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 선언》과 1848년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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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848년 《공산당 선언》 출간 170주년이다. 다음은 고(故) 크리스 하먼이 2003년 4월에 쓴 《공산당 선언》 소개 글이다. 크리스 하먼은 《민중의 세계사》, 《좀비 자본주의》의 저자이고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지도적 회원이었다.
《공산당 선언》은 십중팔구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떨친 정치 소책자일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 출신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결성한 작은 조직인 ‘공산주의자 동맹’은 1847년 말에 독일 출신의 두 망명 지식인에게 이 문서의 작성을 의뢰했다. 150년이 지난 지금 보더라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내려놓기 어려울 것이다.
여전히도, 이 책의 구절들에는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면모가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어떤지, 이 사회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주류 경제학자들과 사회학자들은 되풀이되는 전쟁과 반복되는 경제 위기, 많은 사람들의 굶주림과 “과잉생산”이 병존하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지만, 이 책의 설명은 여전히 적절하다. 이 책은 세계화에 관한 최신 서적에야 실릴 법한 구절도 있다.
시대의 흐름
역사를 보면 한 편의 글이 새 시대의 흐름을 포착해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쓴 《공산당 선언》이 바로 그런 글이었다. 《공산당 선언》은 혁명이 임박했다는 어조로 쓰였고, 초판이 판매되기 시작할 무렵 유럽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혁명이 발생했다. 나폴리에서 베를린까지, 그리고 파리에서 부다페스트까지.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이 저작이 곧 유럽의 모든 언어로 번역 출간될 정도로 크나큰 영향력을 떨친 이유가 설명되진 않는다. 이 책이 독자들의 마음을 휘어잡은 것은 고작 40페이지 안팎에 지나지 않는 분량의 문학적 언어로 쓰인 이 책이 당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를 인류 역사의 전반적 맥락 속에 자리매김해서 설명해 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공산당 선언》의 내용이 당시만큼이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비록 책에 언급된 일부 인사들은 죽은 지 오래돼 사실상 잊혀졌지만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산업자본주의가 득세한 세계에 살고 있다. 대기업들이 시장 점유율을 놓고 경쟁하며, 노동자 수억 명이 공장과 광산과 사무실에 집중돼 일하고 있다. 인간의 온갖 가치가 금전으로 환산된다. 우리네 삶은 자본주의에 너무 물들어 있어서, 사람들은 대부분 자본주의 하에서 나타나는 인간 행동을 모종의 보편적 인간 본성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런 형태의 사회가 생긴 지는 고작 200년 남짓밖에 안 됐다. 1770년대에 들어서야 잉글랜드 북부에 근대적 공장이 탄생했다. 시장 원칙을 기초로 세워진 사회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 분석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집필된 것도 이 시기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공산당 선언》 원고를 작성할 때, 산업자본주의 체제가 들어선 지역은 세계의 극히 일부였다. 그조차 영국, 서유럽의 가장자리, 북아메리카 동부 해안 지역에 국한됐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제쳐 두고, 유럽만 보더라도 노동계급은 전체 인구에서 아주 작은 비중을 차지했을 뿐이다. 1870년대에조차 독일 노동계급은 전체 인구의 고작 10퍼센트밖에 안 됐다.
그 시절 전 세계의 산업 노동자는 다 합쳐 오늘날 남한 한 곳의 산업 노동자보다도 적었다.
산업 노동자
당시 세계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사회였다. 유럽은 봉건제라고 불린 사회였다. 권력은 막대한 특권을 누리던 토지 소유자 계급에게 있었고, 그들은 인구의 압도 다수인 농노의 등골을 빼먹으며 살았다. 이들 지배계급은 사회는 고정불변의 위계질서 — 꼭대기에는 신한테 왕권을 부여받았다는 군주가, 밑바닥에는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농노가 있다 — 로 이뤄져 있다는 관점으로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했다.
