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의 그린뉴딜:
기후 위기 극복과 자본주의를 조화시키려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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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앞두고 정의당이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했다. 그린뉴딜은 2018년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 오카시오-코르테스가 제안하고, 그 이듬해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 버니 샌더스가 공약으로 발표해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정책이다. 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도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녹색산업혁명’ 정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린뉴딜이라는 말은 2007년에 처음 등장했고,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가 처음 제기했다. 오바마의 그린뉴딜은 녹색 경제 성장이라는 방향 속에서 온건한 개혁 정책들을 포함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 부상한 그린뉴딜 정책은 그보다 훨씬 급진적인 제안이다. 예를 들어 샌더스는 2030년까지 전력·운송 부문을 재생 에너지로 전면 전환하고, 2050년까지 완전한 탈탄소화를 위해 10년간 16조 30억 달러(약 1경 9500조 원)의 공공투자를 하겠다고 했다. 이는 미국 연방정부 예산의 3.5배에 이르는 돈이다. 이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 2000만 개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와 같은 정책이 나온 배경은 지난 10여 년간 매우 심각한 수준으로 발전한 기후 위기와 관련 있다.
수개월 동안 호주를 불태운 거대한 산불, 카리브해 섬나라인 바하마의 60퍼센트를 침수시킨 초강력 허리케인, 지난해 프랑스에서 1500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폭염으로 죽어간 일들…. 많은 사람들이 하루빨리 기후 위기를 멈춰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한국의 올해 1월 평균 기온은 2.8도로 평년보다 3.8도나 높았다. 제주도는 올해 1월에 역대 최고인 23.6도를 기록한 날도 있었다. 보통 3~4월에 피는 제주도의 유채꽃은 올해 1월 만발했다.
그런데도 세계 각국의 지배자들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는커녕 사상 최대 속도로 늘리고 있다. 거리로 나선 유럽의 청소년들과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절박하게 외치고 있는 이유이다.
특히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나라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온실가스 배출량은 증가하고 있다. 문재인은 석탄 화력발전을 줄이겠다고 공약했지만 박근혜 때 결정된 신규 발전소 건설은 지속하고 있다. 그것도 대기업들이 소유하는 형태로 추진해 사실상 발전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은 제대로 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안을 내놓지 않았다. 민주당은 ‘2050 그린뉴딜 비전’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당장의 탄소 감축 계획은 없이 30년 뒤에야 탄소 제로 사회를 만들겠다는 막연한 선언에 그쳤다. 탄소세도 ‘검토’하겠다는 것이고, 오히려 수소산업 육성처럼 친환경 공약이라고 보기 힘든 내용들이 포함됐다.
미래통합당은 기후 위기를 극복할 대책은 전혀 없이 탈원전 정책 폐기와 같은 반反환경적 공약을 내걸고 있다.
주류 양당과는 차별되게 정의당이 한국판 그린뉴딜 정책을 내놓았다.
급진적 성격, 모순적 방향
정의당은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 순배출 제로를 이루겠다고 했다. 이는 2018년 유엔 ‘기후 위기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기온 상승을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제시한 권고를 따른 것이다.
이를 위해 2030년까지 전기 생산의 4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석탄 화력발전소를 다 없애고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전환하겠다고 했다.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차로 대체하고 2030년에 전기차 1000만 대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또 주택과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그린 리모델링을 하고, 탄소세를 도입하겠다는 등의 정책을 제시했다.
정의당의 그린뉴딜에는 지지할 만한 정책들이 많다. 정의당이 제시한 것처럼 화석연료를 대체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일 기술과 방법들은 이미 충분히 존재한다.
정의당은 그린뉴딜을 통해 “경제 대전환”을 이루겠다고 했다. 실제로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들이 경제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그린뉴딜 정책을 이루려면 현재의 생산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할 것이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겠다는 세계 지도자들의 말과는 다르게 여전히 세계 자본주의는 석유화학, 자동차, 석유정제, 플라스틱, 시멘트, 철강, 조선 등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들로 이뤄져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기업 아람코가 시가총액 세계1위 기업이고, 여전히 제국주의 국가들이 중동 패권을 위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특히 화석연료에 기반한 제조업이 경제의 핵심을 차지하는 한국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2010년 1.2퍼센트에 비해 늘었지만 2018년 여전히 3.8퍼센트에 불과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정의당의 화석연료 체제 전면 전환 정책은 화석연료 기반 산업들과의 전면적 투쟁을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그런데 정의당은 그린뉴딜 정책의 급진적 성격과 모순되는 방향들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먼저, 그린뉴딜 정책을 통해 기후 위기 극복뿐 아니라 한국 경제의 성장도 이루겠다고 했다. 재생에너지, 전기차 등의 ‘녹색’ 산업에서 기술력을 높여 한국 자본주의의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그린뉴딜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산업화, 김대중의 정보고속도로 구축과 정보화에 비견되는 새로운 경제적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정의당이 추구하는 경제 성장 정책은 신자유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국가가 주도적으로 투자를 창출해 성장을 이끄는 것과 불평등 해소 등을 강조하는 케인스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다. 심상정 대표는 이를 혁신가형 국가 모델이라고 부른다. 이는 현재 정의당이 국유화와 같은 정책을 강조하는 좌파 개혁주의적인 지향보다는 상대적으로 시장 원리를 좀 더 인정하는 주류 사회민주주의적인 지향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러나 어떤 형태이든 자본주의에서 경제 성장(즉, 자본 축적)은 노동자 착취를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 경제 성장을 강조하는 것은 정의당이 표방하는 진보적 지향과 긴장을 낳을 것이다.
