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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즘2018 호평받은 강연:
《공산당 선언》의 주제들은 무엇이고, 현실과 어떤 관련이 있나?

올해는 마르크스 탄생 200년인 해이고, 《공산당 선언》 출판 170년인 해입니다. 《공산당 선언》은 서구 역사에서 언제나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두 번째 베스트셀러입니다.

《공산당 선언》이 마르크스 사상을 배우기 위한 최상의 입문서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에 불만 있고 반자본주의 사상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산당 선언》(이하 《선언》)의 저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공저자로 돼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마르크스가 다 썼습니다. 마르크스가 출판 제작 마감일에 임박해 원고를 제출했기 때문에, 엥겔스가 공저자 구실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엥겔스가 아무 기여도 안 한 건 아닙니다. 엥겔스는 《선언》에 포함될 내용과 용어를 놓고 마르크스와 자주 토론을 했고, 마르크스는 엥겔스의 소책자 《공산주의의 원리》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공산당 선언》의 배경

《선언》이 출판되던 바로 그때 파리에서 막 혁명(“2월혁명”)이 시작돼, 며칠도 채 안 돼 오를레앙 왕조가 무너지고, 프랑스 제2공화국이 수립됐습니다.

혁명은 독일로 번졌고, 마르크스·엥겔스와 동료 공산주의자동맹 회원들은 독일로 향했습니다.

마르크스 등은 독일 자본가들이 봉건제를 전복하고 곧이어 독일 노동계급이 혁명으로 권력을 장악하기를 기대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이런 시나리오를 “연속혁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독일 자본가들은 기성 봉건제의 억압보다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혁명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독일 혁명은 이듬해인 1849년 패배로 끝났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혁명은 패배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영국으로 망명해야 했습니다.

어떤 소책자인가?

이 소책자의 제목에 ‘선언’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첫눈에 알 수 있는 점은 이 책이 강령을 설명한 책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공산당’은 누구였을까요? 공산당이라 함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 전인 1918년 레닌이 제안해 볼셰비키당이 당명을 바꿨을 때, 바뀐 당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 시대에 ‘당’이라는 말은 현대적인 ‘정당’을 뜻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 측” 또는 “… 조류” 정도를 뜻하는 느슨한 표현이고,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일상어였습니다.

그러므로 《공산당 선언》의 ‘공산당’은 막연히 노동운동의 혁명적 조류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사회주의’라는 말도 당시에는 오늘날과 매우 다른 것을 뜻했습니다. 당시에 사회주의는 사회 개혁 운동을 뜻했습니다(예컨대 《선언》 후반부에 언급되는 ‘봉건적/반동적 사회주의’, ‘부르주아적/보수적 사회주의’, ‘공상적/비판적 사회주의’ 등).

당시에 사회주의는 점잖고 명망 있는 운동이었습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는 자신이 계급 적대를 초월해 있다고 믿는다고 마르크스는 꼬집었습니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공상적 사회주의자에게 노동계급은 가장 고통받는 계급이라는 관점에서만 존재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계속해서 마르크스는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그들[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사회 구성원의 조건, 심지어 가장 형편이 좋은 사람들의 조건까지도 개선하기를 원한다. 이로 인해 계급의 구별도 없이 습관적으로 사회 전체, 특히 되도록 지배계급에 호소하는 것이다.”

오늘날 시민운동을 비롯한 매우 온건한 사회운동은 마르크스 당시의 공상적 사회주의와 매우 닮았습니다.

세월이 지나 19세기 후반 무렵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반대 그리고 모종의 사회적 소유권을 의미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때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기꺼이 자신들을 ‘사회주의자’라고도 불렀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사회민주주의’라는 말도 사회주의와 동의어로 사용됐는데, 특히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회주의를 사회민주주의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1918년 이전까지 러시아 볼셰비키의 정식 명칭은 ‘러시아사회민주주의노동자당(볼셰비키)’이었습니다.

물론 오늘날 사회민주주의는 사뭇 다른 것을 뜻합니다.

과연 고전이다

‘자본주의가 많이 변했으므로 《공산당 선언》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주장에는 변형들이 많습니다. 예컨대 이런 주장들입니다: ‘노동계급이 내부적으로 이질적이 돼 단결이 불가능하다’, ‘노동계급이라는 건 없다. 다양한 계층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제 적어도 선진 자본주의 세계의 노동계급은 생활수준이 높아져 혁명에 아무 관심도 없다’, ‘사회 양극화를 소득 주도 성장으로 개선할 수 있는 등 자본주의의 폐해를 개혁할 수 있다’ 등등.

이런 주장들을 여기서 다 다룰 수는 없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김하영 노동자연대 운영위원이 쓴 《오늘날 한국의 노동계급》(책갈피, 2017)을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다만, 여기서는 다섯 가지 점을 간단히 언급하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이 올라가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다른 곳에서도) 없습니다.

