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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헌고 사태:
우파의 ‘침소봉대’에 맞서 학교와 교사를 방어해야 한다

서울 관악구 소재의 인헌고등학교에서 ‘사상독재가 벌어지고 있다’, ‘학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우파 언론들에서 제기되고 있다.

11월 12일 자유한국당 대표 황교안도 인헌고를 들먹이며 “전교조의 횡포에 교육현장이 이념과 정치에 물들었다”고 비난하고, 교원이 ‘정치 편향’ 교육을 하면 처벌하는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나섰다.

이번 인헌고 사건은 10월 23일 인헌고등학교학생수호연합(이하 학수연)의 두 학생(대표와 대변인)이 “학생은 정치적 노리개가 아니다” 하고 기자회견을 하면서 시작됐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보수 단체 회원들과 보수 유튜버들이 참여해 학교 앞은 흡사 보수 단체 집회장을 방불케 했다.

학수연은 지난 10월 17일 진행된 교내 마라톤 대회에서 학교 측이 반일 구호를 강제로 외치게 했다고 주장한다. 일부 교사가 수업 시간에 편향된 주장을 하며, 학생에게 “너 일베냐?” 하고 모욕했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학교 측과 학생 대다수의 입장은 학수연과 정반대이다.

인헌고는 매년 주제가 있는 마라톤 대회를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평화’를, 올해는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나라 사랑’을 주제로 실시했다. 학급별로 선언문을 작성했고 대회 당일에는 자신이 만든 선언문 띠의 구호를 외치는 활동을 했다.

당시 담당 교사는 방법을 안내하고자 학생들이 작성한 선언문 중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축하한다” 등의 구호를 선창했고 학생들이 마지막 4음절을 제창했다고 한다. 이어서 각반에서 자발적으로 나온 학생들이 자신이 만든 선언문을 돌아가며 낭독했다. 선창과 제창은 학수연의 ‘반일 구호 강제’ 주장과 다르게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자유롭게 호응하는 학생도 있었고 호응하지 않는 학생도 있었다.

조국 사태와 관련해 “가짜뉴스를 믿으면 안 된다”고 한 교사의 발언에 대해 학수연은 현 정권에 대한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강요라고 했다. 그러나 〈한겨레〉의 보도를 보면, 다른 학생은 해당 발언이 “미디어 비평 수업 중 나온 말로 언론에서 하는 말을 비평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라고 지적했다. “너 일베냐?”라는 발언도 조롱이 아닌 질문이었다고 하며, 관련 교사는 이에 대해 이미 해당 학생뿐 아니라 다음 날 그 학급 전체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10월 23일 진행된 서울시교육청의 사실확인 설문조사 결과로도 학수연 측의 주장은 왜곡·과장임이 드러났다. 전체 566명 중 약 3.5퍼센트인 20명 정도만이 마라톤 대회에서 사용한 ‘선언문 제작 활동 시 본인의 생각과 다르게 제작하도록 교사의 강요를 받았나요?’라는 질문에 “예”라고 답했다.

10월 24일에는 학수연의 주장이 왜곡·과장됐다며 인헌고학생가온연합(학가연)이 만들어졌고, 10월 29일에는 학생 전체 토론회가 열렸다. 〈오마이뉴스〉의 보도를 보면, 토론회에 참가한 학생 대부분은 학수연과 보수 언론 등에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인헌고 학생들의 토론회 의견판 ⓒ출처 인헌고등학교

이번 인헌고 사태는 올해 3월 초, 인헌고 3학년 학생 2명(이 중 한 명이 학수연 대변인 최모 학생이다)이 자율동아리 ‘왈리’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이 학생들은 자율동아리 인정을 받기 위해 사회과 교사에게 지도교사를 해 달라고 요청했고, 교사는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수락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후 해당 교사는 왈리의 활동 일지를 보며 성 차별적 요소와 소수자 혐오가 있음을 발견하고, 왈리의 목적에 동의하지 않으니 지도교사 수락을 철회하겠다고 알렸다. 이 때문에 동아리가 폐쇄되자, 왈리 대표는 ‘학교로부터 자율동아리 활동을 강탈당했다’며 ‘학교가 페미니즘 사상을 강요한다’는 입장문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후 보수 단체들이 ‘사상독재’라며 인헌고 비판 집회를 열었고 보수 언론사의 전화가 쇄도했다.

