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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노동조건 위해 싸우는 게 경제주의인가?

오늘날 임금‍·‍노동조건을 위한 노동자 투쟁(과 그 필요성)을 ‘경제주의’라고 폄하하는 주장이 꽤나 흔하다.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보다 의회 선거를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 경향이나, 노동자 투쟁이 다른 (통상 중간적) 계급으로부터 연대를 거부당하지 않는 수준에서 벌어져야 한다고 보는 민중주의적 경향으로부터도 경제투쟁을 폄하하는 주장들이 나온다.

그런데 노동운동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런 주장을 접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특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투쟁은 노동계급 내에서 임금 격차를 키우는 부작용을 낳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 근거해 그들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투쟁을 하기보다는 더 열악한 노동자들을 위해 ‘양보와 나눔’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에 사회진보연대가 “임금 극대화에 전력투구하는 전투적 경제주의의 지양”이 노동자 내 임금 격차 축소를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임금 인상 투쟁이 노동계급 내 임금 격차만 키운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만약 전체 노동계급이 받을 수 있는 임금 몫이 정해져 있다면 이 말이 사실일 것이다. 어떤 노동자들이 더 많이 가져가면 다른 노동자들은 손해를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임금 몫은 정해져 있지 않고 주로 계급 세력균형에 따라 달라진다. 노동소득분배율이 해마다 달라지는 것을 보면 노동자들끼리 제로섬 게임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임금 격차는 근본적으로 경제가 조직되는 자본주의적 방식 자체에서 비롯한다. 이는 고임금 노동자들이 양보와 나눔을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잘 조직돼 있고 싸울 수 있는 자신감 있는 노동자들이 양보할수록 전체 노동계급의 몫이 줄고 그 몫을 늘릴 잠재력도 약화될 것이다.

잘 조직돼 있고 자신감 있는 노동자들이 투쟁해서 임금을 올릴수록 그 성과는 다른 노동자들에게로 파급되는 경향이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 변동 추세는 거의 비슷하다. 함께 오르고, 함께 내려간다.

또, 일각의 주장과 달리 노동자 투쟁의 고양은 노동계급 내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경향이 있다. 사용자들은 자신들의 상이한 지불 능력에 따라 임금 격차를 키우는 경향이 있지만, 노동자들의 힘이 커질수록 자본가들의 이런 공격에 맞설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노동조합이 전투적으로 투쟁했던 1987년부터 임금 격차는 축소됐고 그 추세는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반면 1997년 ‘IMF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공격이 거세지고, 노동자 투쟁이 고전하자 임금 격차는 빠르게 증가했다.

노동자 투쟁이 강했던 87년 이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임금 격차가 줄어들었다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을 폄하하는 주장은 노동계급의 처지를 개선시킬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진정한 문제다. 임금‍·‍노동조건 개선 투쟁을 중시하는 것을 ‘경제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아래에서 보듯이 ‘경제주의’의 뜻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소치이다.

경제주의란 무엇인가?

경제주의의 고전적 형태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제정 러시아 노동운동에서 등장한 개혁주의 경향이었다. 러시아의 노동자 투쟁은 1890년대 중반부터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곧이어 생겨난 경향인 경제주의자들은 “노동자 운동을 노동자들의 부분적 이익을 지키는 투쟁으로만 체계적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경제투쟁에서는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건설 노력을 지지하고, 정치투쟁에서는 중간계급의 자유주의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것이 사회주의자들의 임무라고 주장했다.

1900년경부터 레닌은 경제주의를 예리하게 비판했다. 그 이유는 경제주의자들이 경제투쟁을 중시했기 때문이 아니다. 레닌은 경제주의자들이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분리시키고, 정치투쟁을 중간계급의 자유주의자들에게 의탁하려 한 점을 특별히 강력하게 비판했다. 경제주의자들이 노동조합의 쟁점들만 강조할 뿐, 혁명적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려는 더 폭넓은 정치 투쟁과 정치적 조직화 노력을 반대한 것을 집중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레닌은 경제투쟁을 정치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혁명가들의 구실을 강조했다.

“사회주의자들에게 경제투쟁은 혁명적 정당으로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한 토대다. 왜냐하면, 경제투쟁은 자본주의 체제 전체에 대항한 노동계급의 투쟁을 강화하고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 사회주의자들의 임무는 더 나아가 경제투쟁을 사회주의 운동으로, 혁명적 노동계급 정당의 성공으로 이끄는 것이다.”

