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에 난점이 될:
‘공공병원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을 폐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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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본지가 10월 17일 발행한 민주노총 정책대의원대회 특별호에 실렸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9월 10일 ‘공공병원 노사정 TF’에서 〈공공병원 파견‧용역직 정규직 전환에 따른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이하 공공병원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에 합의했다. 이 합의가 당연히 노동운동 내에서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와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민주일반연맹, 그리고 좌파 노동단체들은 ‘공공병원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의 폐기를 촉구했다. ‘가이드라인’이 정부의 표준임금체계(안)과 마찬가지로 청소·경비·식당 등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차별을 고착화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보건의료노조는 그런 비판이 자신들의 산별투쟁을 폄훼하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그리고 민주노총이 그런 비판을 수용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민주노총과의 관계를 전면 재검토하겠다”며 사실상 탈퇴를 위협하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보건의료노조가 합의한 ‘공공병원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판단할지 10월 10일 회의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애초 민주노총 임원회의는 “보건의료노조 표준임금체계는 직무가치 중심의 차별적 임금체계인 정부의 표준임금체계(안)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구절이 포함된 안을 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결국, 그런 문제점이 있는지 여부는 “워크숍 진행 후 판단한다”며 유보됐다.
이 같은 민주노총 중집의 결정은 의료연대본부와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조들의 큰 불만을 샀다. 그래서 오늘 민주노총 정책대의원대회에서 ‘공공병원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에 관한 입장을 놓고 현장발의안이 제기될 것으로 알려졌다.
저임금 고착과 직무급
‘공공병원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이 “정부의 표준임금체계(안)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은 옳다.
정부의 표준임금체계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일부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 주되 임금을 낮은 수준으로 묶어 두려고 내놓은 안이다. 무기계약직 전환자들은 기존 정규직과 차별 없는 임금을 원할 게 뻔하다. 정부는 그런 기대를 방치했다가는 임금 투쟁과 비용이 확대될까 두려워, 아예 별도 임금체계를 전제로 ‘정규직 전환’을 하려는 것이다.
공공병원 노사정TF가 합의한 ‘공공병원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에도 본질적으로 이런 성격이 있다. 이 가이드라인은 명백하게 공공병원 파견·용역직 정규직 전환자들의 임금을 낮은 수준에 묶어 두도록 고안됐다.
미화, 주차, 경비, 식당, 콜센터 노동자의 기본급은 최저임금으로 시작하고(157만 원), 18계단을 올라 최고 단계(6-3)에 도달해도 고작 27만 원 오른 185만 원을 받게 된다. 이것은 보건의료노조가 애초에 제시했던 모델보다도 한참 후퇴한 것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최고 단계 임금이 330만~351만 원까지 오르는 안을 지난 5월 발표했었다.
심지어 식당 노동자의 경우 최고 단계 기본급이 정부의 표준임금체계(안)보다도 13만 원가량 더 낮다. 또, 최하위 직무가 정부의 표준임금체계보다 더 폭넓게 정해져, 주차와 콜센터 노동자도 포함된다.
기본급을 매년 법정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정하도록 해, 최저임금 인상폭 이상의 기본급 인상이 어렵게 된 것도 문제다. 공공부문 청소, 경비, 식당 노동자들은 지난 수년 동안 투쟁을 통해 최저임금 수준 이상으로 임금을 올려 온 부문인데도 말이다.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공공병원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 합의를 통해 “파견·용역직 정규직 전환[의]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파견·용역직의 정규직 전환은 반드시 돼야 한다. 하지만 그 전환이 저임금 고착을 전제한다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원하는 처지 개선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민주일반연맹은 “참담하다”고 시작되는 성명에서 이렇게 토로했다: 자신들은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직무급 도입을 무력화시키고 기존 호봉체계에 편입”되고자 투쟁하고 있는데, “보건의료노조의 합의는 정부에 매우 잘못된 신호를 주는 것[이다.]”
또, “청소·경비 노동자를 조직하고 있는 노동조합으로서”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는 이런 감정을 표현했다: 공공병원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 합의안이 “청소·경비 노동자를 최하위 직무로 분류하고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으로 설정한 것에 큰 불쾌감을 느낀다.”
