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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운동이 산업정책을 마련해야 할까?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서, 노동운동도 산업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조선업 구조조정, 자동차 산업의 위기 등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개별 사업장에서 임금 인상이나 해고 반대를 요구하는 것은 한계가 크므로 노동운동도 산업의 발전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노사정이 함께하는 협의 테이블을 만들고, 노동자 경영참가도 확대해야 한다고 한다.

주로 노조 상층 지도자들이 이런 주장을 펴 왔다. 민주노총 김명환 지도부는 산업정책 마련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다행히 무산됐지만)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가해야 하는 이유의 하나로 제시했다. 올해 금속노조는 구조조정 대응 기조로 “노동지향적 산업정책 마련”을 내걸었다. 금속노조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한국노총과 제조공투본을 만들어 제조산업특별법안을 추진했고, 민중당 김종훈 의원이 대표발의 한 상황이다.

물론 이것은 정부와 기업이 추진하는 반노동적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고용 등을 지키려는 취지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취지는 현실과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노동계급의 처지 개선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첫째, 친노동적 산업정책을 통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주장은 장기 불황에 빠진 자본주의의 현실과 맞지 않는 공상적인 것이다. 현재 자본주의는 장기적인 이윤율 저하로 인한 위기를 겪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인 모순에서 비롯한 구조적 위기이다. 그래서 경제가 일시적으로 회복하는 듯하다가도 다시금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제조공투본은 2016년 발표한 ‘제조산업 발전 연구’에서 산업 발전을 위해 기술 혁신, 연구개발 강화, 노동자 숙련도 향상, 협력적 노사관계 강화 등을 제안했다. 그러나 구조적이고 체제적인 장기 불황 상황에서 이런 정책들이 불황을 극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가 근본적인 문제를 겪는 상황에서 산업 경쟁력 강화 주장은 고장 난 자본주의를 살려야 한다는 잘못된 길로 노동자들을 이끌 뿐이다.

둘째, 산업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받아들이면 결국 노동자가 양보해야 한다는 공격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산업정책은 정부가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추진하는 정책을 말한다. 이 말은 언뜻 중립적으로 들리지만, 실상 계급 이해득실이 근본에 깔려 있다. 자본주의 하에서 산업 경쟁력은 이윤 창출 능력과 같은 말이고, 이는 노동력 착취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산업정책의 본질은 지배계급의 노동 착취 전략이라 해야 할 것이다.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는 달리, 현실에서 모든 정부들은 산업 발전 정책을 추진하며 기업을 지원해 왔다. 특히, 경제 불황이 더욱 심화해 온 지난 수년 동안 각국 정부들은 더 공공연하게 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와 중국의 제조2025, 독일 인더스트리 4.0, 일본의 아베노믹스 등. 조선업 구조조정, 수소차 육성, 반도체 개발 지원 등에서 보듯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서구 나라들에서 산업정책과 생산력 향상을 위해 노사협조 관계를 추구했던 경험은 성취하고자 했던 목표에 비추어 실패로 드러났다. 산업정책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독일 ‘모델’을 대안처럼 말하지만, 독일 모델은 오히려 그 문제점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대표적으로 독일의 폭스바겐 노사는 1993년 ‘고용안정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협약’을 맺었다. 당시 노동조합은 고용 안정을 위해 임금 20퍼센트를 삭감한 노동시간 단축과 유연근무제를 받아들였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크게 하락했다. 게다가 이런 합의는 결코 고용 안정도 보장하지 못했다. 사측이 인력을 감축해 2006년 본사 직원 1만 3000여 명이 조기 퇴직했고, 2008년에는 비정규직 1만 6000명이 해고됐다.

당시 폭스바겐 협약을 이끈 노동이사였던 하르츠는 이후 ‘하르츠 개혁’이라 일컬어지는 독일판 노동 개악도 추진했다. 하르츠 개혁으로 독일은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와 하도급 일자리가 대폭 늘었다. 독일은 노동자들의 경영참가 수준이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지만 이런 후퇴를 막지 못했다.

경제 위기와 신자유주의적 공격이 본격화했던 1980년대 서구에서 미국이나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이런 경험이 반복됐다.

한국에서는 1997년 IMF 위기 이후 민주노총 지도부가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추진했던 사례가 있다. 당시 민주노총 1기 지도부는 초유의 경제 위기 앞에서 자본주의 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정리해고제와 파견제 도입에 합의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이 합의를 한 배석범 지도부를 불신임하며 저항했지만 결국 철회시키지는 못했다.

셋째, 현재 각국 정부들이 경제·군사적 경쟁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산업 발전 논리 수용은 더욱 위험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와 자본가가 힘을 모아 국가 경쟁력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노동자들이 받아들이면, 지배자들의 민족주의적 경쟁 압박에 더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이런 경향은 제1차세계대전 때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자국의 제국주의적 전쟁을 지지하는 것으로까지 나타났었다.

