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결과 투쟁을 고무할 민주노총의 ‘연대전략’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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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본지가 10월 17일 발행한 민주노총 정책대의원대회 특별호에 실렸다.
민주노총 정책대의원대회(정책대대)는 ‘촛불혁명 완성으로 세상을 바꾸는 민주노총의 운동 전략’(이하 ‘운동 전략’)을 토론할 예정이다.
‘운동 전략’은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① 세상을 바꾸는 투쟁 전략, ② 세상을 바꾸기 위한 연대 전략, ③ 세상을 바꾸기 위한 조직화 전략.
이 중 ‘세상을 바꾸기 위한 연대 전략’(이하 ‘연대 전략’)에는 노동자 운동을 결속시키는 데 전혀 기여하지 못해 온 오래된 쟁점이 핵심으로 포함돼 있는데, 상설연대체 건설과 진보대통합당을 비롯한 민주노총 정치방침 수립이다.
상설연대체와 진보대통합당은 자민통계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전략이다. 자민통계는 2년 전 민주노총 정책대대에서도 진보대통합당 안을 통과시키려다 다수 대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패배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우회로를 택한 듯하다. 보고나 안건 회의로 상정하지 않고 토론대회 형식을 취한 것이다. 민주노총 정책대대에 의제로 올려 놓지만 표결은 피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결정하지 않을 것을 굳이 정책대대에서 토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토론과 의견 수렴의 절차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 주려는 듯하다.
전술을 넘어 강령이 노동조합에 강요되는 것은 노동자 운동의 갈등을 부추긴다. 노동조합 안에는 다양한 강령을 가진 정치 조직들이 존재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현실은 민주노총 안에 복수의 진보·좌파 정당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이한 조직과 강령을 인정하면서 사안별로(즉, 전술상으로) 행동 통일을 이뤄야 할 것이다.
상설연대체의 정치적 약점
게다가 상설연대체와 진보대통합당 전략은 근본적인 정치적 약점을 안고 있다. 상설연대체는 “재벌-관료-적폐정당(재벌-특혜세력동맹)에 대해 노동자·민중·중소영세자영업자(乙들의 동맹)들이 맞서는 새로운 사회연대운동 전략’이다.(민주노총 정책대대 토론 자료)
즉, 노농빈 동맹이라는 자민통의 전통적 계급 동맹 전략(현재 ‘민중공동행동’)에 중소영세 자영업자들까지 포함시키는 것이 상설연대체 제안의 목적이다.
물론 중소영세 자영업자들이 노동계급의 적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계급도 아니다. 서민층이지만 중간계급이다. 중소영세 자영업자들은 자기 자신을 착취하기도 하고(자본가 구실), 자기 자신에게서 임금을 받기도 한다(노동자 구실). 그래서 양대 계급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순된 존재다.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과 자본주의 분석은 노동계급이 중간계급의 일부를 자신들 쪽으로 끌어당기려면 자신들의 힘을 보여 줘야 함을 강조한다. 노동계급의 요구와 투쟁 방식을 중간계급을 위해 타협하지 않을 때 그럴 수 있다.
반면 자민통계는 노동계급이 중간계급과의 동맹을 위해 고유한 이해관계를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고 언제나 주장해 왔다. 중간계급의 이해관계는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기 전까지는 자본주의적임을 그들은 간과한다. 그뿐 아니라, (민주당 같은) 노골적으로 자본주의적인 정당들과의 연립을 오랫동안 추구해 왔다.
게다가 좌파의 각 단체들은 당면 전술과 강조점, 중장기 전망, 정치·조직 문화 등이 다르다. 그래서 좌파 단체들이 상설연대체 안에서 자민통계와, 또 좌파끼리도 연대를 구축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잘해야 유명무실한 (그렇지 않으면 상설적 갈등의 원천인) 상설연대체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제한된 특정 쟁점을 중심으로 공동 행동을 하는 사안별 연대체(공동전선)가 단결에 도움이 된다. 그동안 운동의 경험을 봐도 진정으로 대중적인 운동은 사안별 연대체가 주도했다.
정치 방침
민주노총 정책대대 토론 자료에 특정 정치방침이 제출돼 있지는 않다. “선거방침, 전략적 동맹 방침, 진보정당 통합, 진보정치연합체 구성 등” “다양한 수준의 정치방침”을 열거했다.
그리고 정치방침 마련 과정에서 “조직 내 정치방침의 다원화된 질서를 인정하고 광범위한 합의과정”을 거치겠다고 밝혔다.
이런 신중한 자세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현실 인식을 나타낸다. 민주노총 내부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다양하고, 정치 세력들의 힘 관계도 자민통계에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인식이다.
특히, 공식 정치권에 진출해 있는 노동자 정당은 민중당과 정의당인데, 민중당과 달리 정의당은 진보대통합에 대체로 부정적이다.
그동안 자민통계는 민주노총 정치방침이 “진보정당 통합”이 되는 것을 원했고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이번 정책대대에서 “토론대회” 형식으로 이 의제를 토론하는 것은 2020년 총선을 겨냥해 2019년 하반기 정치방침을 마련하기 위한 애드벌룬 띄우기로 보인다.
그러나 대선과 지방선거를 경과하면서 지난 2년 사이에 민중당과 정의당의 선거적 격차는 더 벌어졌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정의당은 민중당보다 10배 넘게 득표했다(각각 275만여 표와 24만여 표). 진보대통합당이 정의당 지도부의 구미에 당기지 않는 까닭이다. 이런 정치 지형 속에서 정의당 지도부는 민주노총 상근간부층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되 민주당과의 선거 연대를 도모하는 것이 선거적 실익이 더 있다고 볼 것 같다.
게다가 두 정당은 한반도 주변 정세와 핵무기를 가진 북한 문제를 놓고 그 정치적 차이가 여전히 크다. 이를 여전히 무시하고 정당 통합을 하면 가장 중요한 정치 현안을 두고 사사건건 갈등과 반목이 재연될 것이다.
물론 적잖은 노동자들이 진보·좌파의 단결을 원할 것이다. 특히, 선거에서 노동자 정당들이 분열하는 바람에 노골적인 자본주의적 정당들이 표를 가져가는 것을 더는 보고 싶지 않고 노동자들의 공식 정치권 진출을 보고 싶어 하는 정서는 정당하다.
이와 관련해 ‘노동자연대’는 이미 2015년에 선거연합당을 제안한 바 있다. 이것이 선거 국면에서 노동계급의 단결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요컨대 (강령이 아니라) 한정된 특수 사안을 둘러싸고 전술 공동행동을 때때로 구축하는 한편, 선거를 위해서는 진보·좌파 후보의 단일화를 선거용 정치 조직을 통해 이루는 것이 진정으로 단결과 연대를 성취하는 길이라고 우리는 감히 주장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