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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의 의미와 좌파의 지향 재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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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5일 영국의 유럽연합(브렉시트) 탈퇴 방안에 대한 합의안이 하원에서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다. 그리고 영국의 기성 정치는 혼란에 빠져 들었다.
2016년 국민투표로 결정된 브렉시트는 권력 엘리트층에 의해 삶이 파탄났다고 느낀 서민 대중의 항의 투표 결과였다.
독자들이 브렉시트의 의미와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본지의 지난 기사들을 재게재한다. 아래의 기사는 본지 177호에 처음 실렸다.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 탈퇴표가 승리하며 영국 국가, 지배계급, 경제, 정계가 혼돈에 휩싸였다.
투표율은 72퍼센트로 높았고 약 52퍼센트가 탈퇴에 투표했다. 국회의원의 4분의 3, 의회 내 3대 정당인 보수당·노동당·스코틀랜드국민당의 지도자들, 영국 기업인의 압도 다수, 영국은행과 국제통화기금 IMF 같은 주요 자본주의 기구가 거의 다 탈퇴에 반대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유럽연합을 둘러싸고 보수당 안에서 일어나는 논쟁을 잠재우려고 자신 있게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올 가을에 사퇴하게 됐다. 그리고 그의 당은 약화되고 분열했다.
파운드화의 가치는 지난 30년 사이 최저치로 폭락했고 각국 시장은 요동쳤다.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려는 미국 제국주의의 하위 파트너로 기능해(야 했지만 그리 잘하지는 못해) 온 유럽연합은 규모 2위의 회원국을 잃었다. 이 사건은 지난 몇 년 동안 문제가 돼 온 그리스의 유럽연합 탈퇴보다 훨씬 파장이 큰 일이다.
이제는 스코틀랜드(따로 유럽연합에 남으려고 한다)의 분리 독립을 위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요구도 나온다. 이 일이 성사되면 영국 국가가 쪼개질 수도 있다.
항상 유럽 자본의 이익에 이바지하며, 그리스 민중을 긴축으로 내몰고,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의 노동자 공격을 지지하고, 미국과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 TTIP를 맺으려 하고, 반대 목소리는 깡그리 무시해 온 신자유주의적 기구 유럽연합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은 지금까지 유럽연합이 받은 그 어떤 충격보다도 크다.
노동계급의 항의 투표
그런데 많은 영국 좌파들은 낙담한 분위기다. 그들은, 서유럽계 이민자에 반대하는 민족주의와 비서유럽계 이민자에 대한 인종차별 정서가 분출해 국민투표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고 본다.
그러나 탈퇴에 투표한 사람을 모두 인종차별적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현실을 너무도 단순하게 보는 것이다. 무엇보다 탈퇴 투표는 권력 엘리트층에 의해 삶이 파탄나고 있다고 느낀 노동계급의 항의 투표였다. 숙련 노동자, 반숙련 노동자, 비숙련 노동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3분의 2가 탈퇴에 투표했다. 반면 중간 관리직, 고위 관리직, 전문직, 경영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 중에는 43퍼센트만이 탈퇴에 투표했다. 아시아 출신자의 3분의 1, 흑인의 4분의 1이 탈퇴에 투표했다. [그러나] 셰필드, 버밍엄, 브래드퍼드처럼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잉글랜드 북부의 대도시들에서는 탈퇴표가 많이 나왔다.
그중 많은 사람이 노동당 지지자다. 비민주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이며, 불평등의 확산과 긴축으로부터 보통 사람들의 삶을 전혀 지켜 주지 않는 기구를 그들이 지켜야 할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국민투표 기간에 부각된 인종차별 문제를 가벼이 보자는 말이 아니다. 인종차별적 주장은 탈퇴파 진영에서 선명하게 제기됐다. 그리고 탈퇴파 진영을 주도한 것은 이민자 반대 주장을 하는 영국독립당과 일부 보수당 정치인들이었다.
