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시리아 철군 선언:
그러나 시리아 위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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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시리아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시리아 안에는 미군 2000명이 주둔해 있다.
미국 기성 권력층 다수가 철군 선언에 격분했다. 철군이 미국의 적, 즉 러시아·이란에게만 득이 될 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상원에서 트럼프를 후원해 온 공화당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 같은 자도 트럼프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국방장관 매티스의 사퇴는 트럼프의 철군 선언을 놓고 미국 권력층 내 갈등이 만만치 않음을 보여 준다. 매티스는 트럼프의 시리아 철군 결정에 항의하며 사직서를 던졌다.
그동안 주류 언론들은 매티스가 행정부에 남은 “마지막 어른”이라고 했다. “어른”은 트럼프가 미국의 전통적 대외정책에서 너무 엇나가지 않게 ‘균형’을 잡는 베테랑 관료·정치인을 가리킨다.
트럼프가 전격적으로 시리아 철군을 선언한 데는 국내 정치적 동기가 있는 듯하다.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 다수가 이길 수 없는 중동 전쟁에 계속 군대를 보내는 데 염증을 느낀다. ‘러시아 게이트’ 특검, 민주당의 하원 장악 등 여러 악재를 뚫고 재선 가도를 달리려면, 트럼프는 지지층 결집을 유지할 한 방이 필요하다.
또 하나의 동기는 미국 제국주의의 힘의 한계에 관한 현실적 계산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전임 오바마 정부는 중동 전선에서 군사적으로 전면 개입하기를 꺼렸다. 대신에 무인폭격기를 주로 동원했다. 오바마 정부는 중동에 초집중된 역량을 돌려 중국을 상대하는 데 쓰고 싶어 했다.
트럼프도 이 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미 올봄에 그는 시리아에서 조만간 철수할 것이라고 말했었다. 2000명 투입 같은 소규모 개입으로 승리할 수도, 그렇다고 전면 개입하기도 어려운 전장에서 아예 빠져 나오겠다는 얘기였다.
모순
그러나 중동에서의 곤경 때문에 전전긍긍해 온 미국의 처지가 시리아 철군으로 달라질 것 같진 않다. 게다가 트럼프의 중동 정책에는 모순도 크다.
미군이 진짜 시리아에서 완전 철수한다면, 그 공백은 러시아·이란·터키·이스라엘 같은 경쟁 제국주의 국가와 지역 강대국들이 메우려 할 것이다. 특히, 이라크·시리아에서 이란의 입지가 강화되는 것은 트럼프를 비롯한 미국 권력층이 절대 원하지 않는 일이다.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에서 이란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트럼프는 이란 핵협정을 파기했다. 이란을 견제하고자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유지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빈 살만이 정적인 카슈끄지 살해를 지시한 게 명백한데도, 트럼프는 그를 두둔했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은 이란을 제압하고자 미국이 화끈하게 개입해 주길 원한다.
이런 점들은 트럼프의 공언과 달리 미국이 시리아 문제에서 완전히 발을 빼기 쉽지 않음을 시사한다. 시리아 개입을 꺼리던 오바마도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가 부상하자 2015년에 이라크와 시리아로 병력을 보내야 했다.
트럼프도 봄에 철군 얘기를 꺼냈다가 4월에 시리아를 폭격했고, 지금까지 철군 결정을 미뤘다. 이번에도 트럼프 정부가 일관되게 행동하지 않을 수 있다. 철군 선언 와중에도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시리아를 폭격했다. 그리고 그즈음에 미국 항공모함이 9개월 만에 이란 코앞에 배치됐다.
트럼프의 돌발 선언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열강과 지역 강대국들의 경쟁 때문에 시리아 위기와 중동의 혼란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야 하는 난민도 계속 생길 것이다.
그런 가운데, 트럼프는 또 다른 위험한 도박을 선택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