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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노위 산하 위원회 ‘취약계층 소득보장’ 합의:
기업주들에게 유리한 신자유주의 복지 ‘개혁’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가 출범을 하기도 전에, 그 산하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가 8월 21일 첫 노사정 합의를 발표했다.(‘취약계층의 소득보장 및 사회서비스 강화를 위한 합의문’)

이 합의의 일부 내용은 그간 추진해 온 계획을 재확인하거나 논의 시작을 알리는 수준이고, 다른 일부는 복지를 더 악화시키거나 빈곤층을 저임금 노동시장으로 유인하는 정책들이다. 문재인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추진하려는 ‘개혁’의 본질을 힐끗 보여 준다.

그런데 경사노위 산하 위원회에서 복지 논의가 시작되고 일부 내용이 합의에 이르자(8월 21일 발표된 합의문의 내용은 8월 10일 회의에서 이미 확정됐다), 이것은 민주노총의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를 압박하는 효과를 냈다. 국민연금 등 굵직한 현안 논의가 코앞에 닥친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논의 기구 바깥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게 된 것이다.

그 즈음 공공운수노조와 전국사회보장기관노조연대 등이 국민연금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며 민주노총의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 참여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리고 며칠 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노사정대표자회의 복귀를 결정했다.

그러나 이미 합의된 내용을 보면 사회적 대화가 노동계급 전반에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지는 의심스럽다. 취약계층 지원과 사회보험 등을 다루는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의 의제와 논의 내용, 위원 구성 등을 봐도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일 것 같지 않다.

첫 합의의 주요 의제는 청년과 영세자영업자 등 복지‘사각지대’ 해결 문제였다. 이들에 대한 복지 지출은 대부분 정부 재정으로(보험료가 아니라) 이뤄지고 대상도 상대적으로 적다. 정부가 8월 29일에 발표한 2019년 예산안에는 기업주의 세금 부담을 늘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드러나 있다. 증세가 필요한 복지 확대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유다.

언론 보도들을 보면‘한국형 실업부조’는 청년구직자와 폐업한 영세 자영업자에게 3개월 동안 매달 30만 원을 지급하는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한다. 이 정도로는 한국형 어쩌고 하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하다.

정부는 올해 4월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을 6개월간 매달 50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발표했었는데, 오히려 이 계획에서 후퇴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폐업해서 실업상태에 놓인(따라서 적지 않은 빚을 지고 있을) 영세자영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리도 없다. 국회에서 예산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면, 이나마도 깎일 것이다.

저임금 일자리로 유도하는 근로장려세제

단지 소득 보장 수준이 낮은 것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합의문을 보면 오히려 기존의 복지를 더욱 악화시키는 내용도 논의될 예정이다. 합의문에는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 방안도 담겼는데, 이는 노사정3자가 각각 제출한 의제 중 거의 유일하게 공통된 부분이다.(민주노총은 참가하지 않고 한국노총만 참가한 상태에서 취합된 의제들이다.)

근로장려세제는 저소득 노동자들에게 세금 할인 형식으로 지원금을 주는 제도다. 기업주들에게 세제 혜택을 주듯이 저소득 노동자들의 세금을 깎아 준다는 것으로(그래서 감세 정책의 일환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세금을 낼 정도의 소득을 못 올리는 노동자들에게 오히려 돈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음(-)의 소득세’라고 부르기도 한다. 문재인 정부는 내년 근로장려세제를 세 곱절로 늘리기로 했는데, 이는 일부 저소득 노동자들의 당장의 생계에 도움이 되기는 할 듯하다.

그럼에도 감세 정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제도는 신자유주의 복지‘개혁’의 일부로 생겨났다. 노동연계복지의 한 형태로 저임금 저질 일자리라도 일단 취업을 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조차 복지‘급여’가 아니라 세금 혜택이라고 부른 것은 첫째, 감세가 부자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고 거짓말하려는 것이고 둘째, 복지 급여를 매우 예외적이고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데올로기적 효과만 노린 것은 아니다. 근로장려세제는 사실상 노동자들이 아니라 기업주들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없었다면 사라졌을(생계비가 안 되므로) 저임금 일자리가 유지되도록 돕는 구실을 한다.

