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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최대 혁명 조직 ISO 와해의 원인과 교훈

미국의 가장 큰 혁명적 단체 국제사회주의단체(이하 ISO)가 지난 3월 급작스럽게 와해됐다. 위기가 표면화한 지 불과 한 달도 안 돼, 단체 자체가 해체돼 버린 것이다. 와해에 이르는 속도가 실로 전광석화 같았다.

여러 보도들을 참고하건대, ISO의 회원 숫자는 900~1000명을 헤아렸던 듯하다. (2013년에는 ISO 회원이 1500명에 이르렀다는 보도도 있다.) 올해 3월 말 단체 해산을 결정한 온라인 투표에 500명가량이 참여했다. 그때는 이미 단체가 위기에 빠져, 개인들이 대거 탈퇴하고 많은 지회들이 집단 탈퇴를 선언한 뒤였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ISO가 미국에서 가장 큰 혁명적 조직이었음은 분명하다.

ISO가 붕괴된 표면적 계기는 두 가지였다. 먼저, 올해 2월 대의원협의회에서 격렬한 논쟁 끝에 지도부를 인종할당제에 따라 뽑기로 결정했다. 그에 따라 기존 지도자 대부분이 지도부에서 밀려났고, 새 사람들이 지도부의 다수를 차지했다.

그 직후 성폭력 문제가 제기됐고, 이것이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일으켰다. 2013년에 전국규율위원회에 제소된 성폭력 사건을 당시 지도부가 은폐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던 것이다. 더구나 당시 가해지목인이 2월 대의원협의회에서 새로 운영위원회에 포함됐다.

이 혐의 제기는 즉시 새 운영위원들이 기존 운영위원들을 숙청하는 데 이용됐다. 2013년의 은폐 결정에 대한 책임을 이유로 순식간에 이들의 자격이 정지됐고 탈퇴가 강요됐다. 섀런 스미스, 폴 다마토, 아메드 쇼키, 랜스 셀파 등 ISO의 핵심 리더들이 탈퇴해야 했다.

한국에 사는 우리가, 태평양 반대편에서 벌어진 데다 6년 전 처음 제기된 성폭력 사건의 진상에 접근하기는 매우 어렵다. 진상을 알기 어렵다고 인정하고 그것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물론 피해자 중심주의 신봉자들은 이런 경우에도 전지(全知)함을 발휘해 이렇게 반문할지 모르겠다. ‘피해자의 주장을 믿지 않고 어떻게 의심할 수 있지?’ 노동자연대 비방에 이골이 난 자도 이 사건을 어떻게 확신하는지 이렇게 주장한다. “ISO가 기존 지도부가 은폐한 문제를 조용히 덮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올바른] 자세와 과정을 보여 줬다.” 그는 이런 주장을 통해 우리 단체를 또 비방하지만, 그 글을 블로그에 올린 직후 ISO가 해산해 버렸으니, 이에 대해 그가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다시 ISO 얘기로 돌아와, 2013년 성폭력 사건의 은폐 책임자로 몰려 탈퇴를 강요당한 옛 리더 가운데는 고참 회원인 팔순의 조엘 가이어도 있다. 그가 탈퇴하면서 공개한 문서를 보면, 이 사건의 진상을 뭐라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다만, 그가 2013년 사건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구실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가이어는 이렇게 지적한다. 2014년 초 대의원협의회에서 이 사건에 대한 전국규율위원회 1심과 2심 결과가 보고됐었다. 그때 협의회에서 그 보고서와 규율위의 결정문(“증거 불충분”에 따라 징계를 권고하지 않음)이 채택됐다. 그런데도 5년이 지난 지금, 당시 규율위원회에 속했던 인사들이 아무런 반증 없이 2013~14년의 결정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단체 해산 후에도 당시 사건이 왜 성폭력 사건인지에 관한 공식 설명은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성폭력 사건이나 그 혐의가 제기되면 좌파 정치조직 안팎에서 그 자체로 파괴적인 동학이 작용한다.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도덕주의적 잣대로 판단하기 쉽고, 따라서 금세 히스테리적 반응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ISO의 경우에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성폭력 문제가 ISO를 붕괴로 치닫게 한 핵심 원인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우리도 경험했듯이, 정치조직 안팎에서 성폭력 문제는 종종 진정한 이견을 숨기고 그 쟁점에 대한 생산적 토론을 가로막은 채 정적을 제거하려는 목적으로 이용되곤 한다. 따라서 ISO가 위기에 빠지고 급작스런 붕괴에 이르는 과정은 성폭력 사건 자체보다 훨씬 더 큰 정치적 맥락 속에서 살펴봐야 한다.

