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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논쟁을 돌아보며

성 판매 여성들이 자신을 ‘노동자’로 규정한 운동이 등장하고부터, ‘성 노동자’라는 개념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최근 ‘다함께’가 주최한 포럼 ‘전쟁과 변혁의 시대’의 한 워크숍(“성 해방은 어떻게 가능한가?”)에서도 “성매매가 노동인가?” 하는 질문이 제기됐다.

자신의 성을 판매하는 행위가 모두 임금 노동인 것은 아니다. 성 판매자들 중에는 자영업의 형태로 자신의 성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있고, 포주나 지배인 등에게 고용돼 성을 판매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마 후자의 경우에는 임금 노동자 계급의 일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 판매 여성들이 노동자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이 쟁점에서 핵심이 아니다. 그들이 노동자이든 아니든 자본주의에서 억압받는 존재라는 점이 중요하다. 생계를 위해 자신의 성을 판매하는 것은 수입이 얼마나 되든 억압적인 것이다.

그래서 성 판매 여성들의 일을 그저 자유로운 거래라고 보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역겨운 것이다. 성매매는 비인간적인 것으로, 자본주의와 함께 사라져야 할 병폐다.

다른 한편, 성이 상품으로 거래되는 현상은 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처럼 단순히 남성들의 욕망 때문이 아니다. 성의 상품화는 자본주의의 속성과 관련돼 있다. 자본주의는 돈이 되는 것은 모조리 상품화하기 때문에 돈을 위한 섹스가 필연적으로 번성한다.

이런 이유로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성매매 단속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것은 성매매의 사회적 원인을 보아넘긴 채 개인들을 속죄양 삼기 때문이다. 국가의 단속은 기껏해야 성매매의 중심지를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구실을 할 뿐이다. 많은 경우 성매매 단속은 경찰력 강화에 이용된다. 그리고 경찰의 단속은 성 판매자들을 가장 괴롭히는 일이 되곤 한다.

사회주의자들이 성 판매 여성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이유도 이와 관계 있다. 뚜렷한 생계 대책도 마련해 주지 않으면서 무조건 못하게 막는 정부의 정책은 억압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성 판매 여성들의 투쟁을 지지한다고 해서 그들의 요구를 1백 퍼센트 지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성매매 합법화를 전폭 지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성매매 합법화 요구는 성 판매 여성들의 생존권 보장이라는 차원을 넘어 성 산업에 대한 방어와 결합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 상품화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자들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내가 2001년 8월호 《다함께》에서 밝힌 성매매 합법화에 대한 (전술적) 지지 입장은 잘못됐다. 비록 당시에도 합법화가 해결책이 아니고 성매매가 없어져야 할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긴 했으나, 합법화에 대한 지지는 성매매를 용인한다는 오해를 낳았다.

이 점을 우려해 나는 그 동안 신문에서 성매매 ‘합법화’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지만, 처음 입장을 공식 수정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이 갖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혼란의 씨앗을 남겨 놓았다.

여기에는 성매매 합법화에 대한 몇 가지 모호한 생각이 작용했다. 나는 성매매 합법화가 불법화보다는 성 판매 여성들에게 좀더 나은 삶의 조건을 가능하게 한다고 봐서 지지했는데, 이것은 다분히 경제주의적 접근법이었다.

물론 성 판매 여성들의 처지에서는 불법화가 더 큰 어려움을 야기하는 것은 사실이고, 우리가 성 판매 여성들의 경제적 처지를 간단히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매매 문제에서 우리가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성매매가 대중의 의식에 끼치는 악영향이다. 성매매를 포함한 성 상품화는 사람들의 인격을 무시하는 분위기를 조장하는데, 특히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는 여성 차별 의식을 확산하는 데 큰 구실을 한다. 여성들이 한낱 물건처럼 진열되고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은 여성의 품위와 존엄을 떨어뜨린다.

분명한 것은, 성매매의 법적 형태가 어떻든 성매매 자체가 비인간적이고 여성 억압을 나타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성매매 합법화는 어떤 식으로든 성매매의 정당화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성 산업을 방어하는 게 아니라 성 판매자들에 대한 국가 억압에 반대한다는 차원에서 성매매 비범죄화 요구를 지지해야 할 것이다.(포주는 성 착취자이므로, 성매매 비범죄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구매자는 판매자와는 다른 처지에 있고 우리가 이들의 행동을 두둔할 수는 없지만, 형사 처벌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 성매매 ‘합법화’ 요구는 아무래도 공창 등 성 산업을 방어하는 논리를 포함하게 되므로, 사회주의자들이 요구하기에는 부적절하다.

이와 연관해 ‘성 노동’이라는 용어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용어는 여러 모로 모호하기 때문에 각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성적 거래를 ‘노동’으로 부르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많은 성 판매자들의 처지를 다소 나타내는 것이기는 하지만, 종종 억압적 현실을 미화하는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포스트페미니스트들은 성 상품화를 ‘성 해방’으로 여기며 ‘성 노동’ 용어를 이런 방식으로 사용하곤 한다.

‘성 노동’ 개념이 성 판매자들의 자긍심을 높여준다며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주관적 생각이야 어떻든 성 판매 자체가 굴욕적인 성적 대상이 된다는 객관적 사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성 판매가 다른 임금 노동과 차이가 없다는 주장을 진지하게 밀고 나가면, 여성 해방 운동의 주요 요구 가운데 하나인 여성의 노동권도 의미 없게 된다.

이것은 또한 경제주의적 개입을 부추길 수 있다. 예컨대 좌파가 성 판매자 노조를 건설하는 데 개입하는 것이 그것이다. 성 판매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것은 옳지만, 좌파가 그들을 노조로 조직하려 애쓰다 보면, 성 산업을 방어하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

결론으로, 우리는 성매매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의 위험을 피하면서도 성매매가 체제 내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도 거부해야 한다. 성매매를 포함한 성 상품화를 자본주의의 경제·사회 구조에서 떼어내서 별도로 다루려 하면 엉뚱한 길로 빠지기 십상이다. 이윤이 아니라 대중의 필요가 사회를 운영하는 원리가 될 때, 가난과 억압으로 인한 성매매는 과거지사가 되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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