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사회주의자가 전한다:
노동자들의 집단행동과 중국 본토 노동자들과의 연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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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현지에서 활동하는 혁명적 사회주의자 람치렁이 7월 1일 입법회 점거 시위와 그 이후 송환법 반대 운동의 현황에 관해 글을 보내왔다. 대괄호([ ]) 안의 내용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노동자 연대〉 편집부가 덧붙인 것이다.
홍콩의 송환법(범죄자 인도 조례) 반대 운동이 벌써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이 운동은 더한층 고조됐다.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은 송환법 처리를 중단한다고 발표했지만[7월 9일 람은 송환법이 “죽었다”고도 발표했다], 시위대의 다른 요구는 여전히 무시하고 있다.
7월 1일은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22주년 되는 날이었다. 이날 50여 민간 단체의 연대체인 민간인권전선이 송환법 반대 시위를 벌였다. 최소 50만 명이 참가했다.
6월 초 이후 일어난 세 번째 “송환법 반대” 시위였다. 6월 9일 시위에는 103만 명이, 6월 16일 시위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약 200만 명이 참가했다. 홍콩 시민 약 4분의 1이 시위에 나온 셈이다.
7월 1일 낮부터 일부 시위대는 홍콩 입법회(의회) 건물로 진입을 시도했다. 이들은 쇠파이프, 망치, 카트로 유리벽을 부수려 했다. 비폭력 저항을 주장했던 소수의 민주파 의원들이 시위대에게 그만두라고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입법회 건물을 습격한 시위대 중에는 정부가 보낸 끄나풀로 의심되는 수상한 개인들이 있었지만, 진짜 시위 참가자들은 징역이나 죽음까지 각오한 진실로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입법회 점거
오후 9시 경, 시위대 약 500명이 성공적으로 입법회를 점거했다. 이들은 스프레이 페인트로 “송환법 반대”, “캐리 람은 사퇴하라” 같은 구호를 벽에 휘갈기고 “홍콩 시위대 선언문”을 큰 소리로 낭독했다. 그후 시위대는 건물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민간인 시위대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면 몸소 시위에 나와 폭정에 맞서거나, 정부와 흥정하려고 입법회를 점거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홍콩 정부는 원칙과 절차를 죄다 걷어치우고, 홍콩 민중의 요구를 무시하며 꾀죄죄한 주장과 거짓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이러한 통치와 비합리적인 정부에 맞서 우리는 정의, 양심, 홍콩과 홍콩인들에 대한 사랑으로 투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는 이 사건을 빌미로 시위대를 폭도로 몰아붙여서 송환법 반대 운동 전체를 공격하려 했다. 캐리 람은 즉각 시위대의 행동을 비난했고, 경찰과 주류 언론은 시위대를 “폭도”로 묘사했다.
그러나 입법회 점거는 그저 아무 목적 없는 파괴 행위가 아니었다. 시위대는 입법회나 입법회 도서관이 보유한 역사적 유물을 훼손하지 않았고, 외려 보호 표지판을 세우기도 했다. 심지어 이들은 매점에서 음료수를 꺼내 먹기 전에 돈을 놓고 가기도 했다. 이들은 열사가 되는 것을 꺼리지 않았으며, 무분별한 폭력을 일삼는 폭도가 아니었다.
홍콩 정부는 이제 검거 선풍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7월 초까지 최소 71명이 체포됐는데, 그중 5명은 “폭동 가담” 혐의로 기소됐다.
홍콩 정부는 사람들을 무더기로 체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과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려는 척했다. 캐리 람은 여러 대학 학생회들과 만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학생회들은 캐리 람의 비공개 면담 제안을 거부했다. 학생회들은 모든 면담은 공개적이고 투명해야 하며 시위대 체포부터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처럼 캐리 람은 송환법 처리를 중단했지만 여전히 대중의 불만과 분노를 가라앉히지는 못했다.
한 어머니 모임은 6000명 이상이 참가한 집회를 두 번이나 열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발언했다. “저희가 젊은 시위대의 행동을 전적으로 이해하거나 동의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들은 절대 폭도가 아닙니다.”
이에 더해 비극적 사건들도 있었다. 6월 초 이래로 송환법에 반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년이 넷이나 된다.
시위대는 2014년 우산 운동 당시 [홍콩 시민들이 정부 청사 건물에 자신의 요구를 쓴 포스트잇과 팻말 등을 붙여 형성한] ‘홍콩 레논 벽’과 유사한 “민주벽”을 곳곳에서 제작하거나, 7월 7일 주룽반도 행진을 비롯해 조만간 다른 도시에서 행진을 벌일 계획 등 더 광범한 저항을 계획하고 있다.
기로
하지만 한 달 동안 자생적으로 이어져 온 이 대중운동은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다.
7월 1일 입법회 점거를 두고 시위 참가자들과 활동가들 사이에 상이한 견해가 있다.
주류 민주파 의원들은 점거를 공개적으로 비난하지는 않지만, 대중운동이 언제나 비폭력 평화 저항 원칙을 고수해야 한다는 관점을 견지한다.
반면 시위 참가자 일부는 입법회 점거를 지지한다. 그들은 운동의 수위를 높여야만 홍콩 정부, 특히 캐리 람을 상대로 시위대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다고 본다.
입법회를 점거한 시위대는 홍콩특별행정구 문장(紋章)을 영국 식민 점령기의 홍콩 깃발로 가리고 영국 국기를 들었는데, 이는 시위대의 정치적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반영한다. “송환법 반대” 운동이 억압적인 중국공산당 정권의 입김이 커지는 것에 저항한 것은 옳지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과거 영국의 식민 통치를 지지해서는 안 된다.
한편 7월 7일 주룽반도 행진의 일부 조직자들은 중국 우한시(市)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각장·발전소 반대 운동에 연대를 표하기를 거부했다. 중국 대륙의 대중운동에 대한 지지·연대 표명은 “우리의 운동을 분열시키고 초점을 흐릴” 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7일 행진에 참가한 홍콩 시민들이 시위 조직자들의 편협한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다. 주룽반도 시위가 중국 대륙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홍콩의 상황을 전달하려고 분명하게 노력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시위 참가자들 사이에는 송환법 반대 운동을 반중 시위로 뒤틀지 말자는 목소리도 많다.
물론 이 운동은 우한의 시위에 연대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다. 그러나 상황은 조금씩 변하고 있으며, 시위 참가자 다수는 홍콩의 투쟁이 승리하려면 중국 대륙의 민중의 지지를 받아야만 한다는 주장을 얼마든지 경청할 태세가 돼 있다.
이들은 [거리 시위만이 아닌] 다양한 전술에도 귀를 기울이고, 성공 가능성이 보이면 그것을 시도할 태세도 돼 있다.
사회주의적 좌파는 송환법 반대 운동을 지지하면서 ‘조직 없는 운동’의 한계를 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합 위원회를 조직해서 정부를 상대로 송환법 철회와 [캐리 람 사퇴,] 민주적 선거를 관철할 노동자 총파업과 학생들의 동맹휴업을 채택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투쟁의 수위를 높이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에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와 주민들과 단결해야 한다. 그래야만 중국공산당 정권의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를 타도하고 중국과 홍콩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