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줄기세포 연구 반대할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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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60호에서 장호종 동지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환원주의를 부추겨 “진정한 질병 치료를 위한 노력을 소홀하게 만”들 것이라는 점과 이를 이용한 치료가 성과를 얻기 힘들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근거들로 특정 과학기술을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환원주의를 부추기고, 진정한 질병 치료를 위한 노력을 소홀히 하게 만들 것인가?
질병은 각 개인의 특성과 환경적 요인의 상호작용에 의해 발생하게 된다. 각각의 질병들의 원인은 개인적 특성과 환경적 요인이라는 양 극단 사이의 어느 지점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생활습관과 환경적 요인의 영향이 큰 질병을 두고 원인을 개인의 유전자에서 찾고, 환경적 요인을 조절하기 위한 노력을 등한시한 채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 치료하려 든다면 이런 비판은 일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전적 원인에 의한 질병들도 지금까지 밝혀진 것들만 5천여 종에 달한다. 이런 질병들의 진단 및 치료를 위해 원인 유전자를 찾고 확인하는 연구를 환원주의적이라고 비판하기는 힘들 것이다.
최근 생활습관병과 암 발생의 개인적(유전적) 차이의 원인을 밝히기 위한 유전자역학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연구도 환원주의라 몰아붙일 수만은 없다.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좀더 효율적인 예방상담과 사업을 진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령 폐암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사람에게 근거를 들며 금연을 권한다면, 금연 성공률은 더욱 상승할 것이다.
물론 이 연구의 결과가 취업의 장벽 혹은 배우자 선택의 조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구 결과가 사회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그 기술을 사회에 적용하는 지배계급의 논리(즉,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에 의해 결정된다. 때문에 우리는 과학기술 자체에 낙인을 찍기보다는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기술 자체의 영향과 체제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을 분리해서 판단해,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합리적인 자세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배아줄기세포 연구 자체를 환원론적이라고 낙인찍거나 반대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지지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인 치료 성과에 대해서도, 아직 발전중인 기술의 현재 성과를 놓고 지지 여부의 근거로 삼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해당 기술이 특별히 인류에 해악을 초래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일단 지켜보는 게 적절한 자세일 것이다.
하지만 예로 든 외상에 의한 척추 손상의 경우, 현재까지 재활치료와 스테로이드 요법 외에는 딱히 다른 치료방법이 없다. 외상 예방 캠페인이나 교육이 척추 손상을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신경세포 재생을 통한 치료법이 척추 손상 환자들에게 희망일 수밖에 없다. 쥐를 이용한 실험에선 급성 척추손상의 경우 배아줄기세포 이식으로 운동 능력이 호전되었다는 보고가 국내외에 적지 않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성체줄기세포 시험에서도 감각과 운동 능력 호전이 확인된 예가 계속 보고되고 있는 중이다. 또한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진행하면서 신경세포 재생의 과정을 좀더 상세히 발견해가고 있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척추 손상의 경우 줄기세포의 성과를 지켜볼만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전자 조작(동물이든 식물이든)은 현재로서는 그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와 검증 그리고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환경 통제를 통한 질병예방은 지금 당장 시행할 수 있다. 개체(유전자)와 환경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의 조절을 통해 인류는 비로소 ‘건강’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