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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안전 대책과 인력 충원을 요구하며 싸우는 여성 노동자들

서울 도시가스 안전점검 여성 노동자들이(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소속) 사측과 서울시에 안전대책 마련·실적제도 폐지·정년연장 등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도시가스 공급 사업은 지자체의 허가를 받은 민간 기업이 운영하고, 안전점검 등의 업무는 고객센터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외주화돼 있다. 도시가스 요금과 운영 방안은 지자체가 결정한다.

서울의 5개 도시가스 공급사 고객센터에서 일하는 점검원은 1029명이다(전국적으로는 34개 공급사에 3660명). 서울도시가스와 예스코의 고객센터에 고용된 노동자들 일부가 2016년 하반기부터 노동조합을 만들고 처우 개선을 위해 투쟁을 전개해 왔다.

이 노동자들은 가스 사고를 예방하는 필수 공공서비스를 담당한다. 그러나 외주화로 노동조건이 매우 열악하다. 온갖 천대를 받고 높은 노동강도에 시달리며 고통받고 있다.

2인1조

점검원 대부분은 40~50대 여성들이다. 이들은 성폭력·성희롱·폭행·폭언에 시달려 왔다.

점검 차 고객 집을 방문했을 때, 고의로 밀착해 몸을 만지는 사람이 있고, 옷을 벗고 있거나 야한 동영상을 크게 틀어 놓고 점검원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다. 여성 노동자들은 모멸감에 극심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지난해 원룸에서 감금과 성추행 위기를 겪다 탈출했던 한 울산 가스 안전점검원이 자살을 시도한 일마저 일어났다. 당시 울산 공공운수노조 울산 경동도시가스고객센터분회 노동자들은 안전 대책으로 2인1조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울산 도시가스 점검원 노동자 파업’ 〈노동자 연대〉 288호 기사).

공공운수노조 서울도시가스분회와 예스코도시가스분회의 노동자들도 사측과 서울시에 실효성 있는 안전대책을 촉구해 왔다.

1월 21일 서울 시청 앞 기자회견 서울 도시가스 안전점검 노동자들이 처우 개선을 위해 투쟁하고 있다 ⓒ출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김윤숙 서울도시가스 분회장은 2인1조가 꼭 필요하다며 서울시의 미흡한 안전 대책을 질타했다.

“서울시는 특별관리세대 관리방안을 제시했어요. 이건 전에도 있던 제도에요. 문제가 심각한 곳은 남성 직원을 보내는데 그런 곳은 아주 소수에요. 그래서 효과가 별로 없죠. 더 문제인 것은 특별관리세대가 어디인지 우리에게는 안 알려줘요. 검침하다가 그곳에 갈 수도 있는데 이게 무슨 안전 대책이에요?”

공순옥 서울도시가스 전 분회장은 제대로 된 2인1조를 강조했다.

“서울시는 ‘탄력적 2인1조’를 제시하는데, 의미가 없어요. 2명이 각각 맡고 있는 세대수를 합쳐서 알아서 필요할 때 2명이 방문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검침원 1인당 맡은 세대가 엄청 많아요. 고객센터에서 점검 실적 올리라고 무진장 쪼아대는데 어떻게 2명이 시간 맞춰 갑니까?”

숨막히는 실적 제도

안전 보장뿐 아니라 심각한 노동강도를 줄이기 위해서도 인력 충원이 절실하다.

점검원 1인당 약 4000~5000세대를 맡아 매월 계량기 검침, 고지서 송달 업무를 하고 1년에 1~2회 안전점검을 해야 한다.

각종 장비와 고지서를 짊어지고 도보로 매일 2~3만 보를 걸어야 한다. 폭염·한파·미세먼지가 심각해도, 늦은 밤이나 명절에도, 심지어 전염병이 번지고 있어도 할당량을 채우려면 일을 해야 한다.

얼마 전 한 점검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집을 방문해 문제가 됐다. 정부가 다급하게 2주간 점검 중지 명령을 내렸다. 그럼에도 “살인적인 실적 제도” 때문에 일을 멈추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많다.

도시가스 공급사는 점검 완료 실적에 따라 고객센터에 돈을 지급한다. 예를 들어 서울도시가스 고객센터는 점검 완료가 95퍼센트에 미달하면 재계약 평가에 반영하거나 지급수수료 차등지급 등의 패널티가 부과된다.

