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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 노동자 파업:
“10년 동안 물가 올랐는데도 운임은 떨어지고 있습니다”

8월 31일 ‘제대로 된 안전운임제 실시’ 촉구 화물 노동자 결의대회 ⓒ장한빛

10월 18일 전국의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하루 파업을 하고 정부에 ‘제대로 된 안전운임제 실시’를 다시금 촉구한다.

안전운임제는 운임(임금)의 하한선을 정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처벌하는 제도이다. 화물 노동자들의 적정운송료를 정부가 강제하도록 하는 제도로, 2002년 화물연대 출범 이래 줄곧 노동자들의 주요 요구로 제기돼 왔다.

2018년 3월 국회에서 ‘안전운임제’가 포함된 법이 통과됐지만, 애초 노동자들의 요구에서 크게 후퇴한 내용이었다. ‘안전운임’이 전 차종, 전 품목에 도입되지 않고, 컨테이너 수출입 차량과 시멘트 운반차량(전체 40만 화물차량의 10퍼센트에도 못 미친다)에만 적용됐다. 다른 부문은 운임 산정 시 ‘참조’(즉 강제력이 없는) 사항인 ‘안전운송원가’만 공표한다. 그조차도 2020년부터 2022년 12월까지 3년간 시행 후 지속·확대 여부를 검토하는 ‘일몰제’다.

화물 노동자들이 적정임금 보장을 요구해 온 이유는 지입제, 다단계 구조의 폐해가 고스란히 노동자들의 고통으로 떠넘겨져 왔기 때문이다.

화물연대 김근영 인천지부장이 전하는 현실은 이렇다. “운송업체가 국토부에 보고하는 타리프(TARIFF, 구간별 컨테이너 육송운임표)상으로는 인천과 부산을 왕복하면 135만 원 정도의 운임을 받아야 하는데, 실제 받는 운임은 90만 원 정도입니다. 운수업체가 화주에게 10~40퍼센트를 할인해 주고, 우리 월매출의 10퍼센트 정도를 떼어갑니다.”

운임표상 운임의 66퍼센트 정도만 화물 노동자의 손에 쥐어지는 셈인데, 심지어 50퍼센트밖에 못 받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한 화물 노동자는 안전운임을 제대로 책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렇게 말한다. “10년 동안 차량 가격, 부품, 생활물가 모두 올랐는데, 운임은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떨어지고 있어요. 매달 수백만 원의 장기할부금도 내야 하니 한탕이라도 더 뛰려고 차 안에서 쪽잠 자면서 버티는 거죠.”

기대를 저버리고 있는 문재인 정부

국토교통부가 구성한 안전운임위원회는 내년에 적용할 안전운임과 안전운송원가를 10월 말까지 발표할 예정이다. 18일 하루 파업은 이를 앞두고 안전운임을 제대로 결정하라고 요구하는 행동이다.

현재 안전운임위원회의 논의는 노동자들의 기대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화주와 운수사업자들은 마땅히 포함돼야 할 보험료, 출퇴근비, 숙박비 등을 빼 어떻게든 운임을 낮추려고 혈안이 돼 있다.

김근영 지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전에 4000만~5000만 원 하던 차값이 지금은 보통 2억 원이 넘어요. 한 번 사고 나면 4000만~5000만 원은 기본으로 나가죠. 그런데 운송업체들은 노동자들이 민간자차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훼방을 놓아요. 수리비를 주거나 자차보험에 가입하게 해달라는 건데 그것도 거부하니 사고 나면 우리만 죽어나는 거죠.”

“화물차를 집앞 골목에 주차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지정된 주기장에 세우고 출퇴근해야 하는데, 그 교통비로 월 10만 원 책정한 것도 못 주겠다는 겁니다.”

“안전을 생각하면 편도 300킬로미터가 넘어가면 숙박을 하고 다음 날 운행을 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인천과 부산을 왕복하는 경우, 꼬박 18~19시간을 일하고 공장 앞에 차 대놓고 몇 시간 쪽잠 자면서 일하고 있어요.”

설상가상으로 화주와 운수업체들은 운송에 필요한 각종 비용 외에 인건비(임금)를 별도로 책정할 수 없다고 버틴다. 참으로 도둑놈 심보다.

심지어 사용자들은 벌써부터 안전운임제 시행을 무력화할 방안을 찾고 있다. 안전운임제로 운임이 오르면 화물 노동자에게 지급하던 유가보조금을 폐지하고 그 재정을 화주나 운송업체에 지원해야 한다는 조삼모사식 주장이 나오고 있다. 기존에 화주들이 유가보조금만큼 운임을 낮춰 온 상황에서 월 100만 원 수준의 유가보조금이 폐지되면 안전운임을 통한 운송료 인상은 헛일이 된다.

안전운임제 도입을 추진한 문재인 정부에 걸었던 한 가닥 기대도 배신으로 돌아오고 있다. 정부는 화물 노동자가 하루 13시간, 월 9000킬로미터 이상을 운행해야만 ‘적정소득’을 보장해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하루 8~9시간 일해도 적정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정부 안대로라면 안전운임제를 통해 ‘화물 노동자에게는 권리를, 국민에게는 안전을’ 도모한다는 애초 취지가 무색해질 뿐 아니라, 경기 악화로 물동량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화물 노동자들이 ‘적정소득’을 보장받기가 요원해진다. 게다가 문재인의 대선 공약이었던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보장도 ILO 핵심협약 비준 논의에서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이처럼 사용자들과 정부가 이런 개악안들을 내놓고 있어 안전운임위원회에 대한 노동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게다가 안전운임위원회 구성도 노동자들에게 불리하다. 화주와 운수업체가 각각 3인, 공익위원이 4인을 차지하고 화물연대의 몫은 고작 3인이다.

일각에서는 ‘제도의 안착’을 위해 어느 정도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일단 받아들이고 내년을 기약하자는 의견이 있는 듯하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 않냐는 것이다.

그러나 사용자측과 정부가 온갖 개악안으로 안전운임을 누더기로 만들지 못하게 하려면, 화물 노동자들이 강력한 힘을 보여 줘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안전운임제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