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의견에 답합니다 :
야간 노동은 남녀 모두에게 해로우니 ‘여성 숙직 반대’를 내세워선 안 된다는 견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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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독자가 본지 272호 기사 ‘서울시의 여성 공무원 숙직 방침에 반대해야 한다 ― 성평등 아닌 여성 노동강도 강화일 뿐’을 읽고 의견을 보내 왔습니다. 두 독자의 의견과 이에 대한 필자(최미진 기자)의 답변을 싣습니다.
독자 A의 의견
야간 노동은 남녀 모두에게 유해하며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의무나 사명이 아닙니다. 여성은 언제 어디서나 성폭력, 성추행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이것은 여성의 야간 노동을 없앤다고 근절될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노동자의 야간 노동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여성에 대한, 특히 여성 공무원에 대한 특권의 주장으로밖에 비춰지지 않습니다. 참고로 저는 생물학적 여성입니다.
독자 B의 의견
이 문제가 남녀 대결로 비화되지 않으려면 “서울시는 모든 공무원의 숙직을 폐지하라!” 혹은 “서울시는 숙직하는 여성 공무원의 안전보장책부터 마련하라!”로 운동의 방향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필자 최미진의 답변
기사에 관심을 갖고 의견을 보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제 답변이 더 나은 대안 모색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저는 야간 노동이 남녀 노동자 모두에게 해롭고 야간 노동 근절이 노동운동의 과제라는 데 이견이 없습니다. 또한 커져가는 남성 공무원 노동자의 숙직 부담을 해결할 대안이 필요하다는 점도 동의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사에서 남녀 공무원 노동자들이 단결해 인력 충원을 쟁취하길 바라고, 더 나아가 결국은 숙직이 폐지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지금 두 독자님(이하 존칭 생략)과 저 사이의 쟁점은 그런 대안들이 성취되기 전까지 제기되는 사용자들의 여성 숙직 강요에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A 독자는 서울시의 방침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남성 공무원 노동자가 숙직을 하는 상황에서 여성 공무원만 제외하는 것은 ‘특권’이라고 보고, 여성도 숙직을 해야 공평하다고 보시는 듯합니다. B 독자는 서울시 방침 지지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반대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즉,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고 다른 쟁점을 제기해, 실천상으로는 A 독자와 비슷하게 될 수 있습니다.
먼저, ‘남녀 모두의 야간 노동 근절’이 대안이라면서도 여성 노동자의 숙직을 지지하는 주장은 모순이라는 점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숙직 같은 야간 노동이 남녀 모두에게 해롭다면, 왜 그간 그 일을 하지 않던 여성 공무원 노동자들까지 그 일을 ‘공평’하게 해야 합니까?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악화시켜 남성 노동자들과 ‘동등하게’ 만드는 것은 하향평준화이지, 진정한 ‘성 평등’이 아닙니다.
여성 노동자들에게 야간 노동이 확대되는 것은 ‘야간 노동 철폐’라는 목표와도 더욱더 멀어지는 것입니다. 당면한 여성 공무원 노동자에 대한 야간 노동 강요에 맞서지 않으면,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요구(남녀 노동자 모두의 야간 노동 폐지)를 성취할 길은 요원합니다.
둘째, 여성 노동자가 야간 노동을 안 하는 것은 결코 ‘특권’이 아닙니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상대적으로 덜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특권을 누린다는 얘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노동조건 악화에 반대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건강과 삶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 무슨 ‘특권’을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특권’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부와 권력을 가진 집단인 지배계급에게나 해당되는 말입니다. 사회의 주요 결정을 내리고 타인의 노동을 착취해서 엄청난 물질적 혜택을 누리는 자들은 지배계급이지 평범한 남녀 노동자들이 아닙니다. 여성 공무원 노동자들은 남성 공무원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착취받는 처지입니다. 여성 공무원들의 노동조건도 남성 노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성 공무원들도 (당직의 종류와 주기가 남성 노동자와는 다르지만) 주말과 휴일에 당직을 서 왔습니다.
공공부문 정규직 일자리 대폭 확충 약속을 저버리고 있는 문재인 정부는 민주당 소속 서울시장 박원순의 여성 공무원 숙직 방침을 통해 ‘손 안 대고 코 풀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부족한 공무원 노동자 충원은 하지 않은 채 남녀 노동자들이 숙직 부담을 두고 서로 다투도록 부추깁니다.
남녀 노동자들 사이의 당직 부담 격차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계급 격차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남성 노동자들이 해 온 숙직 부담을 줄이고 나아가 그것을 아예 폐지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화살을 공무원 노동자들 내부가 아닌 지배자들에게로 겨누어야 합니다.
셋째, 생물학적 차이를 고려한 대책이 곧 여성 차별은 아닙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를 무시하고 기계적으로 똑같이 대우하는 것은 여성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해 도리어 사회적 불평등을 악화시킵니다. 예를 들어 여성에게 유급 생리휴가나 출산휴가 등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여성의 평등한 노동 참여를 가로막는 것입니다.
물론, 여성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성차를 이유로 여성을 배제시키는 것은 차별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은 타고난 ‘여성성’이 따로 있다는 식의 인간 본성론에 반대합니다. 이에 기초한 고정된 성 역할 강요에도 반대합니다.
여성의 임신·출산 능력을 이유로 여성을 양육의 적임자로 취급하는 것은 여성 차별적입니다. 여성이 아이를 낳는다 해서 육아가 여성만의 몫일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사회주의자들은 100년도 더 전부터 이런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보육을 개별 노동자 가족의 여성(과 남성) 책임이 아닌 사회의 책임으로 만들어야 하고, 사회의 부를 여기에 우선적으로 투자해 여성을 육아와 가사의 굴레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 사회주의 여성해방론의 요체입니다. 또한 사회주의 전통은 낙태를 여성이 선택할 권리로 보고, 낙태 합법화 운동에 적극 동참해 왔습니다. 〈노동자 연대〉는 이런 전통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한편, 과학기술의 진보로 여성의 신체적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는 수단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더는 신체적 차이가 문제되지 않는 영역이 크게 늘어난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생물학적 차이가 사라진 것은 아니고, 자본주의에 만연한 고된 장시간 노동과 온갖 안전 위협에 여성이 남성보다 더 취약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여성이 성폭력을 비롯한 물리적 안전 위협에 남성보다 더 취약하고, 많은 여성이 남성과 달리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고, 그래서 남성보다 여성에게 야간 노동이 훨씬 더 큰 부담이 됩니다. 설사 안전 조처가 강화된다 해도, 이런 문제들이 다 해소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체계적 여성 차별의 결과로 여성 노동자들이 육아 부담을 주로 지고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남성과 똑같이 숙직을 시키면 오히려 여성의 고통이 가중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않고 남녀 노동자들의 단결을 추상적으로 외치는 것은 단결을 이루는 데서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서울시 여성 공무원 숙직 도입은 여성 노동자의 노동조건 후퇴라는 점을 분명히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기사에서도 썼듯이, 이번 숙직 문제처럼 필요할 때는 남성 노동자들이 약간의 손해(서울시 본청의 경우 9개월에 1번씩 숙직)를 감수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사회적 차별을 겪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을 향해 남성 노동자들이 먼저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성 노동자들이 연대의 효능을 체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 되면 숙직 폐지 또는 남성 노동자의 숙직 부담 완화를 쟁취할 힘도 커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들을 두 독자님께서 재고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