하지만 영국독립당 등은 지난 수년 동안 대중매체와 정치인들이 긴축에 대한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영국의 전쟁 참여를 정당화하려고 이민자를 공격하고 속죄양 삼아 온 것에서 세력을 얻었다. 바로 잔류파 진영의 많은 인사들이 그런 일을 벌여 왔다.
올해 초 런던시장으로 당선한 노동당의 사디크 칸에 대해 무슬림혐오적 악선동을 한 것은 바로 캐머런이었다. 이민법을 매우 악독하게 개악한 것도 바로 캐머런의 보수당 정부였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민자에 반대하는 인종차별적 주장이 노동계급의 고통과 불만을 상징하는 것의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좌파는 이민자가 문제라는 주장에 조금치도 타협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탈퇴에 투표한 사람들을 모두 무지몽매한 인종차별주의자로 보고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것은 결코 좋은 대응이 아니다.
좌파다운 좌파를 건설하고자 한다면, 인종차별에 맞서는 투쟁과 노동계급의 조건을 공격하는 것에 맞선 투쟁을 연결시켜야 한다. 진정한 문제는 이민자가 아니라 권력 엘리트층과 기업주라는 점을 드러내야 한다.
그런데 인종차별적 우익에 겁을 집어먹은 나머지, 주류 정치인이나 유럽연합 같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기구들과도 운명을 같이하려는 태도로는 이런 과제를 수행할 수가 없다. 유럽연합 같은 기구들은 실천에서는 불평등과 인종차별의 확산을 막는 데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기회
주류 정치권의 쇠퇴는 영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6월 26일 스페인 총선에서 양대 정당의 득표율은 합쳐서 50퍼센트가 안 될 수가 있다. 그리스에서는 전통적 양당 구도가 이미 해체됐다. 아일랜드에서는 3대 정당의 지지율이 2007년보다 25퍼센트 감소했다.
유럽연합 같은 기구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영국독립당, 프랑스 국민전선, ‘독일을 위한 대안’ AfD 등의 것이 되도록 놔 둬서는 안 된다.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를 이용해 유럽연합의 해체를 바라는 좌파적 주장이 유럽 전역에서 부활하도록 애써야 한다. 권력 엘리트층에 대한 반대 정서가 좌파적 색채를 띠도록 애써야 한다는 얘기다.
영국의 좌파는 이 위기가 불러온 기회를 붙잡아야 한다. 노동당의 좌파적 지도자인 제러미 코빈의 구실이 매우 중요하다.
아쉽게도 국민투표 기간에 코빈은 자신이 오랫동안 견지해 온 유럽연합 반대 입장을 고수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좌파적 유럽연합 탈퇴 주장의 영향력은 제한됐다. 기층 당원들의 커다란 지지를 받지만 의원단 안에서는 고립돼 있는 코빈은 유럽연합 잔류를 지지하는 의원들에게 타협했다.
그래도 코빈은 노동당의 다른 인사들과는 달리, 현행의 유럽연합을 용인하거나 캐머런과 함께 잔류투표 운동을 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노동당 의원들은 코빈이 [잔류 선동에]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고 있고, 그중 두 명은 코빈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제안했다. 그러나 코빈을 당대표로 신임한다는 서명에 지금까지 15만 명이 참가했다. 이토록 노동당 우파의 어리석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캐머런이 총리직에서 물러나면 보수당의 다른 인물이 그 자리를 물려받을 텐데, 그는 선거로 당선한 것이 아니므로 긴축을 계속 추진할 권한을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지금 좌파는 단결해서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긴축과 인종차별에 맞서는 투쟁을 재개해야 한다. 진보적 이유에서 잔류에 투표한 좌파도 함께 단결해야 한다.
영국이 실제로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과정은 길고 복잡할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이번 국민투표에서 패배해 풀이 죽은 자본가 계급과 정치인들이 주도할 것이다. 좌파가 단결해서 진취성을 발휘한다면, 사태를 바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추천 책
브렉시트, 무엇이고 왜 세계적 쟁점인가?
알렉스 캘리니코스 외 지음, 김영익·김준효 엮음, 책갈피, 156쪽, 6,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