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전체 기사
노동자연대 단체
노동자연대TV
IST

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유럽회복기금이 유럽연합의 분열을 잠재울 수 있을까?

똑똑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이자 미국의 초대 재무장관을 지낸 알렉산더 해밀턴은 한때, 1804년 부통령 에런 버와 결투를 하다 목숨을 잃은 인물로 기억됐다.(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고어 비달의 소설 《버》에 그 이름을 길이 남겼다.)

그러나 해밀턴은 사후 명성을 누리고 있다. 처음에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주인공으로 유명해졌고, 이제는 유럽연합의 “해밀턴적(的) 계기”를 다루는 글들에서 끊임없이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해밀턴은 보호 관세를 이용해 미국 제조업을 강화하려 한 경제적 국민주의자였다. 1790년 해밀턴은 주(州) 정부들의 부채를 연방 정부의 부채로 인수했다. [연방 정부 채권을 발행해] 연방 정부를 강화할 재원을 마련하고 경제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많은 주들은 영국을 상대로 독립 전쟁을 벌이느라 막대한 부채를 지고 있었는데, 해밀턴은 당시 가장 강력한 버지니아주(州)를 설득해 다른 주들의 부채를 국가 부채로 끌어 안았다.

그렇다면 유럽연합에서 이와 비견할 만한 사건은 무엇인가? 5월 18일 독일 총리 메르켈과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이 “유럽회복기금” 설립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5000억 유로 규모의 이 기금은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극복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

메르켈과 마크롱이 제안한 5000억 유로는 약 16조 유로에 달하는 유럽연합의 GDP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어떻게 된 것인가? 지금까지 많은 정부들은 경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앞뒤 가리지 않고 막대한 재원을 쏟아부어 왔다. 그렇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아니라 많은 [각국] 정부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현재 유럽연합은 남부 회원국들과 북부 회원국들이 서로 분열해 마비돼 있다.

여기서 중요한 나라는 이탈리아다. 이탈리아는 유럽연합에서 세 번째로 큰 공업국이며 이번 전염병 대유행에서 가장 큰 피해를 봤다. 지난해 12월 이탈리아의 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35퍼센트였고 이 비율은 180퍼센트로 늘어날 전망이다. 앞으로 정부 지출이 증가하고 경기침체로 경제활동과 조세 수입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독일이 지지하던 북부의 “검소한 4개국”(오스트리아, 덴마크, 네덜란드, 스웨덴)은 전염병 대유행으로 타격을 입은 회원국들을 차관 형태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차관에는 신자유주의적 기구의 감독이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로존 위기 때에도 그 기구들은 그리스, 스페인, 아일랜드에 상당한 고통을 준 바 있다.

독일과 “검소한 4개국”은 유럽연합 전체 회원국들이 공동 채권을 발행해 경제 회복 기금을 마련하는 것에도 반대했다. 그렇게 했다가는 유럽연합이 부유한 북부 회원국들이 취약한 남부 회원국들의 부담 떠안기에 동의하는 “전이 동맹”으로 전락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경제학자 마이클 페티스는 이런 주장이 부조리하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이라는 ‘전이 동맹’의 회원국인 덕분에 가장 큰 경제적 혜택을 본 나라는 독일”이었기 때문이다. 긴축이 유로존에 강요된 것은 독일의 저임금과 수출 중심 기반 경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제 메르켈은 태도를 바꿔 남부 회원국들의 요구에 응했다. 메르켈과 마크롱은 회원국들에게 차관이 아닌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한 기금을 지지하고 있다. 이 기금은 유럽집행위원회의 차입으로 마련될 것이다.

메르켈이 태도를 바꾼 것은 유럽 통합에 회의적인 경제학자들이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책에 품고 있던 불만을 5월 초 독일 헌법재판소가 지지해 줬기 때문일 것이다.

메르켈은 긴축의 고통을 완화하려고 유럽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책(돈을 찍어 은행 체계에 푸는 것)에 기댔었다. 그러나 독일 헌법재판소가 독일 주권을 지키기 위해 유럽연합 법을 무시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판결하면서 그런 계획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른다.

마크롱은 유럽연합의 응집력이 위태롭다고 경고해 왔다. 중국은 이탈리아에 구애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전염병 대유행이 왔을 때 유럽연합이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것에 대한 쓰라림이 매우 크다. 최근 이탈리아의 여론 조사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가장 우호적인 나라로 꼽혔고 독일과 프랑스는 한참 밑에 있었다.

그렇다면 유럽연합은 “해밀턴적 계기”를 맞이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해밀턴이 7600만 달러의 연방 부채를 조성했을 때 미국 국민소득은 1억 89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메르켈과 마크롱이 제안한] 5000억 유로는 약 16조 유로에 달하는 유럽연합의 GDP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더 근본적으로 해밀턴은 국민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다. 국민국가는 필연적으로 부유한 지역에서 경제력이 열악한 지역으로 자원을 이전하는 “전이 동맹”일 수밖에 없다.

반면 유럽연합은 여전히 국민국가들의 카르텔이다. 징세와 지출은 여전히 국민국가들이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나라들, 특히 독일과 프랑스가 유럽연합을 지배하고 있다. 메르켈과 마크롱의 계획은 땜질용일 뿐 게임 체인저[국면 전환 요소]가 아니다.

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