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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코앞으로 다가온 브렉시트 ①:
브렉시트란 무엇이고 어떻게 결정됐을까

12월 31일이면 4년간 이어 온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일명 ‘브렉시트’ 과정이 마무리된다. 영국은 올해 1월 31일자로 더는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게 됐지만, 영국과 유럽연합은 올해 말까지 과도기를 두고 미래 관계 설정을 위한 협상을 하기로 했다. 이제 두 달 후면 그 과도기가 끝나는 것이다.

지난 4년 동안 영국과 유럽연합이 ‘이혼 협상’을 하는 동안, 탈퇴 유예와 협상 기간 연장이 여러 차례 있었다. 무역 등에서 아무런 합의가 없는 브렉시트, 즉 ‘노딜 브렉시트’ 상황이 몰고 올 혼란을 영국 지배계급이든 유럽 지배계급이든 둘 다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국과 유럽 전역에서 코로나19로 확진자가 치솟고 있다. 각국 지배자들은 이에 대처하기도 빠듯한 상황이다. 이 마당에 ‘노딜 브렉시트’까지 얹히면 어떤 후폭풍이 닥칠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영국 국내 정치 상황 때문에,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이 ‘노딜 브렉시트’를 선택하지 않으리라 확신하기도 어렵다. 존슨은 브렉시트를 완수하겠다는 약속을 앞세워 2019년 12월 총선에서 대승을 거뒀고, 보수당에서 브렉시트 반대파를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보수당은, 우익 포퓰리즘 정당들에 뺏겼던 유권자들을 탈환했다.

상황은 여전히 안갯속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정치 불안정이 계속되리라는 것이다. 이 불안정과 그것이 낳을 변화는 유럽연합을 매개로 세계 다른 지역으로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브렉시트: 세계사적 전환

브렉시트를 둘러싼 협상의 난맥상을 두고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장인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이렇게 지적했다. “유럽연합은 자신의 단일 시장(세계 최대 규모다)을 다스리기 위해 복잡한 제도를 구축했을 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이 시장에 접근하려고 유럽연합의 규제를 받아들인다. 영국이 이런 규범을 계속 따를 것이냐가 영국과 유럽연합 간 분쟁의 진정한 핵심이다.”

유럽연합이 상징하는 ‘유럽 통합 프로젝트’는 1950년에 시작했다. 즉, “유럽연합[이] 자신의 단일 시장을 … 다스리기 위해 복잡한 제도를 구축”해 온 역사가 70년이나 됐다는 것이다. 영국이 유럽 통합 프로젝트에 동참한 1973년부터만 따져도 반백 년 세월이다.

그 과정에서 유럽은 세계 최대 시장으로 발돋움했다. 현재 유럽연합은 미국과 중국과 함께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3대 경제 블록 중 하나다.

브렉시트는 유럽 지배자들이 70년 동안 공들여 구축해 온 유럽의 생산·교역 네트워크와 그 네트워크를 조율하는 각종 기구·제도를 교란하는 일이다. 즉 유럽연합이라는 세계경제의 기둥 하나를 흔듦으로써 세계 질서를 흔드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캘리니코스는 브렉시트를 일컬어 “세계사적 전환”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세계 지배자들은 브렉시트 여부를 두고 벌어진 2016년 6월 영국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 탈퇴파가 승리하지 않기를 바라며 온갖 협박을 했다. 그러나 지배자들의 권력이 아무리 막강해도 세상사가 그들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52 대 48로, 1740만 명의 찬성으로 브렉시트가 결정됐다.

자본가 정당과 자본가 계급의 불협화음

영국 자본주의는 유럽 통합 프로젝트에 참가하며 그 이전의 부진에서 벗어나 상당히 성공적으로 재건됐다. 특히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치며 성장한 영국 금융가, 일명 ‘시티오브런던’은 유럽 금융의 최대 중심지가 됐다. 런던 금융가는 유로화로 이뤄지는 거래를 도맡아 처리한다. 그뿐 아니라 유럽의 자본시장과 투자은행 수익의 4분의 3이 영국에서 거래된다.

영국 자본가들은 브렉시트를 반대했고, 국민투표 이후에는 그 결정을 뒤집으려 애썼다. 이들은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한 지금도 양측의 협상이 잘 돼, 이전과 별다르지 않은 관계가 수립되기를 바란다.

한편, 브렉시트 과정에서 영국 자본주의에는 곤란한 문제가 생겼다. 바로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문제다.

영국은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로 구성돼 있다. 영국 서쪽에 있는 섬 아일랜드의 남부는 독자적 국가이지만 북부는 영국에 속해 있다. 그래도 그동안 아일랜드 남부/북부 사이에는 관세 장벽이 없었다.