둘째, 마르크스가 지적한 사회 양극화 추세는 오늘날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 돼 있습니다. “사회는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라는 직접 대립하는 두 계급으로, 양대 적대 진영으로 점점 더 분열하고 있다.”

여기서 마르크스가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을 제외한 나머지 계급이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셋째, 자본주의의 문제들 중 일부는 국가 개입에 의해 일정 기간은 개선될 수 있는데, 마르크스는 이 점을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넷째,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이 올라가고, 자본주의의 일부 문제들이 국가 개입으로 개선되더라도 자본주의의 기본적 성격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경제 위기는 무한정 늦출 수 없고 조만간 재발됩니다. 사회의 위기와 기후 변화도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다섯째, 마르크스가 《선언》 초반부에서 인류 역사(문자로 기록된)의 상시적 특징이라고 선언한 계급투쟁도 거듭 재연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노동자 연대〉 신문 과월호 기사들의 제목만 훑어봐도 알 수 있습니다.

노동계급은 여전히 혁명적 잠재력이 있다 노동계급이 온갖 차별과 분열을 극복하고 단결해 그 잠재력을 실현하도록 애쓰는 것이 사회주의적 정치이다 ⓒ이미진

마르크스는 계급투쟁이 때로는 공공연해지고 때로는 은폐된다고 했습니다. 계급투쟁이 덮이어 감춰지거나 가려져 숨겨지는 시기는 일부 사람들에게 계급투쟁이 마치 과거지사가 돼 버린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인상에 불과한 것입니다.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선언》의 서두에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에 관해 적들이나 경쟁자들이 갖고 있는 오해나 그들이 해대는 비난을 반박하고 공산주의의 진정한 사상과 목적을 밝힙니다. 그에 따르면,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을 폐지하는 것입니다. 모든 재산을 폐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1절은 계급과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에서 시작해 부르주아지, 즉 자본가 계급의 등장을 설명하는 것으로 나아갑니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부르주아지는 봉건 사회의 모순이 심화되는 것으로부터 등장했는데, 당시에 부르주아지는 봉건제 타파라는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구실을 했다. 하지만 이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이 심화되자 부르주아지는 반동적인 구실을 하고 있다. 이제는 프롤레타리아라는 새 계급이 부르주아지를 몰락시켜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즉 노동계급이 혁명적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않아, 새 계급사회를 만들 이해관계도, 의지도, 능력도 없기 때문이다. 승리해서 계급 착취를 끝내는 게 프롤레타리아의 관심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노동계급이 자본가 계급에 승리해서 계급 착취를 끝내려면 어째야 할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의 1872년 독일어판에 부친 서문에서 바로 전해에 일어난 파리 코뮌의 교훈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노동계급은 기존의 자본주의 국가를 그대로 인수해 사용할 수 없고 기존 국가를 강제로 해체시켜야 한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국가를 새로 건설해야 한다.

계급투쟁의 결정적 중요성

이 주제와 관련해 마르크스의 유명한 말을 들어 봅시다. “지금까지 사회의 역사는 모두 계급투쟁의 역사다. …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부단히 대립했으며,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끊임없이 투쟁을 벌여 왔다. 이 투쟁은 항상 전체 사회의 혁명적인 개조로 끝나거나 서로 싸우는 계급들의 공멸로 귀결되었다.”

마르크스의 말은 크게 두 가지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계급투쟁의 결과에 따라 사회가 다르게 전개됐다. 제가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일본과 조선과 중국의 운명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 사이에 이렇게 서로 갈렸습니다.

일본: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1868년 사무라이(武士)들이 천황의 권위를 업고 쇼군 ( 将軍)을 타도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발전의 조건들을 창출하는 개혁들을 단행했습니다. 사무라이들은 또한 외세의 압박에 맞서고자 군사적 공업화를 추진했습니다. 이를 통해 일본은 제국주의 체제의 일원으로 올라섰습니다. 트로츠키는 이러한 일본의 자본주의적 개혁을 두고 “적을 가정교사로 만들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조선: 1894년 갑오농민전쟁이 패배함에 따라 광무개혁(光武改革 1897~1905)이 실패했습니다. 광무개혁은 일본 메이지 유신을 모방한 것이었습니다. 아래로부터의 반란 실패와 위로부터의 개혁 실패가 결합돼 조선은 일본에 의한 식민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중국: 반식민지화 상태에서 1949년 민족해방 혁명이 성공합니다. 마오쩌둥과 급진적 중간계급 지식인들이 (농민의 광범한 지지를 업고) 이끈 이 혁명은 제국주의를 해외로 축출하고, 자본 축적의 중심 구실을 할 국민국가를 세우고, 농업의 지주 제도를 철폐하며 사회를 국가자본주의로 변혁했습니다. 그러나 1976년 마오쩌둥 사후, 특히 1980년 이후 중국은 시장경제를 대거 도입하는(여전히 국가 주도였지만) 자본 축적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결정론 아님

