 못할 이유도 없다. 기본적으로 매년(또는 매학기) 발생하는 5~10퍼센트 가량의 휴직 인원에 대해 그만큼 정규 교사 티오를 더 운용하면 된다. 실제로 초등학교에서는 6개월 이상 중장기 휴직인 경우 정규 교사를 배치하고 있다.
그런데 연구팀은 중등공립학교와 사립학교의 경우에는 이것이 아예 불가능하다고 선을 긋는다. 교과별 장벽이 없는 초등과 달리, 중등은 교과별 장벽 때문에 정규 교사의 순환근무 조건과 충돌한다는 것이다. 즉, 중등학교의 경우 교과별 교사 수가 적기 때문에 해당 교사가 TO(교과별 정원) 문제로 그 학교로 복직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휴직 대체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은 정규 교사의 근무조건과 충돌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다.
중등의 인사 이동이 좀 더 복잡한 면이 있겠지만, 연평균 한 학교당 20~30퍼센트의 교사가 이동하기 때문에 순환근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최대한 휴직 교사가 복직 후 (원한다면) 근무지를 유지할 수 있도록 교육청이 효과적으로 인사를 운용하고, 상황에 따라 불가피하게 다른 학교로 배치되거나 해당 근무지로 복귀하기 전 임시로 교육청에 소속돼 근무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초등학교의 경우에도 일부 교사들은 복직하면서 원적 학교가 아니라 다른 학교로 발령 나기도 한다.
연구팀은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이 정규직 교사의 (휴직 관련) 근무조건을 악화시킨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정규직 교사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는 주범은 정부의 교사 정원 감축과 비정규 교사 증원 정책이므로,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와 그로 인한 정원 확대)는 정규 교사의 조건 향상에 기여하는 바가 훨씬 더 크다.
3) 대체전담교사제가 정규직화 방안?
연구팀은 앞에서 지적한 예비 교사와의 이해관계 충돌, 한시 대체 노동이라는 특성을 이유로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교사 전환은 안 된다면서 ‘대체전담교사’라는 별도 직군을 신설하자고 제안한다. 현 단계에서 정규직 전환이 어려우니 고용 안정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방안을 정규직화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주장하면서, 기존 정규직과 다르다는 점을 그토록 강조하며 정규직과 구분하는 방안을 정규직화 방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대체전담교사제도가 가진 문제점을 살펴봐도 내세울 만한 정규직화 방안이라고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첫째, 기간제 교사 차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연구팀은 ‘대체전담교사제’가 “기간제교사의 당면한 고용 안정 및 그로 인한 차별 해소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체전담교사는 결코 정규직 교사가 아니다. 정규직 교사의 휴직을 대체하는 업무만 전담하기 때문에 열악한 근무조건에 처할 수 있다. 게다가 별도 직군은 임금 격차나 차별적 처우의 근거가 된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직무급제 도입 공격에 문을 열어 줄 수 있다.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는 근본적으로 기간제 교사 제도 폐지와 연결돼야 한다. 그러나 ‘대체전담교사제’는 차별적 제도(기간제 교사 제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온존시킨다. 정부가 무기계약직화나 자회사 방안을 정규직 전환 방안으로 내놓은 것에 노동자들이 반발하는 것도 비정규직 차별을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교육 노동자들의 연대와 단결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 당장 기간제 교사 내부에 혼란과 분열을 낳을 수 있다. ‘대체전담교사제’는 연구소가 밝혔듯 공립 중등학교에 한정된 대안이다. 그러면 초등이나 사립학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또, 공립 중등 휴직 대체 기간제 교사는 전체 기간제 교사의 일부다. 그러면 ‘누구를 임용할지’ 선발이 불가피한 문제가 생긴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식의 대상과 자격 논란이 벌어지면 기간제 교사 운동의 단결이 약화될 수 있다.
연구팀은 대체전담교사 직군을 신설한 후 나중에 직군 통합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분리 직군은 교사 노동자 간 단결을 어렵게 한다.
‘현실적인 방안’ 제시가 성취로 가는 지름길인가?
연구팀은 대대적으로 정원이 확대되고 책임발령 체제가 확립되고 나서야, 즉 예비교사들이 반발하는 조건을 없애야 그들의 동의를 구할 수 있고, 그래야만 정규직 전환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 단계에서는 예비교사들이 동의할 수 있는 ‘대체전담교사제’ 같은 방안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연구팀은 장기적으로 정규직 교사 전환이 맞다면서도 정규직 전환은 지금은 실현 불가능한 먼 미래의 과제로 치부한다. “직군통합은 이후 지속적인 투쟁과 새로운 조건 창출 노력 속에서 가능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정규직 전환은 “새로운 조건”이 형성되고 나서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팀은 ‘현실’만 강조할 뿐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은 전혀 강조하지 않는다. 정규직 전환 주장에 대해 “현실적인 상황인식의 부재”라고 비판하지만, 현실을 비관적으로 보기 때문에 사태의 변화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연구팀에게는 ‘대체전담교사제’가 당면 과제의 해결책인 듯하지만, 필자가 앞에서 지적했듯이 차별을 온존시키고 교사 노동자들의 단결에도 이롭지 않다.
