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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노위 과로사 대책:
탄력근로제와 작업중지 개악으로 일터는 더 위험해졌다

4월 27일 경사노위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과로사 방지 종합대책 추진 합의문을 발표했다(‘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

합의문은 과로사 예방 대책에 더해, 서비스업·중소기업 안전 강화 방안과 관련 행정체계 개편 방안으로 구성됐다.

경사노위는 이번 합의문이 “과로사 문제에 대한 최초의 노사정 합의라는 데 의의가 있다”며 추켜세웠다.

그러나 실제 내용을 뜯어보면 실속이 없다. 4개 항목 모두 향후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태스크포스팀(TFT)을 구성하거나 향후 협의해 간다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합의문은 산재보험기금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총액의 3퍼센트까지 증액하기 위해 구체적 이행방안을 논의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이미 산재보험법이 정부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내용이다.

2006년, 2008년 노사정은 해당 내용을 합의하고 이행하기로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12년간 정부 출연금은 3퍼센트에 턱없이 못 미치는 92억 원(2020년 기준 0.13퍼센트)에서 계속 동결됐다.

탄력근로제

무엇보다 이번 합의는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문의 부속물이다.

지난해 10월 경사노위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기로 했다. 주 64시간 노동을 최대 3개월까지 허용하는 것이다. 이는 주 52시간제는 물론, 공식 과로사 인정 기준(12주 연속 60시간 노동)조차 훌쩍 넘긴 개악이었다. 그래서 당시 경사노위 합의를 노동자들은 ‘과로사 합법화’ 개악이라고 불렀다.

그래놓고는 이제 보완 장치랍시고 “과로 방지 대책을 마련한다”는 조항을 덧붙였다. 이번 과로사 대책 합의문은 구체적 내용도 없는 데다, 더 큰 개악을 조금이라도 가려 보려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이번 합의문을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4월 28일)을 맞아 공개할 수 있어 뜻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뜻깊은” 날에도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4월 16일 현대중공업에서 잠수함을 만들다 사고를 당해 목뼈가 부러지고 머리를 심하게 다쳤던 노동자가 열흘 넘게 사경을 헤매다 4월 28일 사망하고 말았다.

그 일주일 전인 4월 21일에도 또다른 현대중공업 노동자가 커다란 철제 문에 끼여 즉사했다.

반복되는 산재 사고를 막으려면, 사고 직후 공장을 모두 멈춰 세우고, 어디가 문제인지 낱낱이 조사해 대책을 세운 뒤, 그에 필요한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그러나 4월 16일과 21일 사고 이후 고용노동부는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지 않거나 사고 현장 중심으로 부분 작업중지만 시켰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작업중지 개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김용균 법’ 100일

2018년 5월 문재인 정부는 고용노동부가 명령하는 작업중지의 기준을 개악했다. 전면작업중지를 원칙으로 했던 기존 지침을 재해 발생 공정이나 동일 공정에만 적용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지침은 2019년에 전면 개정돼 올해부터 시행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도 반영됐다.

한편, 개정 산안법 시행규칙에는 작업중지 해제 요건을 완화하는 개악도 추가됐다. 사업주가 작업중지 해제를 신청하면 4일 이내에 해제심의위원회를 열도록 강제한 것이다.

개정 산안법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청년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억울하게 숨진 고 김용균 노동자의 이름을 따 ‘김용균 법’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김용균 법’은 또다른 김용균들을 보호해 줄 새로운 내용이 별로 없다. 위험의 외주화 금지는 화학 물질 4종에 그쳤다. 원청이 책임져야 할 작업장 범위를 확대했지만 고 김용균 노동자가 일하던 화력 발전소 현장은 이미 기존 법 조항으로도 원청이 책임져야 할 “위험 장소” 기준에 포함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법을 어겨도 처벌이 매우 미미해서 기업들은 노동자 안전에 대한 책임을 쉽게 저버렸다.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에 사망한 동료를 추모하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출처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2009년 1월~2019년 6월 사이 산안법 위반 사건 중 실형 선고는 0.6퍼센트(35건)에 그쳤고, 무죄 처리는 6퍼센트에 달했다. 해당 기간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을 때 사용자가 낸 벌금은 평균 432만 원이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6명이나 사망했던 2017년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에 대해서도, 법원이 사측에게 물린 벌금은 고작 300만 원이었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개정 산안법에 처벌의 하한선이 도입되기를 바랐지만 이런 바람은 외면됐다. 결국 ‘김용균 법’이 시행됐음에도 올해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수는 벌써 199명에 달한다.

더욱이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경제 위기를 이유로, 사용자들의 화학 물질 취급 인허가 기준을 완화하는 등 노동자와 대중의 안전을 위협하는 개악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4월 8일 “수출 활력 제고 방안”)

요컨대 정부는 한 쪽에선 개선을 약속하는 척하지만 금세 다른 쪽에서 더 나쁜 개악을 들고 나오기를 반복하고 있다.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은 사회적 대화 테이블에서 흥정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지금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위기의 고통과 위험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려 하는 정부·사용자에 맞선 투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