왕과 영주가 존재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가 억압받지 않으며 정치적 탄압과 굴종 일반이 사라진, 자유롭고 더 진보한 사회를 진정으로 바란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이상을 성취하려면 사회를 시장 원리에 따라, 또는 (애덤 스미스가 개괄적으로 제시한 것과 같은) “부르주아” 사회의 원리에 따라 세계를 재조직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1840년대 들어 소수는 이 견해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산업자본주의가 들어선 곳에서도 옛 사회의 억압이 외양만 바꾼 채 건재했다. 농촌에서의 고된 노동은 공장에서의 고된 노동으로, 흉작으로 말미암은 기근은 산업 공황으로 말미암은 굶주림으로, 마름의 채찍은 경찰관의 곤봉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새로운 체제가 뿌리를 내리는 곳 어디에서든 그에 맞서는 반란이 일어났다. 도시에 살면서 노동해서 상품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반란이었다. [프랑스] 리옹의 비단 직조공 봉기, [독일] 슐레지엔 직조공들 사이에서 전개된 선동, 영국 차티스트 운동 속에서 일어난 거대한 파업과 집회가 그 사례이다. 새로 등장한 자본주의가 옛 봉건제보다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닌 듯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두 사람이 도달한 결론도 그것이었다. 마르크스는 독일 사회의 정치적 문제들을 다루는 심도 있는 글을 쓰려면 사회적 쟁점들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는 사회적 쟁점들을 다루면서 [체제가 작동하는] 새로운 방식이 옛 방식들만큼이나 억압적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파리에 망명을 갔을 때 그는 옛 체제와 새 체제 모두가 아닌 대안을 찾는 사회주의 노동자들의 조직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가족 소유의 공장을 경영하라는 아버지의 요청으로 잉글랜드 맨체스터로 온 엥겔스는 노동자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게 됐다. 엥겔스는 차티스트 운동에서 배웠고 신생 산업자본주의가 낳은 결과들을 다루는 선구적 연구서인 《영국 노동계급의 조건》을 썼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내 협력하며 함께 글을 쓰며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무엇보다 자본주의에 맞설 방도를 모색했다.
이 둘의 공동 작업에서 나온 위대한 산물이 바로 《공산당 선언》이었다. 자본주의가 봉건제 사회 내부에서 어떻게 발생했는지, 새 계급들이 옛 계급들과 충돌하면서 봉건제 사회 내부에서 혁명적 위기를 되풀이해 초래하는 과정이 어땠는지를 서술한 부분은 《공산당 선언》의 백미다. 또한, 이 책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자신에 맞서는 세력을 창출하는지를 보여 주고, 100년 뒤 또한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세계화하고 노쇠해지는 자본주의의 모습을 예견하고 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 소유자들을 위해 더 많은 부를 창출하는 [체제의] 동역학이 어떻게 부조리를 초래하는지 보여 준다. 사람들이 구매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수량의 상품이 있기 때문에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이 대거 생겨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그 병폐를 다루는 수많은 저작들에 견줘 《공산당 선언》이 단연 돋보이는 부분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노동계급을 다루는 부분이다. 《공산당 선언》은 자본을 성장시키는(즉 “축적”시키는) 동력이 자본에 의해 착취당하는 사람들, 즉 노동계급의 규모를 키우고야 만다는 사실도 보여 준다. 그런데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피착취계급과 차이가 있다.
잠재력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을 커다란 규모로 대형 작업장과 대도시에 밀집시켜서, [노동계급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집단으로 투쟁할 잠재력을 준다. 자본주의 이전 사회의 피착취자들은 바로 이 힘이 없었다. 또한 자본주의는 자신의 생산성을 위해 노동자들이 읽고 쓰고 계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길 요구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전례 없는 능력, 어떻게 하면 사회를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재조직할 수 있는지를 깨달을 잠재력을 얻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에 맞서는 노동계급의 투쟁이 언제나 혁명적 방식으로 전개되리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현존하는 사회 속에서 자라났기에, 노동자들은 처음에는 대개 사회에 널리 퍼진 편견을 받아들인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명확히 지적하듯이,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하지만 다름 아닌 자본주의의 동역학 때문에 자본주의가 한때 조장했던 편견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자본주의가 한때 보장한 삶의 질이나 노동조건의 개선이 경제 위기 때문에 도로 박탈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말이다. “모든 견고한 것들이 공기 중으로 녹아 사라”지면서 사람들이 사회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잠재력 또한 생겨난다.