조금 전에 인용한 마르크스 말의 둘째 의미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지금까지 사회의 역사는 모두 계급투쟁의 역사다. … 이 투쟁은 항상 전체 사회의 혁명적인 개조로 끝나거나 서로 싸우는 계급들의 공멸로 귀결되었다.” 여기서 보듯, 마르크스는 결정론자가 아닙니다. 마르크스가 결정론자라거나, 마르크스가 사회주의의 필연적 도래를 말했다는 오해가 흔합니다. 결정론은 인간의 결정 및 행동과 관계없이 역사적인 힘들의 결과로 사회가 발전한다는 생각입니다. 선택을 부정하는 사상입니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선언》의 제1장 맨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끝냅니다. “부르주아지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는 둘 다 불가피하다.” 마르크스가 간혹 이렇게 결정론적으로 말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훨씬 우세한 측면으로서 마르크스는 결정론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서로 싸우는 계급들의 공멸” 운운을 보면 그가 결정론자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싸우는 계급들의 공멸”의 고전적 사례로는 4세기 이후 로마제국의 쇠퇴를 들 수 있습니다.

다른 사례로는 오늘날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 공멸했을 때 벌어질 일입니다. 인류는 일찍이 1930년대에 그런 일을 힐끗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1918~1923년 독일 혁명이 패배하고 1929년 세계경제 공황이 엄습하자 히틀러의 나치당이 급성장했습니다. 1933년 급기야 히틀러는 집권했습니다. 그리고 공산당과 사회민주당, 노동조합 등 모든 노동자 조직들이 분쇄당했습니다.

다른 한편, 1920년대 말 소련에서는 스탈린이 부상해 노동자 권력의 모든 잔재를 한꺼번에 싹 제거해 버렸습니다.

1934년부터 1936년까지 노동자 투쟁이 다시 일어났지만(프랑스와 스페인 등지에서), 1937년 여름쯤에는 패배했습니다.

그래서 빅토르 세르쥬(아나키스트 출신 볼셰비크)는 1930년대 후반을 “세기의 한밤중”이라고 묘사했습니다.(이 말은 그의 1939년작 소설의 제목이기도 했습니다.)

폴란드계 독일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1871~1919)는 인류의 미래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1930년대 후반 같은 상황이 ‘야만’이고, 이는 바로 서로 싸우는 계급들의 공멸로 빚어지는 상황입니다.(1930년대 후반의 야만적 상황은 한층 더 야만적인 제2차세계대전을 겪고서야 비로소 일단락됐습니다.)

《공산당 선언》 초판

자본주의 국가

그런데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국가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는 조금 살펴봐야 합니다. “현대 국가의 권력은 부르주아지 전체의 공통된 문제들을 처리하는 위원회일 뿐이다.”

요즈음, 국가가 사회를 초월해 있고 국민을 대표한다는 생각이 상식처럼 돼 있습니다. 하지만 방금 인용한 마르크스 말은 그런 생각을 반박합니다. 마르크스의 말은 국가가 자본가 계급의 도구이며 무기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르크스 말대로 자본주의 국가는 전체 자본을 위한 다른 기능들도 수행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일들입니다. 통화 관리, 거래 활동 감독하기, 노동력 공급 보장하기(복지국가, 근로기준법), 국내 시장 어느 정도 보호하기(트럼프), 갑작스런 기업 파산이나 은행 파산 사태에 직면해 중앙은행을 통해 개입하기(한국GM), 군사력 독점을 통해 제국주의나 친제국주의적 경쟁을 하기(한반도 주변 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주자들)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인용한 마르크스 말은 세 가지 오해를 부를 수 있습니다. 첫째, 야경국가론 냄새를 풍깁니다. 야경(야간 경비원) 국가론은 오늘날의 ‘작은 정부’론과 흡사한 고전적 자유주의 국가론입니다. 국가는 평화를 지키고, 재산권을 집행하고, 약간의 세금을 거두는 것에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는 학설입니다. 하지만 방금 전에 제가 말했듯이, 국가는 자본을 위해 상당히 많은 일을 합니다.

둘째, 마르크스의 말은 자본가 계급이 일관성 있는 전략을 갖고 응집력 있는 하나의 전체로서 행동한다는 인상을 풍깁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본가 계급이 하나로 응집돼 통으로 행동하는 것은 드문 일입니다. 마르크스가 다른 저작들에서 설명하듯이, 자본주의는 두 가지 핵심적인 분열을 만들어 냅니다. 하나는 자본가 계급이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데엔 이해관계를 같이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 분열은 자본가들이 서로 경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후자의 분열, 즉 자본 간 경쟁 때문에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가 계급 전체를 대표할 수 없습니다.

