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 정책권고안 발표:
잘 드러난 살인적 노동조건, 여전히 부족한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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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2일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이하 기획추진단)은 집배원들의 노동조건 실태 결과와 정책권고안을 발표했다. 애초 활동기간 4개월을 훨씬 넘긴 1년 2개월 만의 일이다. 기획추진단은 사회적 대화 형식으로 노·사·전문가위원으로 구성됐다. 노동조건 실태 결과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집배원 연간 노동시간은 2754시간으로, 한국 임금노동자 평균(2016년 기준 2052시간)보다 693시간, OECD 회원국 평균(2016년 기준 1763시간)보다 982시간 더 길다.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각각 연간 87일, 123일을 더 일한 셈이다. 여기에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집배원들이 휴게시간과 연차휴가, 병가를 사용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장시간·중노동과 인력 부족은 우체국을 ‘죽음의 일터’로 만들었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 간 집배원 166명이 숨졌다. 집배노조에 의하면, 올해에만 벌써 24명이 사망했다. 기획추진단 결과 발표 당일 오전에도 진주우체국 집배원 1명이 생을 마감했다. 그는 10월 19일 배달을 마치고 우체국으로 돌아오다 교통사고를 당했다.
집배원의 토요근무는 노동 조건을 더욱 악화시킨다. 1년 2개월 만에 토요근무가 재개된 지난 2015년 9월 이후, 집배원들의 연간 노동시간과 사망자 수가 늘었다.
집배원의 실제 출퇴근 시간과 관리자가 인정하는 출퇴근 시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일을 하고도 임금을 못 받는 무료노동이 다반사인 것이다. 집배노조의 고발로 드러난 미지급 초과근무수당만 최근 3년 8개월 동안 12억 6000만 원이 넘는다.
노동자들은 인력 증원과 토요근무 폐지, 특별소통기간(설과 추석, 선거철) 동안 인력·장비 확충 등을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꼽았다. 집배원들은 적정 물량을 지금의 80퍼센트 수준이라고 보고 있다. ‘현재 업무량을 하루 8시간 내 처리 불가하다’는 응답도 72퍼센트나 됐다.
기획추진단의 실태 조사 결과는, 그간 집배노조가 주장해 온 내용이 모두 사실이고 노조의 요구도 정당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집배노조의 문제 제기와 주장을 과장·왜곡이라고 거짓말해 온 우정사업본부(이하 우정본부)는 집배원들에게 사과부터 해야 마땅하다.
집배노조는 기획추진단 활동 기간과 발표가 예상을 훌쩍 넘어 늦춰진 것이 우정본부가 기획추진단 활동에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우정본부가 권고안의 핵심인 인력 증원 규모와 토요근무 폐지를 반대해 권고안 확정이 지연됐다고 한다. 청와대도 기획추진단 운영을 수수방관했다.
10년간 166명 사망
기획추진단은 실태 조사를 근거로 7가지 정책권고안(이하 권고안)도 제시했다.(권고안은 기획추진단의 전문가위원들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기획추진단은 노동시간을 주 52시간 이하로 줄이기 위해 집배원 2000명을 정규직으로 증원하라고 권고했다. 2019년 내에 1000명을 증원하고, 이후 우정본부가 재정을 확보해 단계적으로 추진하라고 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장시간 노동을 해소하기엔 많이 모자라다. 1000명 증원 시 월평균 초과근무시간(정규 노동시간이 아니라)이 50시간에서 20시간으로 준다고 한다. 주 52시간은 법으로 정한 최대 허용 노동시간이지, 결코 노동자들이 바라는 노동시간이 아니다. 그간 집배노조는 한국인 평균 노동시간 수준으로 단축하려면 4500명이 필요하고, 문재인이 약속한 연간 1800시간(주 40시간)으로 줄이려면 6500명이 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래서 많은 노동자들이 기획추진단 권고에 불만과 아쉬움을 나타냈다. 집배노조의 요구보다 현저히 적을 뿐 아니라, 2000명 중 1000명은 언제 증원할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년에 정규 인력 1000명을 증원하는 데 417억 원이 든다고 한다. 우정사업본부의 재정 구조를 보면, 6500명 이상을 증원할 여력이 충분하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우정사업본부 재정 수지는 4000억~5000억 원 정도 흑자다. 2015년 우정사업본부 국정감사에서는, 정부가 그동안 우정사업 특별회계에서 6641억 원을 전출(정부 일반회계 예산으로 사용)했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지금 당장의 흑자분만 써도 인력 충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만약 돈이 더 필요하다면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야 마땅하다.
권고안은 “장시간 노동의 해소를 위해 토요근무 폐지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민간택배기업과 (주요 쇼핑회사를 포함한) ‘소비자 반발’ 등을 고려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민간 택배가 토요 택배를 유지하면 우체국의 토요근무 폐지가 어렵다는 이유다. 그러나 시장 확보와 이윤 경쟁에 혈안이 돼 지금도 엄청난 출혈 경쟁을 벌이는 민간 택배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토요 택배를 폐지할 리 없다. 적잖은 노동자들은 “토요근무 폐지를 위한 사회적 협약”이 시간만 질질 끌다가 합의를 도출하지 못할 공산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권고안은 차선책으로 토요근무를 유지하는 주5일 근무 이원화 도입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2년간 2000명 증원도 반대하는 우정본부가 근무 이원화를 위해 정규직 인력을 증원할 리 만무하다. 우정본부는 2022년까지 우체국 택배 위탁 물량을 50퍼센트로 확대해 토요 택배를 유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비정규직을 대거 늘리려는 것이다. 결국 위탁 확대는 정규직 집배 인력을 줄이고, 장시간 중노동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따라서 공공부문인 우체국부터 토요 택배를 중단하고 우정본부 및 그 산하기관과 계약 맺은 위탁노동자들을 전원 정규직화하라고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 공공부문에서 토요근무를 없애고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면, 민간 택배 노동자들도 같은 요구를 내걸고 투쟁에 나설 수 있다.
주 40시간 노동, 토요택배 완전 폐지
이번 기획추진단의 결과 발표는 사회적 대화를 통한 해법 모색의 한계와 어려움을 보여 줬다. 집배원의 열악한 근무 실태는 대체로 잘 지적했지만, 우정본부가 큰 부담없이 수용할 만한 범위 내에서 해결책을 제시하다 보니 권고안 수준은 부족함이 많다.
노동자들은 기획추진단의 발표에 대체로 만족하지 못하고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우정본부가 권고안을 제대로 이행할지에 대한 걱정도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다수노조인 우정노조(한국노총)가 제 구실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집배노조의 헌신적인 활동과 투쟁으로 기획추진단 구성을 추동하고 지금의 권고안이라도 도출할 수 있었다고 여긴다. 이를 발판 삼아 투쟁을 통해 부족분은 계속 보완해 나가자고 다짐하고 있다.
집배노조는 ‘집배노동자 장시간 노동 철폐 및 과로사·자살 방지 시민사회 대책위’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가 책임지고 주 40시간 노동 실현과 토요택배 완전 폐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집배노조가 이를 위한 투쟁을 지속해 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