이 중에서 자동으로 이뤄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노동자 투쟁에는 상승기와 하강기가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단결해 공통의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기도 하지만, 일자리를 위한 경쟁 속에서 서로 등을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장했듯이, 노동계급의 단결이 깨지는 시기는 자본이 더욱더 많이 축적되는 시기로 이어진다. 그러면, 노동계급이 더욱 성장해 투쟁과 단결과 계급의식이 고양되는 새로운 시기가 도래하고, 그에 따라 체제 전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더 큰 잠재력이 창출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분석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20세기에는 세계 어느 곳에선가 노동계급 반란이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일이 잦았는데, 그런 반란이 없는 시기가 10년을 넘어간 적이 없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설명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때때로 다음과 같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염두에 둔 노동자가 거의 변함없이 대규모 공장에 종사하는 육체 노동자인데, 오늘날 그런 육체 노동자는 몇몇 나라들에서 인구의 소수이지 않느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실제로 노동자들을 그런 식으로 묘사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는 그들이 살던 시기에 노동계급의 특성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에 담긴 논리를 보면, 노동자는 특정 종류의 노동을 하는 사람으로 — 육체 노동이든 사무직이든 — 한정되지 않다. 그들 주장의 논리는 자본주의가 팽창할수록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임금노동에 의존하게 되고 따라서 사회의 전형적 구성원은 농민이나 자영업자가 아니라 임금노동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날 모든 선진 자본주의 나라에 그 논리가 적용된다는 점을 목격하고 있다.
공산주의자
《공산당 선언》의 핵심 주장은 대부분 오늘날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도 유용하다. 그래도 독자들이 혼란을 일으킬 부분도 조금 있다.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것은 “공산주의자”라는 단어 자체다. 1840년대 후반의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공산주의는 오늘날 사람들이라면 ‘혁명적 사회주의’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로 부르는 것을 뜻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아주 분명하게 말했듯이, “이전의 역사적 운동은 모두 소수의 운동이나 소수의 이익을 위한 운동이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의 운동은 절대다수의 이익을 위한 절대다수의 자기의식적이고 독립적인 운동이다.”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의 승리는 “살아 있는 노동이 축적된 노동을 증대시키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 “부르주아 사회”를 대체해서 “축적된 노동이 노동자의 실존을 폭넓게 하고 풍부하게 하며 북돋는” 사회가 도래하도록 할 것이다.
이 인용문만 보더라도 스탈린, 흐루쇼프, 브레즈네프, 고르바초프가 통치한 소련 사회는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주창한 사회와 결코 같을 수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시장 예찬론에 빠진 지배자들이 통치하는 중국과 세습 독재 국가 북한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반제국주의적이지만 독재 체제인 쿠바조차 마르크스·엥겔스가 주장한 사회와 같지가 않다. 그 모두 노동자들의 능동적 활동에 기반을 둔 체제가 아니다. 그 모두 “살아 있는 노동”(즉 노동자들)이 축적에 종속되지 않은 사회가 아니다.
《공산당 선언》 2부 뒷부분에 제안된 당면 행동을 위한 구체적 요구들에 대해서도 몇 가지 첨언이 필요하다. 그 요구들은 1840년대 말의 사회주의자들이 추구해야 한다고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제안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 요구들이 똑같이 적합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3부는 여러 종류의 “사회주의”를 묘사하는데, 이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는 이해하기 꽤나 어렵다. 예컨대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은 1840년대 중반 독일에 존재했으나 그 이래로는 족적이 사라진 집단이다. 하지만 3부에서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아주 중요한 주장을 남겼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를 사회 꼭대기의 소수가 밑바닥의 대다수 사람들을 위해 선사하는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과 선을 그었다. 그 대신 대중이 스스로 혁명적 행동에 나서서 성취하는 아래로부터 사회주의를 주장한다. 이 문제는 《공산당 선언》이 쓰여진 이래로 항상 사회주의 운동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고, 오늘날의 반자본주의 운동 내 세력들을 구분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준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스스로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이라고 칭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현학적 문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 학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정부나 다국적기업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 영향력을 활용하면 대중 투쟁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개혁가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공산당 선언》은 바로 오늘날을 위한 문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천재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그들이 살던 시기에는 갓 태어난 체제였던 산업자본주의가 세계를 어디로 이끌고 가는지를 이해하려 전념했고, 그 덕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자본주의의 속성들을 포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가 끝날 무렵 미국 시애틀에서 새로운 반자본주의 운동이 탄생했다. 《공산당 선언》은 여전히 이런 운동을 위한 선언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