한 만만찮은 혁명적 조직의 성쇠

ISO의 청산은 미국 좌파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사건이다. 심지어 미국 바깥의 좌파들도 영향을 받을 듯하다. 특히, 지금 미국의 정치가 양극화하는 상황 속에서 미국의 최대 혁명 조직이 해산한 것은 커다란 손실이다. 가령 ISO 해산 뒤 헤이마켓 출판사, 좌파 개혁주의 성향의 잡지인 자코뱅, 그리고 DSA가 (지금까지 ISO가 주최해 온) 소셜리즘 대회를 공동 주최하기로 결정됐다. 단체 해산으로 청산주의적 흐름이 더욱 강화된 것이다.

지금 버니 샌더스와 DSA(미국민주사회주의당) 같은 개혁주의가 그 양극화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바로 이 정치적 양극화가 ISO에 가한 압력이 ISO가 와해된 핵심 원인이다. 이 점은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다.

ISO는 1977년 결성된 혁명적 조직이었다. 4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만만찮은 조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2000년까지 23년 동안 국제사회주의경향 IST의 일원이었다.

ISO가 결성되고 발전하던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는 서구 노동계급 투쟁이 오랜 침체에 빠지기 시작하고, 68운동으로 급성장했던 서구 혁명적 좌파들이 곳곳에서 이데올로기적 혼란을 겪으며 위기에 빠져들던 때였다. 이것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는 공민권운동, 베트남전쟁, 흑인 게토 봉기 등이 만들어 낸 광범한 정치적 급진화를 동반한 미국 노동자 투쟁의 완만한 상승세가 끝나고 극좌파들이 붕괴하고 있을 때였다.”[1]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출범한 것이 그 단체의 오랜 습관인 선전주의가 형성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선전주의’란 정치·경제 투쟁에 비해 이데올로기 투쟁을 특권화하는 경향을 가리키는 용어다.)

그럼에도 ISO는 1991년 걸프전 반대 운동 등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며 미국에서 매우 중요한 혁명 조직으로 성장해 왔다. 한 경쟁 좌파 단체조차 “ISO가 수십 년 동안 미국 마르크스주의의 보루 구실을 했다”고 인정할 만큼 말이다.

그러나 ISO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의 변화하는 정세에 적응하지 못하고 선전주의와 종파주의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1999년 시애틀에서 세계무역기구(WTO)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 시위는 이후 2000년대 반자본주의 운동과 반전 운동이 성장하는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그러나 ISO는 시애틀 시위를 기피했다. 그 후에도 반자본주의 운동에 대해 종파적 태도를 취했다.

종파주의는 개혁주의적 지도자들과 공동 투쟁을 해야 하고 공동 투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공동 투쟁을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어렵게 만드는 경향을 가리키는 용어다. ISO는 운동을 주도하는 개혁주의 지도자들과 자신들 사이에 그저 예리한 차별성을 긋고 이를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다. 이렇게 “자기 존재의 정당성과 명예를 계급 운동과의 공통점이 아니라 [계급] 운동과 자신을 구별 짓는 특별한 표지에서 찾는”(마르크스의 종파 비판) 경향은 ISO가 공동전선을 잘못 이해하고 있음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이처럼 당시 ISO는 불필요하게 경직된 태도로 새로 급진화하는 운동과 적절한 관계를 맺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게다가 ISO 지도부는 반자본주의 운동에 관해 자신들과 다른 개입주의적 견해를 내놓은 소수파 회원들을 모두 단체에서 쫓아내 버렸다.

더 나아가 국제사회주의경향의 그리스 자매단체 SEK에서 소수파가 분열해 나오도록 배후 조종했다. 이런 행태 때문에 2000년 국제사회주의경향 IST는 ISO와 단절했다.

그런데 종파주의와 기회주의 사이에는 만리장성이 있는 게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ISO는 여러 면에서 기회주의도 보여 왔다. 특히, 2008-09년 경제 위기 이후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후퇴한 이론적 절충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여러 학술적 유행과 페미니즘에 대한 이론적 타협이 두드러졌다. 경제 위기로 불만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런 기회주의적 처신이 단체 성장과 위상 제고에 도움이 되리라고 본 것 같다.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다루겠다.

종파주의와 기회주의의 흔한 조합

ISO가 급작스럽게 와해에 이른 것은 지난 20년 동안 절조 없이 종파주의와 기회주의를 오간 것의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이하에서 이 얘기를 하고자 한다.

