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총기 사고 - 군기 잡기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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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군부대 총기 사고 후 아니나다를까 젊은이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유가족들과 많은 이들의 비통함 사이를 비집고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들이 슬그머니 “국가 안보 위기”를 들고 나왔다.
“며칠 전에는 평양에서 ‘민족 공조’를 떠받드는 축제가 벌어졌다. 군대 밖에서는 북한보다 미국이 더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말이 서슴없이 거론되고 있다.”(〈조선일보〉 6월 20일치 사설). “이완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군의 기강이 내부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는 단면”(〈중앙일보〉 6월 20일치).
그러나 북한만큼이나 “맹렬한 선군정책”을 추진한 남한의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도 군인의 총기 사고는 군 부대 안팎에서 비일비재했다.
군 스스로 공개한 것만 해도 ―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겠지만 ― 지금까지 1백10명이 이런 사고로 죽었다.
물론 지난 몇 년 간 운동의 고양에 힘입어 사회적 통제와 억압이 완화된 것은 사실이다. 국가보안법 구속자도 크게 줄었고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기구도 사회적 차별과 억압뿐 아니라 군대 내의 억압에 대해 공공연히 지적해 온 바 있다.
문제는 이런 사회 변화의 속도를 군대가 따라가지 못하는 데 있다.
징병제에 의해 입대한 사병들은 군대 밖에서의 경험과 그에 비해 훨씬 억압적인 군대 내 분위기 사이에서 느끼는 모순이 환멸과 좌절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런 환멸과 좌절이 사병들 사이에 괴롭힘과 ‘갈굼’이 횡행하게 만들고 심지어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게 하는 것이다.
몇 달 전에는 훈련소에서 사병에게 인분을 먹게 하거나 화장실의 소변찌꺼기와 세면대의 머리카락을 입에 쑤셔넣고 담뱃불로 이마를 지지는 등의 가혹행위가 여전하다는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사병들의 자살이 잇달아 국방부가 대책 마련에 나서기도 했다.
〈한겨레〉 여론조사에 따르면, 2003년 이후 전역자들 가운데 47.7퍼센트가 구타를 당했고, 51.8퍼센트는 가혹행위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다른 한편, 부자 등 권력자들의 자식은 국적을 바꿔버리거나 각종 편법을 동원해 군대에 발도 들여놓지 않는 데 반해 평범한 청년들은 2년 동안 이런 끔찍한 일들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이 좌절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역겹게도, 군당국은 이제 모든 것이 “계획된 범행”이었다며 책임을 김일병 개인에게 덮어씌우고 있다. 그러나 이틀 전에 “죽여버리겠다고 맘 먹은” 게 “냉혹한” 계획이었다면 자대에 배치된 신병의 절반 이상은 잠재적인 반군 세력일 것이고 군 지휘부는 매일매일 죽음의 공포에 밤잠을 설쳐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국가의 무력 기구 내에서 강력한 위계적 억압과 무장한 사병의 존재는 상시적인 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다.
하지만 징병제를 폐지해 불평등을 완화하고 사병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인권을 보장한다면 상황은 어느 정도 완화될 수 있다. 보수 우익들이 요구하는 군기 강화와 안보 강화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