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고대생은 친자본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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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세와 노동》이라는 잡지에는 김해인 씨가 기고한 “이건희의 명예박사학위 수여 반대 시위 각계의 반응과 계급성, 그리고 이데올로기 투쟁”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이 글의 필자는 이건희 시위를 바라보면서, “대학과 국가, 언론 등의 계급성과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대중들을 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대학과 국가, 언론 등의 본질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에는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시위를 둘러싼 많은 이들의 반응을 두고 “전반적[으로] 친자본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4만 명이나 참가한 한 유명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설문조사 결과는 40퍼센트나 되는 사람들이 우리 고대생들의 시위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마이뉴스〉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75퍼센트가 시위를 지지했다. 이건희 시위의 책임을 물어 우파 학생들이 발의한 총학생회 탄핵안에 대해서는, 포털 사이트 설문조사 결과 50퍼센트가 넘는 사람들이 탄핵안 발의는 “과도한 대응”이라고 답했다.
실제로, 삼성의 불법 세습과 노동 탄압 같은 횡포에 반감을 가진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이건희 시위에서 ‘통쾌함’을 느꼈다는 반응이 많았다. 특히 이 시위는 삼성의 노동 탄압에 신음하던 삼성 해고 노동자들이나 신세계 이마트 노동자들은 물론, 수많은 노동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시위 참가자 징계 반대 운동을 하던 중, 학내에서 만난 한 KT 노동자는 “이건희 같은 대단한 인물이 학생들에게 망신을 당하는 것을 보고 정말 시원했고 우리도 사장들과 싸워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고려대학교 학생들은 어땠을까? 김해인 씨는 고대생들이 전반적으로 시위에 부정적이었다며 그 근거 중 하나로 고려대 자유게시판의 한 글을 예시하고 있다. 그러나 고대 자유게시판과 총학 자유게시판은 원래 전통적으로, 이건희 시위 전부터 정치적으로 우파 성향이 강한 학생들이 ‘운동권’을 비난해 대는 공간이었다. 일례로 인터넷 자유게시판에는 총학생회 탄핵안을 지지하는 의견이 압도적이었지만, 실제로는 다수의 학생들이 탄핵안에 반대했다.
전문가까지 동원된 〈고대신문〉 설문조사에서도 54퍼센트의 학생들이 탄핵에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시위에 대한 동의 여부에서는 30퍼센트가 시위 학생들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특히 문과대의 경우, 50퍼센트가 넘게 시위에 대한 지지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다른 학내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건희 박사학위 수여에 찬성한 사람은 30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 한편, 총학 탄핵안 발의에 2300여명이 서명했지만, 징계 반대에 대해서는 첫날 하루 만에 1900여명, 최종적으로는 3000여명이 서명했다.
이런 점들을 근거로 볼 때, 비록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이 시위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대중이 전반적으로” 친자본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부정확한 것이다. 김해인 씨의 이런 평가는 오늘날 사람들의 의식 상태가 전반적으로 ‘우경화’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온전한 그림이 아니다.
진정한 모습은 오늘날 경제 위기가 부른 사회 양극화가 정치 양극화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또, 첨예한 사회 모순들이 여러 투쟁들을 불러오고, 이런 과정이 사람들의 급진화를 부추기고 있다. 일례로 ‘진보적’ 강령을 내세운 민주노동당은 창당한 지 5년 만에 의회 진출한 데다가 당원 수는 이미 6만 명을 넘어섰다. 열린우리당의 사이비 개혁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의 일부가 우경화되어 한나라당을 지지하기도 하지만, 또한 다른 일부는 민주노동당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고대〉라는 우파 학생 모임의 등장과 총학탄핵안 발의, 그리고 우리 시위 방어 캠페인에 대한 지지 등 이건희 시위를 두고 일어난 일련의 상황들은 오히려 이러한 양극화와 급진화를 가장 잘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