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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레닌과 21세기》(존 몰리뉴 지음, 이수현 옮김, 책갈피):
21세기에 레닌을 이해하는 길라잡이

《레닌과 21세기》 존 몰리뉴 지음 | 이수현 옮김 | 책갈피 | 2019년 | 472쪽 | 20,000원

몇 해 전 [100주년을 맞은] 1917년 러시아 혁명에 관한 논평이 쏟아지면서 해묵은 논쟁과 논란이 또다시 되살아났다. 러시아 혁명과 그 유산에 대한 해석은 사회 내에서 어느 정치적 입장에 서 있냐에 따라서뿐 아니라 좌파 사이에서도 제각기 달랐다.

이 시기를 다룰 때 레닌이야말로 단연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다. 레닌은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많이 오해받는 지도자이다. 냉전기에 레닌의 이름이 오용된 까닭에, 많은 사람들에게 레닌은 포악한 독재자이거나 훗날 스탈린 체제의 기틀을 닦은 사람이 돼 버렸다.

레닌을 그리 해석하는 사람들은 레닌의 저작과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해 자신들의 선전에 이용한다. 이 때문에 적잖은 좌파들도 레닌의 저작은 21세기에는 더는 적절하지 않다고 의심하게 됐다. 존 몰리뉴의 책 《레닌과 21세기》는 바로 그런 의심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 책에서 몰리뉴는 레닌에 대해 근본적으로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려 하기보다는, 레닌주의 정치가 오늘날 정치 지형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음을 증명하려 애쓴다. 몰리뉴는 각 장(章)에서 레닌주의의 핵심 원칙을 체계적으로 다루면서, 그런 원칙들에 대한 널리 알려진 비판과 잘못된 해석을 반박한다.

제국주의와 전쟁에 대한 레닌의 관점부터 레닌주의 정당 이론까지, 몰리뉴는 독자들에게 여러 논쟁을 소개한다. 그런 논쟁들은 복잡하고 흔히는 매우 세세하지만, 좌파에게는 함의가 큰 것이다. 이로써 몰리뉴는 레닌주의의 핵심 원칙들이 여전히 의미 있을 뿐 아니라 오늘날 혁명적 정치에 필수 요소임을 보여 주려 한다.

혁명

몰리뉴는 “도덕적으로 용납이 안 된다”는 오늘날 세계의 상태를 개괄하며 이 책을 시작한다. 불평등, 제국주의 갈등, 세계경제 불황, 목전에 닥친 기후 변화는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가 낳은 병증(症)이다. 레닌에게도 오늘날 우리에게도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사회주의가 목표이다. 이처럼 혁명적 변화는 레닌 사상의 출발점이다. 몰리뉴는 바로 이 점에서 레닌이 현재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레닌이 21세기에도 의미가 있는 이유는 러시아 혁명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21세기의 혁명이 노동자 혁명일 것이고 러시아 혁명이 노동자 혁명이었기 때문이다.”(36쪽)

그렇다면 혁명가들이 사회주의를 향한 투쟁에 적용해야 할 레닌주의 정치 원칙은 무엇일까?

노동계급

몰리뉴가 책에서 첫 번째로 검토하는 원칙은 오늘날 노동계급의 중요성이다.

레닌주의가 여전히 의미가 있다면 노동계급의 혁명적 잠재력 또한 중요 요소여야 한다. 노동계급의 힘에 대한 굳건한 확신은 레닌주의 정치의 토대이다.

물론 2019년의 세계 노동계급은 1917년의 노동계급과 무척 다르다. 그 수가 엄청나게 늘었는데, 몰리뉴는 “선진 자본주의 나라에서 [노동계급이] 인구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37쪽)고 추산한다. 그렇다면 왜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에서 노동자들이 갖는 중요성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마르크스주의 좌파들 사이에서 커지는 것일까?

몰리뉴는 오늘날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 세력들을 분해하고 누구에게 체제를 변혁할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잠재력”(44쪽)이 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그런 일탈을 반박한다. 레닌주의 원칙이 오늘날에도 의미 있는지를 판단하고자 몰리뉴가 사용한 이런 유물론적 분석이야말로 그의 주장의 강점이다.

정당

노동계급과 그 경제적 힘에 관한 이해를 바탕으로 몰리뉴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레닌주의자들은 어떻게 이 노동자 대중과 관계 맺을 것인가?’ 다시 말해, 레닌주의 정당은 오늘날에도 필요한가? 정당의 구실을 어떻게 볼 것이냐가 레닌의 정치 실천에 관한 논란에서 큰 요소임은 부인할 수 없다. 레닌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권위주의적 상명하복 식 정당, 논쟁이나 이견 제시의 여지라고는 없는 정당을 연상시키곤 한다.

몰리뉴는 볼셰비키 정당의 “민주주의적 중앙집중주의”에 대한 흔한 이견을 반박하며 볼셰비키당의 성격을 꼼꼼히 검토한다. 이를 다루는 4장(章)의 핵심은, 정당의 구실에 관한 레닌의 관점을 아우르는 두 가지 핵심 원칙이 있다는 것이다.

첫째 원칙은 간단히 말해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분명하게 헌신하는”(258쪽) 혁명가들의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원칙은 “혁명적 정당은 노동계급 대중의 일상적 투쟁에 참가해서 그들과 최대한 가까운 관계를 확립하는 바탕 위에서만 건설될 수 있다는 것이다.”(265쪽) 레닌이 보기에 이는 “노동계급 생활의 현실적·일상적 문제들과 우리[혁명적 정당]의 활동을 결합하는 것”(266쪽)을 통해 노동계급에 뿌리를 내리는 것을 뜻했다.

