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재교육 시설”(강제수용소)과 홍콩 송환법 반대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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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언론에서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이하 신장)의 위구르족 등 100만 명을 가둔 강제수용소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위구르족 등”이라고 하는 이유는 카자흐족, 키르기스족 등 여러 투르크계 소수민족들도 신장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위구르족만큼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이들도 중국 정부에 대한 불만이 크다). 최근 친스탈린주의 경향의 글을 많이 쓰고 있는 박노자 교수조차 카자흐스탄 거주 위구르족이 신장에 사는 친척들의 끔찍한 인권 실태를 폭로한 러시아 기사를 인용하며 중국 정부를 비판했다.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만든 위구르족 강제수용소를 “재교육 시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무슨 자신감에서인지 몰라도 해외 언론들에게 이 강제수용소를 공개할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하지만 ‘위구르족의 달라이 라마’라고도 불리는 여성 독립운동가 레비야 카디르의 자서전 격인 《하늘을 흔드는 사람》(독일 저널리스트 알렉산드라 카벨리우스가 진행한 인터뷰로 구성돼 있다)에 묘사된 신장 강제수용소는 중국 정부의 주장과 영 딴판이다.
그녀는 1990년대에 인권 실태 조사를 위해 신장에 방문한 미국인 공무원에게 위구르족 인권 탄압을 알리려다가 체포됐다. 그 전까지는 세탁소 일을 하다가 개혁·개방을 계기로 중국 상하이와 카자흐스탄 등을 오가며 무역 일을 했고, 위구르족 여성을 위한 센터를 만든 유명한 여성 사업가였다.
신장의 공산당 간부들은 “신장의 발전을 선전하기 위해” 그녀를 위구르족 대표로 중국 공산당 대회에 보냈는데, 오히려 그녀는 생중계되는 언론에 “신장 위구르족의 실태”를 폭로했다. 그 연설을 들은 장쩌민 당시 국가 주석조차 “동지의 연설을 잘 들었소. 당신이 말한 것에 대해 잘 알아 보겠소”라고 답해야 할 정도였다.
그녀는 수용소에 들어간 초기에 “나는 죄인입니다”로 시작하는 죄수들의 선서를 강하게 거부했다. 하지만 중국 교정 당국은 살아남은 정치범이 없기로 악명 높은 수용소로 그녀를 이감시키고, 자녀와의 접견을 제한하고, 동료 위구르족을 포섭해서 그녀를 괴롭히는 등 그녀를 집요하게 탄압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을 담당하는 위구르족 여성 간수가 자신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는 걱정을 하면서 점차 자신감이 꺾였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 교정 당국은 그녀를 존경하는 위구르족 죄수들의 사기를 꺾고자 그녀가 자신의 죄를 뉘우쳤다는 허위 보고까지 했다.
그녀는 5년 동안 강제수용소에서 생활하면서, 한족 간수들이 위구르족 여성 죄수를 성폭력한다는 얘기를 들었고, “머지않아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는 중국 정부의 선전을 참아 내야 했다.
다행히 그녀는 먼저 미국으로 망명한 남편(그 역시 중국 정부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감옥에 갇혔다)이 미국 정부에 호소해 겨우 석방됐고, 미국으로 망명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도 세계 위구르족회 의장으로서 미국 정부나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위구르족 독립운동의 정당성을 알리고 있다. 그녀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위구르족 독립운동가들은 최근 일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위구르족이 세운 옛 국가인 동투르키스탄 공화국 깃발을 들고 트럼프에게 청원하는 행진을 하기도 했다(바로 그때 일부 우파적인 홍콩 시민들도 일본에 온 트럼프에게 “홍콩을 해방시켜 달라”고 청원했다).
나는 레비야 카디르의 독립운동 방식을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심정은 이해가 된다.
왜냐하면 독립운동가와 인연이 있었던 걸로 보이는 레비야 카디르의 부모 세대 중 중국에 우호적인 일부 위구르족 공산주의자들조차, 민족자결권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 정부에 실망해 러시아와 여러 소수민족 국가들이 연합한 것처럼 보이는 소련이 좀 더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소련으로 망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의 지도자들이 같은 투르크족들인 신장 위구르족의 독립운동을 두려워하고, 중국 정부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실망했다(그래서 일부는 다시 해외로 이주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레비야 카디르 같은 위구르족은 “마르크스주의”를 민족을 억압하는 사상으로 오해한다.
한편, 중국은 경제 위기에 따른 소수민족의 불만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중국이 소련과 달리 붕괴하지 않을 수 있었던 한 요인인 한족의 인구가 95퍼센트에서 90퍼센트로 감소하기까지 했다. 이는 소수민족 여성과 한족 남성이 결혼하는 경우, 그 자녀를 소수민족으로 간주하고, ‘한 자녀 정책’을 한족에게만 적용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등에서 오는 이민자를 수용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현재 홍콩에서 일어나고 있는 송환법 반대 운동이 중국 본토의 노동운동과 연관을 맺거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 등 소수민족 밀집 지역으로 퍼질까 봐 두려워한다. 홍콩은 수만 명이 모인 장소에서 “범죄자”를 쉽게 식별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는데 이것은 바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나 티베트 등에 적용됐다.
홍콩 시민들은 1989년 텐안먼 항쟁 때 중국 정부에 맞섰던 노동자·학생 시위대를 지지하고 티베트나 신장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의 독립운동을 지지한 전통이 있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거리가 먼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해서라도 홍콩 시민들의 저항을 억압하려 할 것이다.
비록 영국 식민 지배 경험이 없는 1990년대 홍콩 저항 운동 세대나 중국 정부의 탄압에 질린 일부 홍콩 시민들이 영국 깃발이나 옛 영국령 홍콩 깃발을 들고 나오는 등 사상적 혼란이 있을지라도, 나는 홍콩 시민들의 저항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중국 정부가 100만여 명의 사람들을 가둔 “재교육 시설”(강제수용소)에도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