실제 그린뉴딜 공약에서도 자본주의적 경제 성장과 친환경을 조화시키려다 보니 “전기차 1000만 대 시대” 같은 공약이 강조돼 있다. 물론 전기 생산이 친환경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전기차도 지금과는 다르게 친환경적 운송 수단이 될 수는 있다. 그럼에도 교통 분야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개별 가정이 전기차를 소유하는 것을 강조하기보다 철도, 버스 등 공공교통을 강조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뉴딜정치동맹
정의당은 그린뉴딜 정책이 “미래세대, 새로운 산업, 시민사회 및 노동자와의 정치동맹을 통해 현실화”될 수 있다고 했다. 노동자, 기업주 등과 대화와 설득을 통해 그린뉴딜을 추진해 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기후 위기가 심각하기 때문에 자본가들도 결국 화석연료 기반 산업들을 친환경 산업으로 재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기후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성도 위협하고 있다. 지배자들 중 일부는 이대로 화석연료 체제를 지속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자본가들은 환경 문제의 해결책과 관련한 산업에 자본을 투자하고 이윤을 벌 기회를 노리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산업 등은 지난 수년간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산업들은 기존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을 대체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지는 못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세계적으로 최종 에너지 수요에서 재생에너지는 연평균 2.5퍼센트 성장했다. 그러나 화석연료와 핵발전도 감소한 것이 아니라 연간 1.4퍼센트씩 성장했다. 그래서 대표적인 신재생에너지인 태양광과 풍력이 세계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6년 기준으로 5.1퍼센트에 불과하다.
이처럼 기후 위기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들이 줄지 않는 이유는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들이 자본주의 체제에 워낙 깊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산업들은 자본주의의 장기 성장 전망보다 단기적 이익에 몰두한다. 지금도 미국의 지배계급은 심각한 경제 위기와 저유가 상황에서 파산 위기에 처한 셰일가스 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돈을 쓰고 있다. 셰일가스 기업들은 미국 투자위험등급 채권의 1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지배계급의 입장에서는 파산을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자본주의가 세계화돼 있는 상황은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만약 한 국가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강력한 조처를 취한다면 다른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미국 지배계급이 교토의정서에서 탈퇴하고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지 않는 것도 중국과의 경쟁 압력이 작용하고 있다. 이런 경쟁이 인류를 파멸로 몰아간다 하더라도 자본가들은 눈 앞의 경쟁 압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경제 침체가 심화하고 기업들이 이윤 압박을 받을수록 자본가들은 비용 부담을 조금이라도 늘릴 정책들을 반대할 것이다. 지금도 자본가들은 규제 완화를 외치고 있다.
이와 같은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들이 순순히 화석연료에 기반한 생산을 전환하리라고 보는 것은 공상적이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화석연료에 기반한 생산을 전환하려면 기업주 및 자본가에 맞서는 거대한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투쟁이 성장해 결국 자본주의의 이윤 논리를 근본에서 거부하고 인류의 필요에 따라 사회를 전면적으로 재편할 수 있을 때에야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효과적 대응이 가능할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기후 위기 대응 운동에서 “기후 변화가 아니라 체제 변화를!”이라는 구호가 외쳐지고 있는 이유이다.
이를 위해 기업들의 이윤 논리에 맞서 계급투쟁을 전진시켜 간다는 관점이 중요하다.
기후 위기로 인한 재난으로 노동계급과 가난한 사람들이 더 큰 고통을 받고, 이는 해고에 맞선 투쟁, 임금 삭감에 맞선 투쟁, 공공의료와 복지를 요구하는 투쟁 등 다양한 투쟁들을 더욱 격화시킬 수 있다. 이런 투쟁들에서 노동계급의 권리를 옹호하며 계급 투쟁을 전진시켜 가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린뉴딜 정책에 대한 노동계급의 지지를 넓히려면 탄소세 인상과 이에 따르는 전기요금 인상을 노동계급이 아닌 자본가들이 부담하게 하는 방향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결론
정의당의 그린뉴딜 정책은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급진적으로 산업을 재편하려는 방안이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적인 계급 타협적 지향 속에서 이 정책을 구상하다 보니 모순도 존재한다. 물론 이런 모순은 현재 대중의 의식에 존재하는 모순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과 관련한 토론이 활성화되기를 바란다. 정의당이 이번 총선에서 선전한다면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운동이 전진할 좋은 토양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