그러므로 레닌주의 정당은 노동계급과 그들의 사회 변혁 능력에 대한 헌신을 토대로 건설돼야 한다. 레닌주의 정당은 혁명가들이 노동자들과 선동·교육으로 이어진 상호관계를 맺는 수단이다.

《레닌과 21세기》는 레닌주의를 다루는 논자들이 흔히 빠지곤 하는 뜬구름 잡고 과거에 매몰되는 논쟁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혁명가들에게 레닌주의 이론이 던지는 실천적 의미에 천착한다.

국가

레닌의 이론적 성취는 100년의 세월에도 빛이 바래지 않은 듯하다. 특히, 레닌이 매우 구체적인 맥락에 맞춰 저술한 것으로 유명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말이다. 그러나 좌파 개혁주의가 다시 부상하는 지금, 레닌의 저술은 혁명가들이 선거주의의 유혹에 넘어가선 안 된다고 강력히 촉구한다.

《국가와 혁명》은 의심할 여지 없이 레닌의 가장 유명한 저작이다. 그리고 그럴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 《국가와 혁명》은 제2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주의 ‘수정’이 점점 심각해지던 시기에 국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이해를 재조명한 호소력 있는 정치 서적이다. 오늘날 상황은 당시와 비슷한 데가 있다. 급진좌파의 다수가 마르크스주의의 국가 분석을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보며 그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국가 분석은 차르 치하의 러시아에나 의미 있지 현대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레닌주의적 이해에서 벗어난 이 같은 일탈에 휩쓸린 좌파 정당들 ─ 영국의 제러미 코빈 대표 하 노동당과 그리스의 시리자가 그 사례들이다 ─ 이 커다란 지지를 얻고 심지어 집권까지 하는 오늘날, 이 논쟁은 매우 중요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사회주의 정치의 중대한 문제로 되돌아가게 된다.

몰리뉴는 국가에 대한 레닌주의 이론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이를 이용해 최근 유러코뮤니즘 정당들의 실패와 아나키즘의 한계를 규명한다. 요컨대, 레닌의 오명을 씻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과 의회의 한계에 대한 유물론적 이해를 복원하는 것이다.

당연히도 레닌이 1917년에 확립한 결론은 여전히 유효하다. “즉 기존 국가는 자본가계급의 계급 지배 기관이므로 노동계급이 그것을 그냥 ‘인수’할 수는 없고 오히려 분쇄해야 한다.”(249쪽) 다소 이해할 만한 [좌파] 개혁주의 열풍의 와중에,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정치적 결론을 유념해야 한다.

1920년 5월 5일 스베르들로프 광장에서 연설하는 레닌

오늘날의 레닌주의

《레닌과 21세기》는 그저 이론적 논쟁을 다룬 책이 아니다. 이 책은 한 명의 활동가로서 몰리뉴가 혁명적 좌파들에 행동을 촉구한 것이다. 몰리뉴는 레닌 개인이 아니라 레닌의 정치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는 레닌주의에 기반한 정치 프로젝트가 부흥하기를 바라서다. 이 책의 마지막 장(章)에서 몰리뉴는 오늘날의 사회주의자들이 레닌주의 정치를 21세기에 적용할 몇몇 구체적 방법들을 개괄하려 시도한다.

몰리뉴는 혁명적 정당들의 현주소를 냉철하게 살펴보며, 개중 다수는 “제도화한 종파주의”의 함정에 빠졌다고 인정한다. 레닌주의 정당을 자처하는 조직들도 “노동계급 지역사회와 관계 맺[는 와중에] … 정치적[으로] ‘오염’[되는 것]이 두려워서”(412쪽) 정치적 순수성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고립 상태는 의도한 것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쇠락의 결과다.

정치적 양극화의 시대이지만 좌파의 대다수가 좌파 개혁주의에 이끌리는 오늘날, 몰리뉴는 노동계급에 깊이 뿌리내릴 필요성을 환기한다. 몰리뉴는 혁명가들이 이를 위해 노동계급의 일상적 투쟁에 참여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대중이 정치적으로 전진하는 곳으로 가서 대중과 함께 투쟁하며 좌경화를 촉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쉽지 않은 과제이겠지만, 체제의 급진적 변혁을 향한 우리의 염원을 실제로 이루고자 한다면 꼭 필요한 시도다.

“기후변화에 대한 야만적 대응을 막기 위해서는, 레닌이 비할 바 없이 명확하게 알고 있었듯이 혁명적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고 제국주의를 물리치고 국가를 분쇄하고 노동자 국가를 수립해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이런 생각을 노동계급 사람들이 지금 있는 곳에서 그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419쪽)

레닌주의자들은 “노동계급 생활의 현실적·일상적 문제들”(266쪽)과 씨름할 태세가 돼 있어야 한다. 뒷짐지고 논평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이 서평은 지면 제약 때문에 차별, 제국주의, 스탈린주의 등 이 책의 다른 중요한 측면들은 다루지 못했다. 이 책은 혁명가들에게, 특히 초심자들에게 보물창고 같은 책이다. 레닌의 개성과 냉전 시기 흑색선전에 관한 시시비비를 넘어 레닌주의 정치가 발 딛고 있는 핵심 원칙을 재확립하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이 책은 오늘날 사회주의자들이 레닌주의 정치를 다시 고찰해야 한다는 실천적 호소다. 이는 레닌의 저작을 그저 되뇌라는 것이 아니다. 정치 환경이 당시와는 매우 다르기 때문에 헛된 일일 것이다. 노동계급과 진정 옳은 방법으로 관계 맺고자 하는 혁명 정당을 건설한다는 레닌주의의 기본 목표에서 출발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