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몰리뉴 (1948~2022) 조사 (弔詞) :
혁명가이자 탁월한 마르크스주의 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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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몰리뉴가 12월 10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갑작스럽게 타계했다는 소식에 세계 곳곳의 사회주의자들이 충격을 받고 슬퍼했다. 향년 74세였다.
존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체제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학생과 청년 노동자 세대에 속한 가장 중요한 마르크스주의 저술가·활동가 중 한 명이었다.
1968년 존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존은 이후 평생 동안 헌신적인 혁명적 사회주의자로 지냈다. 처음에는 SWP에서 활동하다가 이후 SWP의 아일랜드 자매 단체 ─ 지금의 사회주의노동자네트워크
그러나 존의 가장 중요한 기여는 저술 활동이었다. 존은 편집 과정에서 클리프의 도움을 누리며 1978년에 첫 저작 《마르크스주의와 정당》
존은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무엇인가?’
그러나 존은 정설을 명료하게 해설하는 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존은 1983년에 쓴 《레온 트로츠키의 혁명적 이론》에서 트로츠키를 자신의 위대한 영웅으로 묘사하면서도 그의 이론적·정치적 약점이라고 여긴 것들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활동가로서도 존은 결코 맹목적이거나 기계적이지 않았다. 존은 SWP 지도부가 영국과 국제 상황이 변하는 가운데 당을 건설하기 위해 채택한 노선들에 대개 동의했다.
하지만 존은 지도부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여기면 이를 거리낌 없이 비판하고 도전하기도 했다. 특히, 당내 논쟁 문제에서 그랬다.
그러나 SWP가 출범에 일조했던 급진 좌파 결집체 리스펙트가 2007~2008년에 위기에 빠지자, 존은 앞장서서 SWP를 방어했다. 존은 이 문제가 계급 문제라고 주장했다.
세월이 흐를수록 존의 마르크스주의는 폭이 넓어지고 창의성이 더해졌다. 존은 예술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에 갈수록 많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이는 그림에 대한 평생에 걸친 사랑에서 자양분을 얻었던 것이다. 2020년에 쓴 《예술의 변증법》에서 존은 예술이란 “형식과 내용의 융합이나 통합을 특징으로 하는, 소외되지 않은 인간 노동의 산물”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존은 역사적 맥락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 세심한 안목으로 렘브란트 등의 개별 예술가들을 탁월하게 다뤘다.
이 분야에서도 존이 늘 그랬던 것처럼 이론과 실천은 결합돼 있었다. 1992년부터 포츠머스대학교 예술·디자인 학부 교수를 지낸 존은 학생들이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데에 영감을 줬다. 2007~2010년에 존은 연례 ‘맑시즘 페스티벌’
2010년 교수직에서 은퇴한 존은 파트너 메리 스미스와 함께하기 위해 아일랜드로 이주했다. 존은 더블린에서 정치 활동에 투신해, SWN 지도부의 일원이 됐다. 존이 함께한 SWN 지도부는 대성공을 거둔 연대체 ‘이윤보다 인간을’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
존은 늘 분주했다. 존은 SWN의 이론지 《아이리시 마르크시스트 리뷰》의 편집자이자 국제사회주의경향 조정 회의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존이 가장 많은 노력을 쏟은 일은 가속되는 자본주의의 자연 파괴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을 벼리는 것이었다.
존과 나 모두 동의했던 것은, 기후 변화가 인류의 최대 위협인 동시에 혁명의 가장 중요한 촉매라는 것이었다. 존의 이러한 관심은 2022년에 출판된 그의 마지막 책 《사회주의와 혁명에 관한 선집》에 반영돼 있다. 존은 세계생태사회주의네트워크
내가 존과 함께 보낸 시간 중 가장 한가로웠던 때는 2009년에 브라질 니테로이 시
마르크스가 좌우명으로 차용한 경구, “인간에 관한 일은 어떤 것도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말은 정말이지 존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마르지 않던 활동의 샘물이 이제 더는 솟지 않게 됐다.
존의 파트너 메리와 존의 가족들, 특히 존의 자녀 사라와 잭, 존의 손주들과 증손주들, 그리고 아일랜드와 영국과 세계 곳곳에 있는 존의 동지와 친구들에게 애도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