게다가 재원이 일반 재정이므로 그 부담 중 일부는 다른 노동자들이 짊어지게 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근로장려세제1달러가 지급될 때 그 중 0.36달러는 고용주가 가져가고, 비수급자들의 세후 수입은 0.18달러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장려세제의 원조라 할 수 있는“미국EITC는 특히 강력한 노동 연계성을 바탕으로 다른 공공부조를 구축(驅逐)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설계됐다. 또한 임금 보조금 효과로 인해 저임금 노동시장의 유지에 기여한다.”(장흥배, ‘근로장려금과 저임금 노동시장’, 2018.7.25)

문재인 정부의 근로장려세제 확대 방안도 최저임금보다 임금이 적은 사람들에게, 총소득이 최저임금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차등 지급하도록 돼 있다. 동시에 근로장려세제 혜택을 받으려면 일정한 소득이 있어야 하는데(노동을 증명), 그 기준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생계급여를 포기해야 하는 액수에 맞춰져 있다.

즉, 문재인 정부에서도 “근로장려금의 실제 목적은 빈곤층을 누구나 기피하고 싶은 저임금 노동시장으로 유인하고, 이를 통해 공공부조의 수급 기준인 절대적 빈곤선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다.”(장흥배)

따라서 이처럼 저임금 일자리를 강요하고 실업자들에게는 복지 혜택조차 박탈하는 근로장려세제를 확대하는 것은 결코 개선이라 할 수 없다. 노동자들에게는 어지간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만큼의 소득이 보장돼야 하고, 일차적으로는 기업주들이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최저임금 대폭 인상) 실업자들에게는 관대한 실업급여가 고용보험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지급돼야 한다.(실업급여 확대) 그 부담은 다른 노동자들에게 떠넘길 것이 아니라 기업주·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둬 마련해야 한다.(부자 증세)

경사노위, 사회안전망 개선할까?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에서 앞으로 다뤄질 다른 사회보험(4대보험) 등에서 제대로 된 개혁안이 합의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는 더 어려워 보인다. 보험료 등을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부는 실업급여 상한액을 인상(평균임금의 50퍼센트에서 60퍼센트로)하겠다면서 하한액은 인하(최저임금의 90퍼센트에서 80퍼센트로)하려 한다. 전자는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그 수준이 여전히 너무 낮다. 후자는 실업급여와 최저임금의 차이를 벌림으로써 노동을 유인하고 실업을 벌주겠다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고용보험료도 인상(노사 각 0.15퍼센트포인트 인상)할 계획인데, 노동자와 기업주 양쪽 모두의 반발을 사 지지부진하게 시간만 끌다가 국회로 공이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최근 규제프리존 등 악법을 통과시킨 데서 보듯 민주당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생각도 없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등 대상자로 보나 재정규모로 보나 훨씬 덩어리가 큰 복지제도가 논의 테이블에 오를 경우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국민연금은 별도의 기구에서 다룰 수도 있는데,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가 설립된 과정과 구성, 목적 등을 봤을 때 새로운 기구의 구성과 논의 내용도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에서 상당 부분 다뤄질 듯하다.)

무엇보다 정부가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기정사실화한 채 차악과 최악 중에 고르라는 식의 연금‘개혁’안을 제시한 상황이다. 그런데 노동운동 내에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삭감할 보험료 인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의 없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문재인 복지 정책의 기초라 할 수 있는‘포용국가론’은 노무현의 사회투자국가론과 마찬가지로 유연안정성 모델을 기본으로 한다. 고용의 유연성(쉬운 해고)을 추구하되 이로 인해 저소득층이 되거나 아예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이들에게 재취업 지원과 복지(‘안정’)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용 유연성의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실업급여 수준을 낮추고 노동연계복지에도 징벌 효과(일하지 않으면 복지도 안 주는)를 동반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들이 저임금 저질 일자리를 계속 전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복지의‘안정성’은 노동자들의 삶이 아니라 체제의 안정성을 추구하겠다는 얘기일 뿐이다.

사회안전망개선위원회의 첫 합의에서 보듯 경사노위는 실질적 개혁을 제공하는 기구가 되기보다는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면서 민주노총이 필요할 때 투쟁에 나서지 못하도록 발목을 붙잡는 구실만 할 수 있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악 당시 사회적 논의 기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근로장려세제처럼 기업주들에 유리한 복지‘개혁’을 밀어붙이는 수단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사노위 논의에 기대를 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 당장의 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에 나서 정부와 기업주가 양보하도록 힘으로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복지 개혁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좌파가 이를 위해 개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