인헌고 왈리는 전국연합성평화동아리(전국왈리)의 인헌고 지부 격인 모임인데, 전국왈리는 2018년 9월 반(反)페미 세력과 비페미 세력이 통합해 만든 ‘한국성평화연대’의 중고등학교·대학교 동아리다. 이들은 양성평등을 ‘모두가 같아지라고 하는 공산주의’라며 거부하고,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강조하면서 남녀 차별을 정당화한다. 왈리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은 ‘성 차이’를 인정하는 “성평화”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여성 차별의 존재를 부정하며 여성에 대한 편견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교사의 정치적 중립?

학교 측과 학생회는 이 문제를 학교 구성원들의 토론을 통해 해결할 테니 외부 단체의 개입 중단을 요청했다. 우파 측이 학교 앞 집회까지 하며 소란을 피는 상황을 우려한 요청이었다.

그러나 외부단체 개입 중단이라는 학교 측의 대응은 우파가 아닌 진보 측의 개입만 위축시키고 있다. 보수 언론과 보수 단체들의 막무가내 식 개입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인헌고 학생들이 10월 22일 서울시교육청에 특별감사 요구 청원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오마이뉴스〉 보도를 보면, 이 청원은 우익 단체인 자유법치센터, 자유대한호국단, 턴라이트 대표들이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학수연에 외부 보수 단체들이 개입됐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0월 30일에는 국회 교육위 소속 한국당 의원들이 서울시교육청을 찾아 인헌고 사태에 조속히 대처하라고 요구했고, 10월 31일 보수 교원단체인 교총은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강조하며 관련자를 엄중히 문책할 것을 요구했다. 우파 단체들은 교장과 교사를 검찰에 고발했을 뿐 아니라 11월 7일에는 인헌고 학생까지 검찰에 고발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학교 앞 집회를 하는 것에 비판이 일자 보수 단체들은 현재 집회는 멈춘 상태이다. 그러나 수능 다음 날인 11월 15일에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는 등 우파들은 이번 일을 진보 교사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자신들의 정치적 목소리를 키우는 데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학수연과 우파 단체들은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강조한다. 법을 들먹이며 정치적 주장을 하는 교사를 처벌하라고 외친다.

그러나 학수연과 우파들의 행동 자체가 이미 정치적이다. 박근혜 정부 때 한국사국정화교과서 반대 교사 시국선언이 탄압받은 데서 보듯,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유지에 이용돼 왔다.

최근 학교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의 일환으로 논쟁적 사안을 다루는 다양한 수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교사가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학생들과 논쟁하고 토론하는 것 역시 민주시민교육이다. 교사의 정치적 의견 피력은 토론과 논쟁의 대상이지 처벌받아야 할 것이 아니다. 앞서 봤듯이, 지금 공격받고 있는 인헌고 교사들이 자신의 생각을 학생들에게 강요한 것도 아니다.

우익 단체에 의해 고발된 김모 교사는 2015년 탈핵운동 행사에 학생과 함께 참가한 일로도 공격받고 있다. 탈핵운동에 대해 동의하는 학생들이 행사에 참가하고 봉사점수를 받은 것이 왜 문제인가? ‘침소봉대’하는 우파들의 특기가 인헌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우파들은 진보적 교사의 입에 재갈을 물리며, 특히 전교조를 공격하고자 이 사건을 이용하고 있다. 진보·좌파는 이런 우파적 공격에 맞서 고발된 인헌고 교장과 교사, 학생을 방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