2000년대 반자본주의 운동과 반전 운동 속에서도 ISO는 큰 압력을 받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정치의 양극화는 ISO에 엄청난 외부적 압력으로 작용했다. 버니 샌더스의 등장에 청년들이 폭발적인 지지를 보여 준 데 이어, 그 흐름 속에서 미국민주사회주의당 DSA가 무섭게 성장했다. 불과 3년 전에는 6000명 남짓의 노인들의 조직이었는데, 순식간에 새 세대 청년들이 들어와 10배 이상으로 성장해 버렸다. 그리고 민주당을 통해 하원의원까지 배출했다.(그중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넷플릭스가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만큼 전국적 스타 정치인이 됐다.)

비록 혁명적인 종류는 아닐지라도 사회주의를 공공연히 말하는 정당이 등장함에 따라, 오랫동안 미국 좌파의 화두였던 질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즉, ‘왜 미국에는 사회민주주의 대중 정당이 존재하지 않는가?’ DSA의 성장은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인 듯했고, 많은 좌파 단체들이 DSA 프로젝트에 매력을 느끼게 됐다. 훗날 DSA가 민주당에서 분리될 때 DSA 내 좌파와 협력해 새 좌파 개혁주의 정당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 것이다(이른바 “dirty break” 전략).

그러나 이처럼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 건설 프로젝트에 희망을 품게 된 사람들의 눈에 ISO는 큰 걸림돌로 비쳐졌을 것이다.

ISO는 새로 등장한 개혁주의 운동 DSA에 대해 종파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아마도 DSA에 대한 경쟁심에서 비롯한 태도인 듯하다. ISO는 민주당에 대한 옛 공식을 DSA에 대해서도 고스란히 반복했다: ‘좌파는 민주당을 이용할 수 없고, 미국의 부르주아 양당 후보가 아닌 독립적 좌파 후보만을 선거에서 지지한다.’

물론 민주당은 자본가 정당이고, 노동계급에 이롭게 민주당을 바꿀 수 없다. 그런 시도는 미국 역사에서 거듭 큰 실패로 끝났었다. 그러나 민주당을 통해 선거에 출마한 DSA 소속 정치인들에게 표를 던질 수 없다는 ISO의 태도는 너무 경직된 것이었다.

ISO의 종파적 태도는 단체 내부에서도 의문과 반발을 불러일으킨 듯하다. 사실, 개혁주의에 대한 ISO의 기회주의적인 태도가 이런 반발이 커지는 데 한몫 했다. 그리스의 좌파 개혁주의 정당인 시리자가 집권할 때 ISO는 거의 무비판적으로 시리자를 지지했다. 그리고 시리자와는 독립적으로 그리스반자본주의좌파연합 안타르시아를 구축한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 SEK를 맹비난했다. 시리자에 대해서는 이렇게 기회주의적으로 주장해 놓고, 미국 내에서 DSA에 대해서는 정반대로 처신한 것이다.

결국 지난해 6월~8월 ISO는 기관지 〈소셜리스트 워커〉에서 지상 논쟁을 벌여야 했다. 그 3개월 동안 30개가량의 글들이 쏟아져, DSA에 대한 태도를 놓고 ISO 회원들 간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그러나 ISO의 기존 지도부는 이런 논쟁으로도 자신의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그해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기관지 사설을 내어, DSA 측 후보를 포함한 민주당 후보에 투표하지 말고 무소속 좌파 후보에게만 투표하라고 했다. ISO 안팎의 이런 논란이 ISO가 위기로 치닫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 밖에도 ISO가 보인 기회주의가 최근 위기를 더욱더 파괴적 결과로 몰아간 측면이 있다. 특히, 국제사회주의경향에서 이탈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엄청 애썼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 좌파적 개혁주의 쪽으로 이탈한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2013년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SWP를 탈퇴한 리처드 시모어가 그런 사람인데, 그가 소셜리즘2013을 다녀오고 나서 남긴 기록은 그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간신히 참가한 [소셜리즘] 세션들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뚜렷한 ‘노선’들이 부재했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ISO 회원들 중에는 ‘국가자본주의론’을 주장하는 회원도 있고 ‘관료집산제’를 주장하는 회원도 있다. ‘정치적 마르크스주의’를 주장하는 회원도 있고 더 정설적인 입장의 회원도 있다. 알튀세르주의나 풀란차스주의를 주장하는 회원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찾아보고 있다. 내가 몸 담았던 조직[SWP]보다 훨씬 다양한 환경이고 이 점이 행사에도 반영됐다. 예컨대 계급에 관한 샘 파버의 토론은 핼 드레이퍼의 저작에 기초했고 국가자본주의론 입장에선 분명 이단이었다. 논쟁이 벌어져도 경험 많은 노선 관리인이 ‘개입’하는 일은 없었다. 뭐, 나만 빼고 말이다.”

