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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노동자 투쟁의 역사

볼리비아 노동계급의 전투성은 아마도 남미 전체에서 으뜸일 것이다. 그들은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중반까지 국가 지배 엘리트들에 맞서 거듭 공세를 벌여 왔다.

1952년에 볼리비아 광부들은 수도인 라파스로 행진했고, 군대를 무장 해제시켰다. 노동자들은 광산을 장악했고 부유한 지주들의 재산을 가난한 무토지 농민들에게 나눠 주었다.

볼리비아의 주요 노조 ― 볼리비아노총(COB) ― 와 산하 노동자 시민군이 기업주들의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대안 권력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결국 혁명 운동의 지도자들은 중간계급 정치인들에게 의탁했고, 이들은 곧 혁명을 좌초시키고 볼리비아 자본주의의 강화를 추구했다.

1970∼1971년에 노동자들은 다시금 볼리비아 기업주들의 권력에 도전했다. 군대와 지배계급 내의 분열 덕분에 COB와 국영노조연맹, 좌파 정당, 학생 단체, 농민 단체들로 이뤄진 공동전선이 민중의회를 소집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이번에 노동자들은 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동계 지도자들은 “진보적 군 장교들”이 운동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다. 정당들은 민중의회의 개혁 요구를 제한하는 밀실 협정을 맺었다. 비극이게도, 그 결과는 우익 쿠데타와 야만적 군사독재 정권의 등장이었다.

1980년대 중반, 다이너마이트로 무장한 1만 명의 광부들이 수도 라파스에 다시 등장했다. 그들은 정부 청사들을 점거했고 농업 노동자, 학생, 도시 주민들의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새로운 “민주 정부”에 대한 환상이 다시금 사회 변혁의 희망을 가로막았다. 라파스를 장악했지만 광부들은 그러한 전투성으로부터 아무런 소득을 얻지 못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혁명적 시기마다 볼리비아의 노동자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소위 개혁적 성향의 중간계급 정치인이나 “진보적” 군장성들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기대했다. 이 때문에 혁명이 패배하고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