그런데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이탈하면 여기에 관세 장벽이 들어서게 된다. 아일랜드는 여전히 유럽연합 회원국이기 때문이다. 이를 막고자 유럽연합 측은 브렉시트 후에도 북아일랜드가 계속해서 유럽연합의 관세동맹에 남도록 하자고 요구했다. 그러면 영국과 북아일랜드 사이에 관세 장벽이 들어서고, 북아일랜드는 영국의 다른 곳과 다른 특수한 지위에 놓이게 된다. 이는 스코틀랜드 독립 운동을 자극할 것이다.

그래서 보리스 존슨의 전임자인 당시 보수당 총리 테리사 메이는 이 요구를 거절했었다. 존슨은 지난해에는 이 요구를 수용했지만, 올해 9월에는 태도를 싹 바꿔 이 합의를 거스르는 법(내부시장법)을 제정했다.

요컨대, 지난 4년 동안 영국의 정치 상황은 자본가들의 바람과는 어긋나게 전개돼 왔다. 브렉시트 결정이 내려진 것 자체가 그렇다. 이는 100년 동안 영국 자본가들을 대변해 온 보수당 안에서 보리스 존슨 같은 이질적 정치인이 부상해 당내 브렉시트 반대파를 밀어내고 총리가 된 데에 영향을 끼쳤다.

존슨의 전략은 영국 자본주의가 미국과 긴밀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망이 매우 불투명하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어쩌면 영국은 꽤나 발전한 나라로 20세기를 시작했다가 줄곧 쇠락한 아르헨티나와 같은 길을 갈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수년째 영국을 격랑에 휘말리게 한 브렉시트는 2016년 6월 국민투표로 결정됐다. 당시 유럽연합 잔류 진영은, 유럽연합이라는 신자유주의·제국주의의 화신과 이를 지원하는 영국 자본주의의 지배계급 핵심 부문이 주도했다. 탈퇴 진영에서는 이민자들을 혐오하고 인종차별적인 자들이 두드러졌다. 당시 여당 보수당은 양측으로 분열했다. 따라서 영국 노동계급과 좌파에게는 난처하게도, 어느 진영에 서든 보수당 일부와 함께 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영국 유권자들 다수는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두 가지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첫째, 유럽연합은 40년간의 신자유주의 공격을 상징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감이 막대했다. 둘째, 2007~2009년 경제 위기로 신자유주의의 정당성이 파산한 마당에도 영국과 유럽의 경제·정치 권력층은 신자유주의적 긴축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환멸이 거대했다. 즉, 이는 신자유주의와 긴축에 대한 정당한 항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물론 국민투표에서 강경 우익의 인종차별 선동에 영향받아 탈퇴표를 던진 사람이 적잖았으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거치며 영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이 더 강해진 것도 사실이다. 이에 더해 장기화하는 경제 위기 속에서 보호무역주의가 강해지고 있다. 이런 일들은 곳곳에서 애국주의와 인종차별을 첨예하게 하는 데 영향을 준다. 이에 저항해야 한다.

이 모든 점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그 핵심 기구인 유럽연합, 이를 지지하는 영국 지배계급 핵심부를 편드는 것은 한참 잘못된 선택이었다.

유럽연합은 국민투표 고작 1년 전인 2015년에 그리스의 좌파 정부를 굴복시켰고, 지금도 해마다 난민 수천 명이 지중해에 빠져 죽는데도 난민 유입을 강하게 틀어막고 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적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세운 연합체인 유럽연합을 개혁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공상이다. 그러므로 잔류 진영에 선 좌파들이 ‘유럽연합 안에서 개혁하자’는 단서를 단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

안타깝게도 2016년 국민투표에서 영국의 노동계 지도자 다수는 그런 선택을 했다. 이들은 ‘진보적 유럽연합’이라는 공상을 쫓으며 유럽연합 반대 진영을 송두리째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넘기는 우를 범했다. 그것도 지독한 엘리트주의적 태도로 노동계급을 깔보면서 그랬다.

이와 달리 좌파적 관점에서 유럽연합을 반대하는 ‘렉시트’(좌파+브렉시트) 선동을 펼친 혁명적 좌파도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을 비롯해 소수 있었다. 그들은 브렉시트 결정 후 영국 자본주의가 경쟁력을 키우겠다며 노동계급을 더한층 쥐어짜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게 하려면 투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인종차별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브렉시트 결정이 인종차별 확산으로 이어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아니었다. 2015년 가을 유럽 전역에서는 난민 연대 운동이 크게 벌어졌고, 영국에서도 인구의 31퍼센트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난민 지원 활동에 참여했던 바 있다.

이런 일들이 보여 주는 가능성을 명확히 이해하고, 그런 가능성을 더 키우고 계급투쟁을 강화하기 위해 애쓰는 게 옳았다.

영국 정치가 브렉시트와 후속 협상을 두고 심각한 논란을 겪는 상황에서, 영국 노동당에서는 당 역사상 가장 좌파적인 당 대표라는 제러미 코빈이 부상했다가 몰락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세계 많은 좌파들이 ‘코빈 현상’을 주목했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번 글에서 필자가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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