ISO의 무원칙한 이론적 절충 중에서 특히 페미니즘과 마르크스주의를 절충하려는 시도가 두드러졌다. 2013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섀런 스미스 같은 지도적 회원들이 국제사회주의경향의 여성해방론이 “계급 환원론”이라고 비난하면서 “상호교차성” 개념 같은 것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이렇게 개인적 정체성을 결정적 요인으로 여기는 이론과 절충을 하려 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분열과 파편화 경향을 부추기는 셈이 된다. 그리고 개인의 정체성에 따른 특권적 차이가 인간 사회의 변함없는 특징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그 사회의 일부인 혁명적 정치조직도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ISO 내에서 인종별/성소수자별 부문조직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이 문제가 논쟁이 된 까닭이다. 마지막 대의원협의회에서 기존 지도부가 패배한 쟁점도 바로 지도부를 인종별로 할당하는 제도였다.

계급 전체를 대표하려는 커다란 개혁주의 정당 안에서는 이런 별도의 소수자 조직이 필요할 수도 있다. 당의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그런 요구를 제대로 반영해 주지 않거나 소극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명적 당에서는 얘기가 사뭇 다르다. 혁명적 당 안에서 이런 분리가 상설화한다면, 혁명적 운동과 차별 반대 운동이 분리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면, 혁명적 조직 내 소수자 부문조직에 속한 회원들은 그 운동의 부침에 따라 사기가 오락가락하고 그 차별 반대 운동의 유력한 정치인 정체성 정치(개혁주의로 기울 수밖에 없다)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될 것이다.

결론

ISO의 붕괴는 개혁주의의 등장이라는 맥락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그런 점에서 2013년 SWP의 위기와 그 배경이 비슷하다. 그러나 SWP 위기보다 ISO 위기는 훨씬 더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그 점은 ISO가 지난 20년 동안 한 잘못된 실천의 귀결이다.

그러나 우리의 토론을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 우리가 태평양 건너의 ISO 붕괴를 그저 오늘밤 뒷풀이 술안주로 삼으려고 이런 토론을 하는 게 아니다.

ISO의 붕괴를 둘러싼 쟁점과 그 교훈들은 사실 국제 혁명적 좌파들 사이에서 공유돼야 하는 것이다. 즉, 전체 노동자 운동의 발전을 위해 토론하는 것이다.

ISO의 붕괴를 살펴보면서, 다시 한 번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중요성을 느꼈다. 첫째, 개혁주의(좌파적 경향 포함)에 대한 태도가 중요한 쟁점이다. 종파주의와 기회주의 둘 다에 빠지지 않고 개혁주의 정당 지지자들과 어떻게 적절한 관계를 맺을지가 중요하다. 그러려면 개혁주의 문제와 공동전선 문제를 잘 알아야 한다. ISO처럼 새로운 개혁주의 운동에 대해 낡은 공식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정의당 같은 개혁주의 정당의 사회적 기반을 도외시한 채 “민주당 2중대”니 “여권연대”니 식으로 종파적 태도를 취하는 것과 비슷하게 부적절하다.

둘째, 개혁주의 문제와 관련된 문제로서 급진 페미니즘 문제도 중요하다. 섀런 스미스의 비난과 달리, 국제사회주의 전통은 차별에 맞서 싸우는 것이 사회주의 운동과 계급투쟁의 본질적 일부라고 강력하게 주장해 왔다. 여성 차별에 분노해 행동하는 여성들과 대화하는 동시에, 계급사회의 근저에 있는 차별의 원인에 맞서 싸워야 할 필요성을 참을성 있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ISO는 개혁주의자와 운동주의 성향의 사람들이 한 협공에 의해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운동주의’는 레닌주의적 활동 원리에 따라 개입하는 혁명적 좌파 정치조직을 혐오하고 배제하는 경향을 가리키는 용어다. ISO가 붕괴하자 다시금, “레닌주의는 역시 21세기에 유효하지 않다”는 공격이 나타나고 있다. 레닌주의 정당은 필시 엘리트주의로 이어지고 지도부의 권위주의와 독단적 행태를 낳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ISO는 레닌주의 정치에 충실해서가 아니라 그 반대로 거기서 멀어지면서 위기를 맞았다. 종파주의와 기회주의의 흔한 조합이 자승자박이 됐던 것이다.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우리는 새로 봉착하는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창조적인 적용을 하려 애써야 한다.



[1] ‘반자본주의 운동과 혁명적 좌파’, 알렉스 캘리니코스, 《좌파의 재구성과 변혁 전략》, 책갈피, 2009.

이 글은 필자가 노동자연대 회원 토론회에서 발표한 발제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