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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 ― 도시의 포식자들

2009년 두리반, 2011년 카페 마리, 2015년 테이크아웃드로잉, 2018년 궁중족발.

애초 이곳들은 서울 도심이나 그 가까운 곳에서 돈이 적거나 없는 사람들이 장사하던 곳들이다. 그들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창의성을 발휘해 자신의 상점과 그 골목을 활기차고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자 부동산 개발업자와 중개인, 임대회사, 기업주들은 이런 곳들을 투자 잠재력이 있고 이익을 내는 지역으로 평가했다. 이른바 ‘뜨는’ 지역(핫 플레이스)이 됐다.

이제 탐욕스러운 부동산 개발업자나 기업주들이 부동산 가치를 부풀렸다. 지역 주민과 상인들은 터무니없는 임대료를 강요받았다. 그리고 (그들이 못 견뎌 떠나기 시작하자 그 빈자리에) 다국적 기업들의 프랜차이즈, 고급 양품점, 고급 주택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지난 몇 년 새 서울에서 나타난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정부와 서울시는 이를 ‘도시 재생’이라고 부른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에 ‘도시재생사업단’을 발족했고, 박원순 현 서울시장도 도시 재생에 적극적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6월 ‘도시재생특별법’을 제정해 젠트리피케이션을 촉진시켰다.

“빚 좀 갚아 나가며 장사가 좀 되겠다 싶었는데” 쫓겨날 처지가 된 서민들 ⓒ이미진

역전

젠트리피케이션은 대도시의 오래된 도심에서 일어나는 공간적 변화를 뜻하는 용어로, 1960년대 중반 영국에서 처음 등장했다.(젠트리피케이션은 영국의 전통적인 중간계급인 젠트리에서 파생된 용어다.)

노동계급 주택 및 방치된 주택이 재생돼 중간계급의 동네로 바뀌는 것을 가리켰다. 그 전까지는 도시화가 외곽으로 진행되고 중·상류층 거주지가 도심 외곽으로 나가는 교외화 경향이 도시 발전의 지배적 형태였다.(한국에서는 분당과 일산 신도시 개발이 그런 경향을 나타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역전돼, (신)중간계급이 도심으로 귀환하고 노동계급을 비롯한 하층민은 이곳으로부터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젠트리피케이션은 특히 200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도시화의 핵심적 일부가 됐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 뉴타운 개발: 개축이 아닌 신축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전면 철거와 재개발에 기초한 도시 개발.

· 강남 가로수길이나 한남동: 금융업 등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갑부들이 중간계급마저 쫓아내는 슈퍼 젠트리피케이션.

이미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던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용어가 언론에 등장한 것은 대략 2014년부터다. 〈한겨레〉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이렇게 정의했다. “도시환경의 변화로 중·상류층이 도심의 주거지로 유입되면서 주거 비용을 끌어올리고, 비싼 월세나 집값 등을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2014년 11월 24일치)

젠트리피케이션은 중간계급의 유입, 지가와 임대료의 상승, 기존 주민의 전치(displacement, 기존 거주자가 쫓겨나고 밀려나는 과정)로 요약할 수 있다. 이처럼 노동계급에게 불의하기 짝이 없는 상황을 빗대, 가장 가고 싶은 대학은 ‘임대’,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슬픈 우스갯소리마저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사악한 본질을 잘 보여 주는 해외 사례 중 하나는 2012년 런던 올림픽이다. 지방의회와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올림픽 준비를 구실로 런던 동쪽 변두리 지역을 철거했다. 기업들은 막대한 투자를 통해 이 지역을 국제 스포츠·놀이 공원으로 바꿨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부자들의 유희와 이윤을 위한 사업임을 보여 줬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자본가들이 쏟아부을 수 있는 투자 규모도 보여 줬다.

지상전

젠트리피케이션은 자본주의가 벌이는 빈곤과의 전쟁의 지상전이다. 상점에 딸린 부속 공간, 주택, 공공 장소, 재화와 서비스를 시장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화와 지역 공동체를 시장 투기와 상품 거래로 만들어 불평등과 계급 분리를 조장한다.

미국인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역사학자인 마이크 데이비스는 이를 “건조[건축] 환경 수준에서 공간 아파르트헤이트”, “새로운 계급 전쟁”이라고 명명했다.

자본가들은 쉼없이 새로운 시장을 확대하고 창출하고 지배해야 한다. 그들은 사람들(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장소(토지, 건조 환경)와 사물(재화, 서비스, 자연 자원)을 수탈할 새로운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탐욕스러운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저임금 노동자들이 많은 곳을 전략적 “재생” 지역으로 노린다. 부동산 개발업자와 중개업자, 대형 임대회사, 친기업 정치인들이 부동산·주택·지역사회 등을 상품화한다.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은 자본주의적 시장화가 우리의 도시·동네·지역사회로 확대되고 스며들고 자리잡는 한 형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공포, 전치, 불평등에 의해 촉진되고 성장한다. 그래서 젠트리피케이션은 “사회 정화”와 같은 말이다.

우리는 “사회 정화”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 사회적(공공) 주택 대량 보급을 요구한다. 또, 공공서비스 확대, 복지 확대,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한다. 서촌 궁종족발 지키기 같은,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선 항의는 이런 진보를 위한 집단적 투쟁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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