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몰리뉴(1948~2022) 조사(弔詞):
혁명가이자 탁월한 마르크스주의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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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몰리뉴가 12월 10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갑작스럽게 타계했다는 소식에 세계 곳곳의 사회주의자들이 충격을 받고 슬퍼했다. 향년 74세였다.
존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체제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학생과 청년 노동자 세대에 속한 가장 중요한 마르크스주의 저술가·활동가 중 한 명이었다.
1968년 존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전신인 ‘국제사회주의자들(IS)’에 가입했다. 당시 사우샘프턴대학교 학생이던 존은 ‘베트남연대운동(VSC)’에 참여하고 프랑스의 1968년 5월 반란 당시 파리를 방문한 경험을 통해 급진화했다. 존을 IS에 가입시킨 사람은 IS의 창립자 토니 클리프였다.
존은 이후 평생 동안 헌신적인 혁명적 사회주의자로 지냈다. 처음에는 SWP에서 활동하다가 이후 SWP의 아일랜드 자매 단체 ─ 지금의 사회주의노동자네트워크(SWN) ─ 에서 활동했다. 존은 포츠머스폴리테크닉(훗날의 포츠머스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존의 영향으로 많은 학생들이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로 이끌렸다. 존은 굳건한 활동가였고, 아일랜드로 이주하기 전까지 활동했던 SWP 포츠머스 지회의 기둥이었다.
그러나 존의 가장 중요한 기여는 저술 활동이었다. 존은 편집 과정에서 클리프의 도움을 누리며 1978년에 첫 저작 《마르크스주의와 정당》[국역 책갈피]을 출판했다. 당시는 국제적으로 혁명가들이 혼란과 논쟁에 휩싸인 시기였는데, 존은 이 책으로 사회주의 조직이라는 핵심 문제를 굉장히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줬다.
존은 〈소셜리스트 워커〉에 여러 해 동안 정기적으로 기고한 주간 칼럼에서도 그러한 명료함과 해박함을 보여 줬다. 마감 시간을 칼같이 지켜서 손글씨로 또박또박 써서 보낸 존의 칼럼은 당시의 쟁점과 논쟁에서 마르크스주의 전통이 유효하다는 것을 밝히 보여 줬다. 그 글들 중 몇몇은 소책자로 엮여서 출판되거나 단행본에 수록됐다.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국역: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 책갈피]는 존의 저술 중 가장 영향력 있는 것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책은 1983년에 발표된 후에도 소책자나 온라인 글의 형태로 널리 재발행되고 번역됐다. 거기에서 존은 마르크스·엥겔스·레닌·트로츠키·룩셈부르크·그람시의 고전적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와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이라는 사회주의 개념을 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왜곡과 오염에서 건져 내고자 했다.
그러나 존은 정설을 명료하게 해설하는 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존은 1983년에 쓴 《레온 트로츠키의 혁명적 이론》에서 트로츠키를 자신의 위대한 영웅으로 묘사하면서도 그의 이론적·정치적 약점이라고 여긴 것들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활동가로서도 존은 결코 맹목적이거나 기계적이지 않았다. 존은 SWP 지도부가 영국과 국제 상황이 변하는 가운데 당을 건설하기 위해 채택한 노선들에 대개 동의했다.
하지만 존은 지도부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여기면 이를 거리낌 없이 비판하고 도전하기도 했다. 특히, 당내 논쟁 문제에서 그랬다.
그러나 SWP가 출범에 일조했던 급진 좌파 결집체 리스펙트가 2007~2008년에 위기에 빠지자, 존은 앞장서서 SWP를 방어했다. 존은 이 문제가 계급 문제라고 주장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존의 마르크스주의는 폭이 넓어지고 창의성이 더해졌다. 존은 예술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에 갈수록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는 그림에 대한 평생에 걸친 사랑에서 자양분을 얻었던 것이다. 2020년에 쓴 《예술의 변증법》에서 존은 예술이란 “형식과 내용의 융합이나 통합을 특징으로 하는, 소외되지 않은 인간 노동의 산물”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존은 역사적 맥락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 세심한 안목으로 렘브란트 등의 개별 예술가들을 탁월하게 다뤘다.
이 분야에서도 존이 늘 그랬던 것처럼 이론과 실천은 결합돼 있었다. 1992년부터 포츠머스대학교 예술·디자인 학부 교수를 지낸 존은 학생들이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데에 영감을 줬다. 2007~2010년에 존은 연례 ‘맑시즘 페스티벌’[SWP가 주최하는 연례 포럼]에서 ‘레프트 인 비전’이라는 미술 전시회를 조직했다.
2010년 교수직에서 은퇴한 존은 파트너 메리 스미스와 함께하기 위해 아일랜드로 이주했다. 존은 더블린에서 정치 활동에 투신해, SWN 지도부의 일원이 됐다. 존이 함께한 SWN 지도부는 대성공을 거둔 연대체 ‘이윤보다 인간을’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
존은 늘 분주했다. 존은 SWN의 이론지 《아이리시 마르크시스트 리뷰》의 편집자이자 국제사회주의경향 조정 회의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존이 가장 많은 노력을 쏟은 일은 가속되는 자본주의의 자연 파괴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을 벼리는 것이었다.
존과 나 모두 동의했던 것은, 기후 변화가 인류의 최대 위협인 동시에 혁명의 가장 중요한 촉매라는 것이었다. 존의 이러한 관심은 2022년에 출판된 그의 마지막 책 《사회주의와 혁명에 관한 선집》에 반영돼 있다. 존은 세계생태사회주의네트워크(GEN)를 설립해, 기후 변화라는 실재적 위기에 대한 반자본주의자들의 대응을 서로 연결짓고 강화하려 했다.
내가 존과 함께 보낸 시간 중 가장 한가로웠던 때는 2009년에 브라질 니테로이 시(市)에서 열린 한 회의에 함께 참가했을 때였다. 존은 당시 회의 장소에서 좁은 바다를 건너가면 있는 리우데자네이루에 묵고 있었다. 리우데자네이루로 빙 둘러 가는 길은 쉽지 않았고 존은 먼 거리를 오가야 했다. 그럼에도 존은 늘 활력이 넘쳤고, 질문과 주장이 끊이지 않았으며, 호기심과 동지애가 가득했다. 존은 한 브라질 학생을 친구로 사귀어서, 그 학생 가족이 사는 파벨라[브라질 빈민가]에 초대받기도 했다.
마르크스가 좌우명으로 차용한 경구, “인간에 관한 일은 어떤 것도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말은 정말이지 존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마르지 않던 활동의 샘물이 이제 더는 솟지 않게 됐다.
존의 파트너 메리와 존의 가족들, 특히 존의 자녀 사라와 잭, 존의 손주들과 증손주들, 그리고 아일랜드와 영국과 세계 곳곳에 있는 존의 동지와 친구들에게 애도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