노동자들은 고객센터가 강요하는 실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위험을 감수하고 공짜 노동을 밥 먹듯 하지만 초과수당을 한 푼도 받지 못한다. 사측은 노동시간을 측정할 수 없다며 그냥 주 40시간으로 간주해 버린다.

노동자들이 할당량을 완료하지 못하면 임금을 삭감당하기도 했다. 어떤 고객센터는 매월 1200건의 점검 할당량 중 97퍼센트를 완료하지 못하면 1퍼센트 당 5만 원을 삭감하기도 했다. 점검 완료 건당 임금을 지급하니 빈집이 많을 경우 실적을 올리지 못해 노동자들은 최저임금도 못한 월급을 손에 쥐곤 한다.

2016~2017년에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파업 등의 투쟁을 벌인 덕분에 서울지역 고객센터는 2018년부터 점검 완료 건당 임금 지급 방식을 폐지했다. 또한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서울시의 생활임금 기준으로 임금을 인상시켜 총괄임금제를 쟁취했다.

인력 충원

하지만 고객센터의 실적 압박과 혹독한 노동강도는 여전하다.

김윤숙 서울도시가스 분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1인당 담당 세대수를 줄여야만 하는데, 인력 충원이 돼야 가능해요. 그런데 사측은 돈이 없다고 나 몰라라 하고, 서울시는 자기 소관이 아니라며 서로 떠넘기고 있어요.”

그러나 도시가스 공급사들이 돈이 없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사측은 오랫동안 노동자들을 혹독하게 쥐어짜며 어마어마한 이윤을 끌어 모았다.

2018년 전국 주요 20개 도시가스 공급사의 순이익만 3518억원에 달했다. 2인1조 도입에 필요한 3000명을 고용하고도 돈이 많이 남는다.

자본가들은 유가 하락으로 영업이익이 감소했다고 죽는 시늉을 하지만, 노동자들의 고혈을 뽑아 얻은 이윤으로 수백억 원의 배당 잔치를 벌였다. 서울도시가스 오너 일가가 지난 4년간 챙긴 주식 배당금만 107억 원이다.

그럼에도 원청인 도시가스 공급사들은 도시가스 요금 인상 운운하며 인력충원 요구를 외면하고, 서울시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얼마 전 서울시는 ‘원격 검침, 스마트 계량기 시범 운영, 전자고지서 확대 및 우편송달로 변경’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공순옥 서울도시가스 전 분회장은 턱없이 미흡한 방안이라고 일갈했다.

“안전점검은 자동화로 다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저는 측정기가 감지 못한 가스 누출을 냄새로 파악해서 사고를 예방한 적도 있어요. 자동화 기계를 설치한다 해도 엄청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들어요. 차라리 그 돈으로 인력을 충원하는 게 훨씬 낫죠.”

따라서 도시가스 요금과 운영권을 가진 서울시가 적극 나서야 한다. 서울시가 실적 제도 폐지와 인력 충원을 강제해야 한다. 또한 정년을 현재 60세 보다 더 연장하라는 노동자들의 요구도 수용해야 한다. 대다수가 육아로 일을 중단했다가 재취업한 중년 여성들임을 감안해야 한다.

직접고용

김윤숙 서울도시가스 분회장은 근본적 대안으로 직접고용을 주장한다.

“사측은 우리를 소모품 취급하고 아줌마들이라고 무시해요. ‘자동화되면 다 없어질 것들’이라고 모멸감을 주고 툭하면 그만두라고 협박하죠. 그런데 저희는 가스 사고를 막는 중요한 업무를 담당해요. 따라서 서울시가 고용을 책임지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도시가스 안전점검 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에는 민간위탁·외주화의 병폐와 간접고용과 여성 차별 문제가 켜켜이 쌓여 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해야 한다. 또한 공공재인 도시가스 사업을 민간 시장에 위탁하지 말고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산업자원부는 사회적 논란이 됐던 가스 안전점검 노동자들의 안전 대책을 위해 지난해 말 실태 조사에 들어가 3월쯤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요구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여성 노동자들은 천대에 맞서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을 위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사측과 임단협 협상이 결렬된 이후 1월 14일부터 매일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2월 14일에 “안전대책 마련! 실적제도 폐지! 임단협체결!”을 위한 서울지부 집중집회도 개최할 예정이다.

도시가스 안전점검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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