셋째, 경제와 정치의 위기가 매우 심각하면 일시적으로 국가는 자본의 ‘일반 의지’와 긴장을 빚을 수 있는데, 마르크스의 말은 이런 일시적 상황을 상정하지 않습니다(가령 트럼프의 등장과 그의 외견상 독불장군식 행동).

물론 자본주의 국가는 일상적으로는 마르크스 말대로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도모합니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국가는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식을 기존 방식과 달리할 수도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1848년 혁명이 패배한 직후인 1852년에 등장한 루이 보나파르트의 군사독재 정권을 두고 ‘보나파르트 정체(政體)’라고 불렀는데, 그때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국가가 프랑스 자본주의를 위해 프랑스의 개별 자본들을 억압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노동계급 삶의 불안정성과 노동자 정치투쟁 ― 결론을 대신해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부르주아들 사이의 경쟁이 점점 더 심해지고, 그로 말미암은 상업 위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임금은 등락을 거듭하게 된다. 기계류가 어느 때보다 급속히 발달하고 지속적으로 개선되면서 노동계급의 삶은 더욱 불안정해진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노동자들의 삶은 더 불안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프레카리아트’라는 별도의 계층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노동계급 자체의 삶이 불안정해집니다.

마르크스는 또한 이렇게 말합니다. “노동자들은 가끔 승리를 거두지만 승리는 일시적일 뿐이다. 노동자 투쟁의 참된 성과는 그 직접적인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노동조합을 확장해 나아가는 데 있다. …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다. …”(강조는 발제자의 것임)

노동자들은 가끔 승리를 거둡니다. 그러므로 노동자 투쟁에 대해 절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승리는 대개 일시적입니다. 자본가 계급도 반격을 하고 종종 필사적으로 반격을 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자 투쟁의 성과를 직접적인 것들로만 보는 사람들은 시야가 근시안입니다. 노동자 투쟁의 진정한 성과는 조직과 의식의 성장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마르크스는 노동자 정치 조직과 정치 의식의 성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레닌과 비교됩니다.

이는 인용된 마르크스 말이 그 전해인 1847년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해인 1847년, 모든 사회주의자들은 친자본주의 경제학자들과 함께 노동조합을 반대하는 데에 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특히 아나키스트의 시조 피에르-조셉 프루동은 경찰이 파업 노동자들을 향해 발포한 것을 찬양했습니다! 바로 이런 기억의 영향을 받아 마르크스는 노동조합 조직의 성장만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계급투쟁은 정치투쟁”이라는 마르크스 말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예컨대 지금 이 순간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임금과 고용을 둘러싸고 투쟁을 하고 있는데, 그건 정치투쟁인가요? 이 부분에서 영어판은 독일어판을 정확하게 옮기지 않았습니다. 독일어 원본에서는 바로 앞 문장이 이렇게 돼 있습니다. “국가적인 투쟁인 계급투쟁.” 즉,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투쟁”은 국가적인 계급투쟁, 즉 계급 대부분이 참가하는 투쟁(가령 총파업)을 말합니다.

마르크스는 바로 한해 전에 쓴 프루동 비판서 《철학의 빈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계급 대 계급의 투쟁은 정치투쟁이다.”

나중에, 가령 1881년경 엥겔스는 계급들 사이의 투쟁은 정치투쟁이 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이제 마르크스에게 정치투쟁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알 수 있게 됐습니다. 계급 대부분이 참가하거나 참가하게 되기 쉬운 투쟁이 바로 정치투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부 좌파가 흔히 노동계급의 조건을 둘러싼 투쟁을 모두 경제투쟁으로 여기고, 공식 정치권에서 논란될 이슈를 둘러싼 투쟁을 정치투쟁으로 여기(며 후자를 중시하)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의 정치투쟁 개념을 오해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정치투쟁을 위해 평소에 지난한 정치 운동을 건설합니다. 그런 전면적인 상황은 마치 무에서 유가 창조되고 메시아가 도래하듯이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부분적인(부문의) 투쟁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보편화되는 것입니다. 이 ‘연결’과 ‘보편화’ 과정은 결코 자동적이지 않습니다. 인간 행위주체, 즉 노동계급 자력해방을 추구하는 혁명가들이 제구실을 해야 합니다.

혁명가들은 부분(부문)적인 노동자 운동이 서로 연대하고 서로 연계되도록 해 주는 정치적 주장과 정치적 활동을 해야겠습니다. 그게 바로 사회주의적 정치이고, 그게 성공해야 정치투쟁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