노조 지도층의 위상 강화

‘노동 지향적’, ‘진보적’ 산업정책을 마련하자는 것은 노동계급의 처지 개선을 위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산업 발전을 위한 상층의 협상 과정에서 노조 지도층의 위상은 높아질 수 있더라도, 기층의 노동자들은 수동성을 강요받기 쉬울 것이다. 그래서 협력적 노사관계가 발달한 독일 폭스바겐의 경우 노조 관료주의도 더욱 발달했다. 2005년 노조 간부가 연루된 섹스관광, 불법 보너스 수수 문제가 있었을 뿐 아니라 노조 간부들은 디젤 자동차 연비 조작 사건에도 침묵했다.

그런데 일부 좌파는 이윤 논리에 종속되지 않는 좌파적 산업정책을 말한다. 그들은 산업정책 추구가 개혁적이거나 노사협력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반대한다. 그러나 동시에, 구조조정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임금 삭감이나 해고를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모종의 산업적 대안을 제시해야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산업을 살리기 위한 정책은 이윤 논리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국가가 운영하면 다를 수 있다고 보는 경향이 진보진영 안에 있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이윤 경쟁 논리가 살아 있는 한, (예를 들어 옛 소련처럼 한 국가의 산업 자체가 국유화 돼 있다 하더라도) 국제적 경쟁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또, ‘노동 지향적’ 산업 정책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가다 보면 결국 사회주의에 이를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를 그 대립물로 바꿀 수는 없다. 지배계급은 자신의 권력을 결코 순순히 내놓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몰아내려면 혁명이 필요하다.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은 이후에야 비로소 노동자를 위한 산업정책이 가능할 것이다.

좌파적 수식어를 붙인다 하더라도 결국 산업정책 추구는 노사타협주의 방향에 힘을 실어 주거나, 현재 벌어지는 정치적·경제적 계급투쟁과 동떨어진 선전주의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노동조건을 진정으로 개선하려면 노동자 투쟁과 연대를 발전시켜야 한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지적했듯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생산적 운영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체제에 맞선 “비생산적 반대”를 하는 것이 노동계급에게 가능하고, 필요하고, 유용한 대안이다.

한국 노동운동은 경제 위기 시기에도 노동조건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얼핏 보여 준 바 있다. 박근혜는 노동 개악을 추진했지만 결국 못하고 많은 노동자들이 참가한 촛불 운동으로 탄핵됐다. 당시 촛불 운동의 방아쇠 구실을 했던 철도 노동자들에게 정부는 결국 성과연봉제를 관철시키지 못했다. 촛불 투쟁 승리는 이후 최저임금 인상이나 비정규직 정규직화 투쟁 활성화 등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구조조정에 맞선 사례도 있다. IMF 위기 이후 현대자동차 사측은 대량 해고를 발표했지만 노동자들은 공장 점거 파업을 하며 맞섰다. 당시 노동자들은 쇠를 날카롭게 갈아 가슴에 품고 다닐 정도로 강도 높은 투지를 보여 줬다. 이 투쟁을 통해 당시 4840명으로 계획됐던 정리해고 규모를 277명으로 축소시켰다. 지배자들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고임금이라며 비난하지만 이 노동자들의 상대적 고임금은 이와 같은 강력한 투쟁이 바탕이 됐다.

‘진보적’ 산업정책의 필요성을 말하는 사람들은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경제 투쟁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경제 투쟁은 사용자의 공격에 맞서 노동자들의 투쟁의 근육을 키우게 만든다. 또, 체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진 시기에는 경제 투쟁이 체제를 뒤흔드는 정치 투쟁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1905년 러시아 혁명은 푸틸로프 철강 공장 노동자 4명의 해고에 맞선 투쟁이 연대 파업으로 확산되며 시작됐다.

경제 위기 시기 정부와 사측의 압박에 맞서 투쟁을 전진시키려면 산업 발전을 괜스레 말하며 자본가들의 고민을 공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체제를 혁명적으로 바꾸려는 전망을 추구하며 싸워야 한다. 경제가 살아야 노동자가 산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다 보면 투쟁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노동자가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회가 가능하다는 혁명적 대안을 추구할 때 투쟁을 전진시킬 수 있다. 혁명가들이 개혁을 위한 투쟁을 전진시키는 데도 개혁주의 지도자들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임금, 노동조건, 고용, 복지 확대 등 노동계급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연결시키고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주의를 변혁할 진정한 힘은 노동계급의 단결된 행동으로부터 나온다. 노동계급의 연대와 행동을 고무하며 계급의 의식과 조직의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