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속초로 번져, 정부는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하고 동해안 지역에 진화 헬기, 산불 진화 차량, 전국의 소방차와 소방 인력을 총동원해 진화에 나섰다.
많은 언론과 SNS상에서 전국의 소방차가 서울양양고속도로를 밤새 달리는 모습을 알렸다. 시민들은 ‘속초로 향하는 영웅들’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후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하자는 국민 청원이 순식간에 20만 명을 돌파하며 국가직 전환이 다시금 국민들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난해 11월 28일,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소위에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 관련 법안이 상정돼 표결만 하면 끝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당시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은 “자유한국당 원내 지도부가 ‘오늘은 통과시키지 말라’고 지시해 의결 직전에 법안 처리가 무산됐다”고 한다.
소방공무원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음에도 왜 정문호 소방청장이 전국 시·도와 소방관들에게 감사를 표했을까?
현장 소방관들은 시·도지사가 예산과 임면 권한을 가지고 지휘권을 행사하는 ‘지방직 공무원’ 신분이다.
이같은 구조 때문에 대형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일사불란한 지휘권을 구축하기 쉽지 않다. 재해, 재난은 반복된다. 완벽한 예방은 가능하지 않기에 강원 지역 등 일부에 집중되는 ‘재난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 소방관 국가직화는 대한민국 안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소방관 눈물 흘리게 하지 않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을 지키려면 예산과 인력이 충원돼야 한다. 더 나아가 그들 스스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소방관 노조를 인정해야 한다.
소방관들도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한다. 같은 소방 업무를 하지만 지역별로 초과근무기준, 휴가보상비, 건강검진비, 복지포인트 등 처우가 다르다.
박해근 소방발전협의회장은 “재정 자립도가 높은 곳의 소방관과 낮은 곳의 소방관은 복지·장비 등 차이가 크다”며 “소방·경찰 등 일명 ‘제복 공무원’은 노조가 없어 이같은 차이를 대변할 기관이 없다”고 토로했다.
ILO 핵심노동기준 중 제87호는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이다. ILO결사의자유위원회는 2006년, 2007년, 2009년 우리 정부에 대해 소방관의 ‘단결권’ 보장을 권고한 바 있다. 국회에도 소방관에게 ‘단결권’을 허용하는 공무원노조법 개정법률안이 해당 상임위원회인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소방 노동자들은 스스로 나서 노동조합 결성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전교조, 공무원노조를 불인정하고 그에 저항한 노동자 수백명을 해고·탄압해 국제적으로 비난받은 바 있다. 그 전철을 또 밟을 것인가? 정부와 국회의 결단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