정규직 전환과 고용안정이나 차별해소는 떨어져 있지 않다. 따라서 정규직 전환이라는 목표와 전망 하에서 고용안정과 차별해소를 추구해야지, 정규직 전환은 조만간은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전제로 운동을 시작한다면 운동이 흔들리고 방향성을 잃기 쉽다.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문제는 곧 교사 확충 문제와 연결돼 있다.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이 (그만큼 정규직 티오가 늘어나서) 곧 정원 확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투쟁의 여러 조건과 과제들은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지, 어느 한 조건이 충족되고 나서야 나머지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임용 체제를 해소하고 나서 기간제 교사 정규직 전환을 추진한다는 생각은 사실 비현실적이다. 당장 이렇게 물어 보자. 그러면, 임용 체제는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정원 확대는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 투쟁은 임용시험의 근간을 흔들고, 정규직 티오를 확대함으로써 그 해답이 될 수 있다.
‘대체전담교사제’는 이러한 조건 변화에 별다른 효과를 내기 어렵고, 어떤 면에서는 기존의 체제나 조건을 강화하는 측면도 있다. 게다가 대체전담교사 직군을 신설한 뒤 나중에 다시 직군을 통합하는 단계적 정규직 전환은 곧바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일 수 있다.
흔히 단계론을 장기적 과제는 장기적으로 대응하고, 당면 과제는 당장 실현 가능하도록 하는 합리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투쟁 과정에서 세력관계에 밀려 온전히 요구를 성취하지 못하고 불가피하게 타협을 하는 것과, 처음부터 양보안으로 시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과정과 결과를 낳는다. 요구 수준을 낮춘다고 해서 실현 가능성이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실현 가능성은 투쟁의 강도와 세력관계에 달려 있다.
기간제 교사들의 요구 삭감이 연대와 단결을 강화한다고?
연구팀은 연대와 단결을 위해 예비교사가 동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요구 수준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비교사와의 이해 충돌을 해소하고 작동 가능한 방식으로 정규직화 방안을 제출하고 교육주체 간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연대이며 단결이다.”
이 주장은 정말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어느 부문인들 노동자들 내부에 이와 유사한 ‘이해 충돌’이 없을까? 정규직과 비정규직,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 ‘합의’를 이루는 것이 연대이고 단결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언제 자신들의 요구를 온전하게 내놓을 수 있는가?
차별받는 집단이 그 차별에 저항할 때, 무조건적인 지지와 연대를 해야 단결이 가능한 것이지, 삭감된 요구를 내놓으라는 것을 지지와 연대의 조건으로 제시하는 것은 단결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길이다. 이 때문에 많은 비정규 교·강사들이 전교조에 대해 심정적으로 이반하는 것은 이해가 되는 일이다.
무엇보다 이런 태도는 기간제 교사들을 온전한 투쟁 주체로 보지 않는 오만한 태도다. 기간제교사 정규직 전환 요구와 투쟁은 기간제 교사들이 스스로 나서며 시작됐다. 앞으로도 이 운동은 기간제 교사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이끌어 가야지, 다른 누군가가 대리할 문제가 아니다. 물론 기간제 교사들이 정세와 세력관계의 불리함 때문에 또는 주관적 조건의 미비함 때문에 종종 불가피하게 타협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투쟁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타협하는 것과,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정규직화 대상이나 방안 논란에 빠지는 것은 천지차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비록 온전한 요구를 쟁취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동안 축적된 투쟁력과 경험과 일부 성취에 따른 자신감을 바탕으로 더 큰 운동을 위해 재차 투쟁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는 초장부터 운동 내부가 흔들리고 심지어 분열해 요구 성취는커녕 사기 저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기간제 교사 노조는 이제 막 걸음마를 내딛고 있다. “정규직 전환은 안 되고 ‘현실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압력이 기간제 교사의 투쟁을 약화시킬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전교조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방안’을 고심하며 현실에서는 사실상 관료적 대리주의를 의미하는 조건부 찬성론을 거둬들이고 그들의 요구와 투쟁을 온전히 지지하고 연대하는 것이다.
이 글은 애초 《진보교육》에 기고하려고 준비했으나, 《진보교육》 편집팀이 게재에 난색을 표했다.
그래서 이 글의 쟁점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기 위해 〈노동자 연대〉에 보낸다. -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