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 시사:
당연하지만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은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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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9월 25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시사했다.(“위안부 피해 할머니와 국민의 반대로 재단이 정상적 기능을 못 하고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후 일본 언론들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연내 해산 방침을 밝혔다고도 보도했다.(일본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화해·치유재단은 2012년 한·일 ‘위안부’ 합의의 핵심 내용 중 하나로,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에 합의하는 대가로 피해자들에게 위로금 10억 엔을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일본의 잔학무도한 전쟁 범죄를 덮기 위해 만들어진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를 향해 합의를 성실하게 이행하라는 압력을 넣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재단 해산을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실행해야 한다.
그런데 재단 해산보다 더 뜨거운 쟁점은 10억 엔의 행방이다. 일본 정부는 이 돈을 결코 돌려받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합의 파기를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합의 파기는커녕 재협상도 할 생각이 없다. 일본 관방장관 니시무라는 “한·일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한일 합의를 파기하지 않겠다. 재교섭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발언이 재차 있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합의 파기 선언은 하지 않은 채 10억 엔 반환마저 유보하고 이를 한국 돈으로 대신하려 한다.
지난해 이맘때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같은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본지는 당시에도 이를 비판했다. 피해자들이 10억 엔을 거부한 이유는 이 돈이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에 직접 도장 찍는 꼴이기 때문이었다. 합의 파기가 진정한 핵심 쟁점이지, 10억 엔을 한국 돈으로 주느냐 마느냐가 쟁점이 아니다.
정의기억연대(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도 “10억 엔의 우리 정부 예산 편성은 …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들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화해·치유재단은 피해자들의 반발 때문에 사실상 출근하는 직원 없이 이미 멈춰 있는 상태다. 따라서 해산 선언은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서 문재인의 이번 재단 해산 시사 발언은 생색내기로 보인다.
일본에게 과거 전쟁 범죄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문제는 군사대국화로 나아가는 시도에 걸림돌이고, 미국에게는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동맹 강화에 걸림돌이다. 이 때문에 위안부 문제는 오늘날의 제국주의 질서와도 깊이 관련돼 있다.
역대 한국 정부는 광범한 대중의 분노와 제국주의 압력 사이에 껴서 시간을 끌다가 결국 후자 쪽에 섰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는 전통 우파들보다 덜 노골적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한미동맹을 중시하고 그 압력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았다.
사드 배치 강행 등에서 이 점은 여러 차례 증명됐다.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 정부가 위안부 외교 회담과 함께 추진해 거센 반발을 일으켰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도 슬그머니 연장했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식민지를 상대로 벌인 전쟁 범죄이므로, 한국 정부에게는 피해자들을 대변해 이 문제를 해결(일본 국가의 법적 책임 인정과 제대로 된 사죄·배상 등)해야 할 의무가 있다. 2011년 보수적인 헌재마저도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정부가 외교적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그리고 올해 1월 강경화 장관 스스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진정한 문제해결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재단 해산 조처만으로 “할 일 다 했다”는 식으로 손 털게 둬선 안 되는 이유다. 위안부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 실마리는 한미(일) 동맹에 반대하는 제국주의 반대 투쟁에서 찾아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