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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철군에서 드러난 미국의 곤혹스런 처지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시리아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터키의 시리아 침공에 청신호를 준 것이 미국 권력층 전반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양대 정당인 민주당과 공화당은 함께 트럼프를 비난하며 터키 제재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공화당 내 친(親)트럼프계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조차 트럼프를 비난하고 나섰다.

이에 압력을 받았는지 트럼프는 터키에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제재는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미국 권력층은 이전에도 시리아 철군 문제로 심각하게 다툰 바 있다. 지난해에는 트럼프가 갑자기 시리아 철군을 발표한 것에 항의해 제임스 매티스가 국방장관에서 사퇴했다.

주류 정치권·언론 전반이 트럼프에게 비난을 퍼붓고 있기 때문에, 시리아 철군을 강행해 동맹인 쿠르드인들을 터키에게 넘긴 트럼프의 결정이 단지 그의 유별난 개성이나 ‘미국 우선’ 노선 때문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집권했더라도 트럼프와 다른 선택을 할 여지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시리아 철군을 둘러싼 갈등은 미국이 중동에서 처한 곤혹스러운 처지를 반영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 때부터 중국이라는 더 큰 위협에 집중하기 위해 중동 개입을 줄이려 해 왔다.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도 이를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해외 전쟁에 대한 오바마와 트럼프의 차이는 대체로 스타일 문제다. 본질적으로 트럼프는 오바마의 연장선상에 있다.”

물론 미국은 중동을 아예 포기할 수 없다. 중동은 그 자체로 세계 패권 유지에 중요한 곳이다.

트럼프의 중동 정책도 미국의 이런 처지를 반영한 것이다. 한편으로 트럼프는 중동에서 군사 개입을 줄이겠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란의 영향력이 커질 것을 우려해 사우디아라비아·이스라엘 같은 기존 동맹국들과 관계를 다지고 이란을 강하게 압박했다. 이런 정책은 결과적으로 중동의 긴장을 악화시켜 중동에서 군사력을 철수하기 더 어렵게 만들었다.

시리아 철군으로 미국은 중동에 개입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현재 터키의 군사 작전이 보여 주듯 그 공백을 주변의 여러 강국들과 다른 제국주의 열강이 메우려 할 것이다. 그에 따라 상황은 더 불안정해질 것이다. 특히 미국 지배자들은 이란과 러시아의 영향력 강화를 우려한다.

그럼에도 트럼프가 철군을 강행한 것은 미국 제국주의가 직면한 힘의 한계를 고려한 것일 테다.

트럼프가 터키의 시리아 침공에 직면해 맞닥뜨린 모순은 오바마가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ISIS, 이하 아이시스)’를 격퇴하는 과정에서 마련된 것이기도 하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실패 이후 직접적 군사 개입을 꺼리게 된 미국은, 아이시스가 부상했을 때 이에 대처하기 위해 동맹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모든 주변 국가들은 저마다 우선순위가 달랐고 아이시스를 가장 큰 문제로 여기지도 않았다. 예컨대 터키는 쿠르드인들을 더 큰 문제로 봤고,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아이시스를 어느 정도 용인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아이시스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미국은 결국 쿠르드인에게 손을 내밀어야 했다.

이는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터키의 반발을 샀다. 그리고 터키가 쿠르드인들을 억누르고 국내 경제적·정치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시리아 침공을 강행하려 하자, 트럼프는 선택을 해야 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트럼프는 터키가 “선을 넘으면” 터키 경제를 “없애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말이다.

이처럼 트럼프의 시리아 철군과 이를 둘러싼 갈등은 미국의 상대적 약화라는 더 큰 현상의 일부일 뿐이다. 패권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 지역 강국들의 경쟁과 갈등은 더 심각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동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난민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