이에 맞서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이렇게 반박했다: ‘공공병원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은 “직무급 임금체계가 아닌 호봉급”으로, 근속연수에 따라 매년 기본급이 상승한다.
그러나 이 반박은 설득력이 없다. 가이드라인 합의문을 보면 이렇게 명시돼 있다. “기본급은 직무가치와 숙련 등을 고려하여 직무군에 따라 설계한다.” 이처럼 기본급을 직무에 따라 정하는 것이 직무급이다.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이 표현이 직무급제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했지만, 그것은 “오해”가 아니라 기본급 설계에 관한 명확한 정의다.
또, 매년 기본급이 상승한다고 해서 직무급이 아닌 것은 아니다. 직무급의 경우에도 일한 기간을 숙련으로 인정해 근속연수에 따라 기본급이 상승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이렇게도 반박했다: “[가, 나, 다로 나뉜 직무 구분은] 직무가치평가에 따른 것이 아니라 임금 수준이 비슷한 직무를 묶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특정 직종에 대한 기존의 천대나 차별적 임금을 반영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직무평가에는 이런 구조적인 편견이 끼어들게 마련이다.
다른 부문에 미칠 영향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공공병원 표준임금제 가이드라인’ 합의가 보건의료노조 소속 노조에만 적용되는 합의라고 주장한다. 보건의료노조의 교섭과 합의에 대해 다른 노조들이(민주노총 산하 노조들일지라도)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이 합의는 보건의료노조 산하 조합원들뿐 아니라, 비슷한 직무에 종사하는 다른 병원이나 공공기관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가 지적했듯이, 보건의료노조의 공공병원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 합의는 “다른 행정부처에서 직무급제를 강행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이번 합의를 직무급제 도입의 지렛대로 이용하려 들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훨씬 넓은 범위의 노동자들이 이 합의의 영향을 직접·간접으로 받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자들의 임금을 올려 주지 않으려고 별도직군 임금체계(표준임금체계)를 추진해 왔다. 그리고 이를 통해 공공부문 전체로 직무급제를 확대할 구상을 하고 있다.
이번에 민주노총 산하 주요 노조 하나가 표준임금체계(안)의 핵심 요소가 반영된 가이드라인에 합의함으로써, 문재인 정부는 그 같은 구상을 추진하는 데서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설사 이 합의가 정말로 보건의료노조에만 적용된다 해도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해당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고착되는 임금체계 하에 놓이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는 10월 10일 회의에서 이렇게 결정했다. “민주노총은, 보건의료노조 표준임금체계가 보건의료노조 소속 공공병원 이외 타 공공부문에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 아래, 노정협의를 통해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그러나 ‘공공병원 표준임금체계 가이드라인’이 다른 공공부문에 적용돼서는 안 되는 것이라면, 왜 보건의료노조 소속 노동자들에게는 적용돼도 무방한가? 노동자들을 위해서인가, 교섭의 안정화를 위해서인가?
이런 점으로 볼 때, 보건의료노조의 공공병원 임금체계 가이드라인 합의를 인정하면서 민주노총이 ‘정부가 그것을 공공부문 전반에 적용하려 할 경우 투쟁으로 저지하겠다’고 하는 것은 노동조합 상층 기구들의 질서를 중시한 절충일 뿐이다.
오늘 정책대의원대회에 제출될 현장발의안은 다음과 같은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과 가맹산하조직은 저임금을 고착화하려는 정부의 표준임금체계에 확고하게 반대하고 폐기 투쟁에 나서는 한편, 노정교섭이나 사회적 대화틀에서 정부 표준임금체계의 문제점을 내포한 합의를 하지 말아야 한다.
좋은 제안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그런 방향의 노력이 힘을 받으려면, 저임금을 고착화하는 기존 합의의 문제점을 분명한 말로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노동자 부문에 끼칠 악영향을 생각해서든, 보건의료노조 소속의 해당 노동자들을 생각해서든 ‘공공병원 임금체계 가이드라인’을 폐기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