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의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 결정:
지금 필요한 것은 문재인 우향우에 맞선 투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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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이하 중집)는 8월 16일 회의를 통해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를 결정했다. 최저임금 삭감법 추진에 항의해 5월 22일 노사정대표자회의 참가 중단을 선언한 지 석 달 만이다.
그러나 지난 석 달 동안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 참가 중단을 재고할 만한 변화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남아 있었다 해도 박차고 나와야 마땅한 일들만이 잇달아 일어난 석 달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삭감법 등에 대해 반성하기는커녕 지방선거 이후 우향우에 속도를 더하면서 친기업적 정책에 열성을 보였다. “혁신 성장”의 이름으로 대기업들이 요구해 온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지금 민주당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규제프리존특별법을 8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박근혜가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치 세우고] 기조 속에 추진했던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이다.
문재인은 7월 3일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지방 선거 이후 진행하려는 개혁에 속도를 조금 더 내겠다”고 했는데, “개혁”의 실체가 바로 이런 것이었던 것이다! 당시 아무것도 얻지 못한 이 면담에 대해 민주노총 간부층 내에서도 불만이 속출했다.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반면 노동자들을 향해서는 공세가 이어졌다. 최저임금 삭감법을 통과시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부는 해고를 쉽게 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예고했다. 이른바 한국형 안정유연모델은 “실업급여 등을 확충해 안전망을 확대해 나가면서 노동시장 유연성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한겨레〉). 최근 정부가 예고한 국민연금 개악도 노동계급 사람들의 삶을 악화시키는 정책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새로운 사회적 대화가 “지난 정권까지 강압적으로 추진하다 이미 파탄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 폐기를 전제로 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4월 24일 민주노총 논평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개편방안 합의에 부쳐’).
그러나 규제프리존특별법 추진을 보든 노동시장 유연성 카드를 꺼내드는 것을 보든, 문재인 정부가 민주노총이 주장한 “전제”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이 명백하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노사정대표자회의 참가 중단을 선언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정책이 사실상 폐기되는 국면”이라고 했다. 그런 국면은 지속되면서 더욱 분명해지고 있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도 “노동존중 정책이 사실상 폐기되는 국면”이 지속되고 있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복귀 명분이 별로 없음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신뢰회복 조치를 위한 노정교섭 병행 추진”을 결정한 듯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무너진 신뢰가 노정교섭을 통해 회복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 합당한 것일까? 이를 검증하는 데는 24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가 결정된 직후,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로 노정 실무협의(노정 4자회담을 추진하기 위한 실무협의)가 열렸다. 하지만 정부 측은 법외노조 지위를 직권으로 취소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하면서 이것이 대통령의 의지라고 강조했다. 결국 전교조는 노정 4자회담이 의미 없다고 보고 이를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고 알려졌다.
노정교섭에 대한 기대는 문재인 정부의 우향우가 정부 내 일부 인사들만의 문제라고 오해하는 데서 비롯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노정교섭 병행 추진”이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의 ‘보완책’으로서 제시된 것은, 노사정 사회적 대화는 반대해도 노정교섭은 지지하는 좌파 노조 간부들을 달래고 설득하려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정책대의원대회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를 결정하면서, 경제사회노동위원회(노사정위 후신인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이하 경사노위) 참가 문제는 대의원대회에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만이 아니라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와 노사관계제도개선위원회 등에도 참가하기로 결정한 것을 보면, 사실상 경사노위 논의에 참가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사노위는 6월 12일 출범했다. 그리고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와 노사관계제도개선위원회는 경사노위 산하 의제별 위원회들로, 각각 7월 12일과 20일 발족했다. 경사노위는 민주노총 내 논란을 방지하면서 민주노총 지도부를 이 위원회들에 참여시키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최근 느닷없이 이 의제별 위원회들을 노사정대표자회의 산하 위원회들인 것으로 이름패를 바꿔 달았다.
그러나 이런 꼼수에도 불구하고 사회안전망이나 노사관계제도 등이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의 논의 의제로 선정된 것이라는 사실까지 뒤집을 수는 없다. 실제로 경사노위 측에 문의해 보니, 민주노총이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가를 결정하면 각 위원회는 경사노위 산하 기구로 전환될 예정이라고 한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올해 1월 25일 노사정대표자회의 참가를 결정했을 때, 노사정대표자회의는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재편과 구성을 위한 논의기구”로 규정됐다. 그러나 이번 복귀 결정을 통해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기구 개편 방안, 의제 선정 등 애초 논의 범위를 넘어)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에서 다루기로 한 의제 논의에도 참가하게 된 것이다.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경사노위 참가 여부를 결정하기도 전에 말이다.
이런 점에서 10월 정책대의원대회의 논의와 결정은 김 빠지는 사후 승인에 불과하게 될 수 있다.
의사결정 절차 문제뿐 아니라 민주노총이 이 위원회들에서 어떤 내용으로 대응할지도 문제다. 정부와 사용자들은 국민연금 개악을 압박하고, 사회안전망 마련을 노동시장 유연화의 추진력으로 이용하려는 등 민주노총에 양보를 강요할 텐데 말이다.
대중 투쟁
문재인 정부의 우향우를 보면 지금은 어느 때보다 그에 맞선 실질적인 투쟁을 해야 할 때다. 정부가 국민연금 개악이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규제프리존특별법 등을 정신없이 쏟아내고 있는 데 반해 노동운동은 신속하고 단호하게 저항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노사정대표자회의 참가 중단 이후 6월 30일 7~8만 명 규모의 노동자대회를 개최했지만, 이내 사회적 대화 복귀 쪽을 기웃거렸다. 산별노조·연맹 지도자들과 일부 노동단체 지도자들도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를 촉구했다.
그러나 노동조합 지도부가 문재인 정부와의 신뢰 회복을 바라고 대화에 대한 기대를 부추기는 동안 정부에 맞선 노동자 대중 투쟁이 전개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식의 “투쟁과 교섭 병행”은 가능하지 않다. 노동자들을 무장해제 시키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지금 부족한 것은 사회적 대화나 교섭이 아니다. 어차피 사회적 대화나 교섭에서도 정부와 사용자들은 노동자들의 조건을 공격하거나 기껏해야 형편없는 안을 들이밀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저지할 힘을 실제로 발휘하는 것이다. 그 힘은 경제 침체 전망 속에서는 오직 대중 투쟁을 통해서만 발휘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