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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배제’는 기성 정당에만 이로울 뿐이다

‘X파일공대위’와 ‘양극화 해소를 위한 국민연대’가 정당 배제를 결정했다. 주요 운동 NGO들이 정당 배제를 주장했고, ‘다함께’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민중운동단체들이 그 주장을 받아들였다.

NGO 지도자들은 “객관성”과 “중립성”을 위해 그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연합체들이 건설할 운동은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이지 않다. 운동 NGO들이 하는 일도 그렇다.

현실에서, 운동 NGO들은 흔히 우리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 편이다. 많은 NGO 활동가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운동들에 참가하거나 주도한다. 이런 NGO 활동가들이 그런 운동들의 성공을 의도적으로 가로막기 위해 활동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운동들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신’ 사회운동을 표방하는 많은 NGO들이 ‘구’ 사회운동, 즉 민중운동 ― 노동운동이나 농민운동 등 ― 과 함께 활동한다. 앞에서 언급한 연합체들이 그렇고, 파병반대국민행동 같은 반전 연합체에서도 그렇다.

더욱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자체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63빌딩에서 자본가와 노동자가 함께 떨어진다면 중력 법칙 때문에 그 둘은 동시에 땅에 닿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체제와 서로 완전히 다른 관계를 맺는다.

부패와 시장주의는 노동자와 자본가에게 서로 다른 결과를 낳는다. 전자에게는 가난을, 후자에게는 부를 안겨 준다. 요컨대, 우리 사회에서 불편부당한 것은 없다.

그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간에 정당 배제 결정은 역설적인 결과를 빚고 있다.

X파일과 사회 양극화의 주범인 기성 정당들의 연합체 참가를 배제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기성 정당들은 무대 뒤에서 협상하거나 심지어 조종하려 들지는 몰라도 애써 연합체에 참가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정당 배제 결정 때문에 유탄을 맞는 것은 그 문제들에 열의를 갖고 운동에 동참해 온 민주노동당이다. 정당 배제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겪는 정당이 정작 그 운동의 일부이고자 했던 민주노동당이라는 사실은 정당 배제가 낳을 정치적·실천적 결론을 잘 보여 준다.

한편, 정당 배제 주장에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운동에서 정당을 배제한다는 것은 정치를 배제한다는 뜻이다. 물론 여기에는 “정치”를 소수 지도자들이 수동적인 대중에게 하사하는 것쯤으로 여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담겨 있기는 하다.

그러나 모든 운동은 정치를 제기한다. 어떤 전술을 채택할 것인지, 주류 정치인에게 의지할 것인지 아니면 대중에게 호소할 것인지 등을 둘러싼 논쟁에서 정치가 제기된다.

이런 의견 불일치는 저항의 무대인 기성 사회가 가하는 압력 때문에 생겨난다. 이탈리아 혁명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지적했듯이, ‘상식’은 이런 기성 사회의 압력을 의심 없이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투쟁을 통해 사람들은 그런 가정들 중 일부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가정 전체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의식은 1백 퍼센트 친자본주의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1백 퍼센트 반자본주의적이지도 않다. 흔히 대다수 노동자들은 모순된 의식을 지니고 있다.

이런 이유로, 역사에서 사회 변화를 위한 위대한 투쟁은 매우 불균등한 과정이곤 했다. 모든 사람들이, 모든 사회세력이 똑같은 속도로 급진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집단은 다른 집단보다 먼저 행동에 돌입할 수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힘을 집중하고 극대화하기 위해 불균등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관건이 된다.

어떤 사람은 화해라는 안락한 듯한 길을 선택하려 할 것이고, 다른 사람은 최대한 투쟁을 밀고나가 다른 투쟁들과 연결시키려 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후자를 결속시킬 수 있는 조직이다.

NGO들도 그런 문제들 ― 예컨대, 탄핵 반대 운동, 파병 반대 운동, 비정규직 차별 철폐 운동 등 ― 에 직면해 이러저러하게 정치적 입장을 내놓거나 ‘지도’를 제공하고 있다.

비록 그들이 ‘정당’이라는 이름은 거부하지만, 고유한 강령에 기초해 조직하는 정당들처럼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연대 등은 준정당적 성격을 지닌 “종합형 시민운동”(“백화점식 운동”)을 하고 있고, 환경운동연합은 2000년 총선시민연대 활동의 주축이었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방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최일붕 동지가 〈다함께〉 신문 57호에서 지적했듯이, “‘당’ 하면 뭔가 거창한 것, 본격적인 의미의 현대적 정당, 즉 대의원대회나 중앙위원회 같은 선출된 기구를 갖추고 명확한 구조를 갖춘 조직을 생각하는데, 마르크스주의적 의미로는 꼭 그렇지 않다. 사회 변화에 대한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중심으로 모인 일단의 사람들이면 그게 바로 당이다.”

따라서 진정한 문제는 조직 형태인 정당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정당이 필요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당 배제 주장은 정치적으로 솔직하지 않거나 지적으로 기만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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