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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임단협 잠정합의 부결:
노동자들이 고통 전가를 거부하다

1월 25일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임단협 잠정합의안을 부결했다. 전체 투표자 9258명 중 5522명(59.65퍼센트)이 반대했다. 상당히 높은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현대중공업 그룹의 4개 분할사 중 상대적으로 임금이 많이 인상된 건설기계와 현대중공업 지주사를 제외한 현대중공업(조선·해양플랜트·엔진)과 일렉트릭에서 반대표가 많았다. 현대중공업만 보면, 투표자 7681명 중 4830명이 반대해서 62.88퍼센트라는 큰 수치로 부결됐다.

이번 잠정합의는 문제가 많았다. 현대중공업과 일렉트릭의 기본급을 동결했다. 반면, 건설기계에서는 차등 인상했다. 게다가 분할사별로 성과급을 차등 지급했다. 사측은 노동자들을 이간질했다.

또 노조가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대신 고용 안정을 1년 동안 보장받는 내용의 양보를 했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회사의 노조 개입 문제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이에 대한 노조의 고소를 취하했다.

이런 잠정합의 내용은 노동자들에게 경제 위기의 고통을 계속 전가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지난 수년간 임금이 동결돼 수많은 노동자들의 삶이 열악해졌는데 말이다. 희망퇴직과 순환휴직·교육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통받았다. 일부 노동자들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였다.

이런 노동자들의 고통 속에서 사측은 이윤을 뽑아냈다. 지난해 사측은 수주 목표를 초과 달성했고, 정몽준·정기선 총수 부자는 수백억 원의 배당금 잔치를 벌였다!

따라서, 이번 잠정합의 부결은 더 이상 당하지만은 않겠다는 노동자들의 정당한 반발을 당당하게 표현한 것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의 노동자 공격에 대한 기층 노동자들의 불만이 꽤 커지고 있는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듯하다.

활동가들의 노력

지난해 현대중공업 노조는 파업과 집회 등 투쟁으로 사측의 공격에 맞섰다. 그 결과 사측이 제시한 임금 20퍼센트 반납과 단협 개악안 30여 개를 철회시켰다.

그러나 아쉽게도 노조는 사측의 공격을 더 효과적으로 막아내고 나아가 사측의 양보를 이끌어 내기에는 부족한 수준으로 투쟁을 벌였다. 그래서 투쟁에서 대안을 찾지 못한 일부 조합원들이 사측의 구조조정 공격 속에서 일터를 떠나기도 했다.

이것은 경제 불황 속에서 사측의 양보를 얻어내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을 반영한다. 이런 상황에서 금속노조와 현대중공업의 노조 지도자들은 노동자가 양보해 고용이라도 보장받자는 방향을 추구했고, 투쟁을 제대로 벌이지 않은 채 협상을 중시했다. 하지만 지난 현대중공업 경험만 봐도, 거듭된 노조의 양보는 고용을 보장해 주지 못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번 잠정합의는 많은 노동자들의 실망을 자아냈다. 특히, 투쟁에 열심히 동참해 온 노동자들 중 많은 이들이 노조를 비판했다.

이처럼 현장 여론이 좋지 않자 거의 모든 의견그룹들이 잠정합의 반대 입장을 냈다.

일부 전투적인 활동가들은 반대 여론을 모으고 꾸준히 부결 활동을 펼쳤다. 나도 이 운동에 동참했다.

잠정합의에 대한 실망이 큰 나머지, 부결 운동의 초반 분위기가 활력 넘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잠정합의가 나온 후 투표를 하기까지 2주가 넘는 기간 동안 활동가들은 출근·중식·퇴근시간에 하루도 빠짐없이 부결 선동을 벌였다.

이렇게 노력한 결과, 조합원들의 지지가 늘었고 활동가들도 힘을 얻었다. 찬반투표 하루 전에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유인물을 달라고 할 정도였다.

활동가들의 부결 운동은 아무리 민주파 노조라도 잘못하면 비판하고 옳은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줬다. 이것은 조합원들의 실망감을 부결 표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됐다.

과제

부결은 성공했다. 하지만 부결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의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게 투쟁해야 한다. 활동가들은 기층 노동자들의 활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면서, 노조가 투쟁에 나서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솔직히, 현대중공업 상황만 보면 부결 표를 행사한 사람들이 모두 다 파업에 나와도 여전히 회사가 멈추지 않는다. 답답한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 전체 사회를 보면 얘기는 다르다. 정부에 대한 기층 노동자들의 불만이 빠르게 커지고 있고, 투쟁 가능성도 꽤 있어 보인다. 이런 유리한 상황에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선다면 정부와 사측을 좀 더 효과적으로 압박할 수 있다.

한편, 우리 현대중공업에서 잠정합의가 부결됐듯이, 1월 28일에 열리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 안건도 부결되길 기대한다. 경사노위 참가를 무산시키고 민주노총이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하게 만들어, 그 흐름 속에서 현대중공업 노동자들도 투쟁한다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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