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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국민연금 개악 예고:
더 내거나 덜 받으라는 오래된 협박을 되풀이하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와 ‘개혁’ 방안을 담은 보고서가 8월 17일 공개된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 등은 8월 11일 보고서를 확정하고 언론에 핵심 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보고서에는 국민연금 고갈 시점과 이를 늦추기 위한 방안 두 가지가 제시돼 있다고 한다.

현행 보험료와 소득대체율을 유지할 경우 국민연금 기금은 2057년에 바닥난다고 한다. 이는 5년 전인 2013년에 추정한 예측보다 고갈 시점이 3년 정도 앞당겨진 것인데, 사실 39년 뒤에 고갈될지 42년 뒤에 고갈될지는 정확히 예측할 수도 없고 중요한 문제도 아니다. 출산율 등 인구적 요인이나 고용률 등의 변화에 따라 이 예측치는 크게 달라져 왔고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다.

오히려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는 국민연금 기금을 634조 원이나(2018년 8월 현재) 쌓아 두고도 한편에서는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율이 OECD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현실이다. 현재 쌓여 있는 기금만으로도 65세 이상 노인 전체에게 매달 100만 원씩, 8년 가까이 지급할 수 있다. 이 돈이면 대부분의 노인이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보고서는 이런 불합리한 상황을 최소한 수십 년 동안 내버려 두는 가정 하에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현행 보험료는 소득의 9퍼센트다. 그렇게 40년 동안 보험료를 내면 월평균 소득의 45퍼센트(소득대체율)를 연금으로 돌려준다. 소득대체율은 2007년에 10퍼센트포인트 깎였고, 또 매년 0.5퍼센트포인트씩 낮아져 2028년에 40퍼센트까지 낮아지도록 돼 있다. 2006년 당시 노무현 정부가 60퍼센트이던 소득대체율을 20년에 걸쳐 40퍼센트로 낮추는 연금 ‘개혁’을 밀어붙인 결과다.

‘소득대체율 40퍼센트’도 명목상의 수치로, 보험료를 40년 동안 냈을 때에나 받을 수 있다. 실제로는 2017년 기준 국민연금 신규 수급자의 평균 가입 기간은 약 17년에 불과해, 실질소득대체율은 24퍼센트밖에 안 된다. 전체 연금 수급자의 절반 이상은 한 달에 30만 원도 받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용돈연금’이라 불리는 이유다.

보고서가 제시한 두 방안 중 첫째는 소득대체율을 현행 45퍼센트에서 더 낮추지는 않되, 당장 내년부터 보험료를 현행 9퍼센트에서 10.8퍼센트로 인상하는 안이다(더 내고 그대로 받는 안). 장기적으로 기금 고갈 시기를 어느 시점으로 할지, 이를 위해 보험료를 얼마나 낼지는 추후 논의하자는 안이다.

둘째 방안은 기금 고갈 시점을 2088년으로 늦추기 위해 보험료를 소득의 13퍼센트로 인상하는 안이다. 소득대체율은 예정대로 40퍼센트까지 낮춘다. 또, 연금수급 개시 연령을 65세(2033년)에서 68세로 늦추는 것이다(많이 더 내고 덜 받는 안).

말이 복수안이지 사실상 첫째 안을 받으라고 협박하는 꼴이다. 70년 뒤의(!) 기금 고갈을 막기 위해 현재 노동자들에게 보험료를 44퍼센트나 인상하라는 미친 소리보다야 낫지만, 결국 지금처럼 받으려면 당장 내년부터 보험료를 20퍼센트 인상하라는 얘기인 것이다.

즉각 반발이 일자 정부는 ‘정부 안’이 정해진 것은 아니라고 발뺌했다. 그러나 이를 곧이 들을 사람이 있겠는가? 알 만한 사람들은 첫째 안을 보자마자 친민주당 지식인들이 오래전부터 제시해 온 안이라는 사실을 대번에 눈치 챌 것이다. 그 지식인들은 국민연금이 어지간한 액수는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편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들이 즐겨 사용하는 OECD 통계를 봐도 이 나라 사용자들의 사회보험료 부담 비율은 턱없이 낮다. 현재 우리 나라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국민연금 보험료를 반반씩 부담하게 돼 있는데, 이 비율을 조정해 사용자들의 부담 비율을 높이면 노동자들의 보험료 인상 없이 현행 소득대체율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기업주들의 부담을 더 늘리는 방법은 아예 배제하고 현행 비율을 유지한 채 똑같이 부담을 늘리라고 하는 것이다. 노동시간, 최저임금, 비정규직 등에서 모조리 공약을 어긴 친기업 정부다운 해법이다.

자유한국당과 〈조선일보〉 등 우파는 전통적으로 소득대체율을 더욱 삭감하고 그조차 대부분 노동자들의 보험료로 해결하는 해법을 제시해 왔다. 다만 이번에는 워낙 인기가 없는 처지라 기금운영위원회 ‘독립’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우파가 말하는 독립이 좋은 것일 리 없다. 국민연금 기금으로 삼성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를 도와준 장본인들이다.

우파가 말하는 기금운용위원회 독립은 실제로는 대중의 압력을 완전히 차단하라는 얘기일 뿐이다. 지금도 기금운용위원회는 각종 ‘금융 전문가’들이 운영하는데, 이를 정부 통제에서조차 벗어나게 하는 것은 사실상 수백조 원의 기금을 탐욕스런 자본가들의 수중에 내맡기는 꼴이 될 것이다.

한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정부안 발표를 앞두고 각각 성명을 발표해 소득대체율을 올려 노동자들의 노후를 실질적으로 안정시키라고 요구했다. 다만 ‘사회적 합의’를 강조할 뿐 보험료 인상을 명시적으로 반대하지 않는 점은 유감이다. 정부 자신이 바로 그 ‘사회적 합의’를 명분으로 보험료 인상을 밀어붙이려 하는 상황에서 말이다.

국민연금 개악을 막고 노동자들의 노후를 보장하려면 친기업 정부에 맞선 투쟁에 강조점을 둬야 한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악에 맞서 싸운 공무원 노동자들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불필요한 양보는 투쟁을 약화시켜 패배를 낳았다 ⓒ이윤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