오늘날 대공장‍·‍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을 경제주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어찌 보면 러시아 경제주의자들의 전제를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을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의 유기적 관계(따라서 둘의 결합 잠재력)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와 경제의 유기적 연관성

자본주의적(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경제와 정치의 형식적 분리가 강화된다. 노동운동이 (먹고사는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권력 문제를 건드리는 것으로) 급진적이 되는 것을 지배자들이 막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지배자들이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은 상당 부분 용인하면서도 정치파업은 한사코 불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것을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정치와 경제의 유기적 연관성을 간파해 왔다. 경제적 착취를 하는 것과 착취를 위해 정치적 억압 기구(국가)를 유지하는 것은 긴밀히 연관돼 있다. 그래서 레닌은 정치를 “집중된 경제”라고 말했다.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흔히들 요구를 기준으로 정치투쟁이냐 경제투쟁이냐를 구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차이를 요구 자체가 아니라 투쟁 양상의 차이로 봤다. 정치투쟁은 전 계급적인 것인 반면, 경제투쟁은 부문적 운동인 것이다.

“노동계급이 지배계급에 대항해 하나의 계급으로서 행동하며 외부에서 압력을 가해 지배계급을 굴복시키려 하는 운동은 모두 정치 운동이다.”

따라서 흔한 오해처럼 정치투쟁은 제도개혁 등을 위한 것이고, 경제투쟁은 임금 등을 위한 것이라는 식의 구분은 옳지 않다. 부분(부문)의 투쟁이냐 (전全) 계급적인 투쟁이냐 하는 관점으로 봐야 정치투쟁과 경제투쟁 사이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2009년 여름에 벌어진 쌍용차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반대 투쟁은 그 한 사례이다. 쌍용차 투쟁은 특정 기업에서 불거진 경제투쟁으로 시작했지만, 투쟁이 경제 위기 고통전가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초점이 되면서 정치적 성격을 갖게 됐다. 당시 쌍용차 노동자들의 점거 투쟁을 주류 언론들과 전경련 등의 사용자 단체들은 맹비난했고, 정부는 경찰력을 투입했다. 이에 맞서 노동운동 활동가들과 청년‍·‍학생들의 연대가 조직되며 투쟁은 계급 대리전 양상으로 발전하는 듯했다. 아쉽게도 노동운동 측이 그 투쟁의 성격에 걸맞게 폭넓고 효과적인 연대를 건설하지 못하면서 투쟁이 패배했지만 말이다.

2016년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의 방아쇠 구실을 했던 철도 노동자 투쟁은 또 다른 사례가 될 수 있다. 철도 노동자들은 공공부문 성과연봉제를 정부가 도입하려는 것에 맞서 싸웠다. 이는 범위로는 경제투쟁이었지만, 성과연봉제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대표적 노동개악 정책이었으므로 정치적인 성격을 지닌 경제투쟁이었다. 2016년 9월에 시작한 철도 파업은 10월 말 박근혜 퇴진 운동과 맞물리며 퇴진 운동의 일부로서 중요한 기여를 했다. 경제투쟁이 정치투쟁에 양분을 제공하며 시너지 효과를 낸 사례이다.

박근혜 퇴진 운동이 성공한 이후 지난 2년간 민주노총 조직률은 10퍼센트가량 증가했고, 여러 사업장에서 투쟁들이 비교적 활발해지고 있기도 하다. 이는 정치투쟁의 승리가 경제투쟁을 고무하고 있는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역동적 상호관계는 독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생생하게 서술한 바 있다. 비록 그녀가 혁명적 시기에 분출하는 대중 투쟁을 다뤘지만 본질적인 동역학은 비슷하다.

“정치 행동의 물결이 고양된 뒤에는 언제나 수많은 경제투쟁의 싹을 틔우는 기름진 퇴적물이 남고, 또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 말하자면, 경제투쟁은 정치투쟁에 언제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노동자계급 역량의 마르지 않는 저수지이다. … 즉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은 현학적인 도식들이 설명하는 것과 달리, 완전히 분리되거나 서로 부정하는 것이 전혀 아니며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서 서로 얽혀 있는 두 측면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정치운동이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임금‍·‍노동조건 등을 둘러싸고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벌이는 경제투쟁을 적극 옹호해야 한다. 현재 경제 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서 노동개악을 추진하려 한다. 따라서 임금과 노동조건을 둘러싼 경제투쟁은 정치투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좌파가 자꾸만 노동자 일상투쟁의 의의와 섟을 죽이려 애쓰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일상적 시기에 모든 경제투쟁이 정치투쟁으로 발전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의의는 결코 작지 않다. 그런 때에도 노동자들은 경제투쟁을 통해 자신의 조건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의식과 조직을 발전시킬 수 있다.

자기 일터에서 경제투쟁을 대강 접어 두고서 더 큰 정치 투쟁(운동)에 나서라고 강변하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도덕주의적인 설교로 여겨질 뿐이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노동자가 자본과의 일상 투쟁에서 비겁하게 굴복한다면 그들은 그 어떤 한층 더 광범한 운동을 일으킬 자격을 잃어 버리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노동조합 속 사회주의자들은 일상적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려고 애써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레닌이 강조했듯이 혁명적 조직을 건설하려 애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