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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배신 1944~1985》:
서구의 사회당과 공산당은 어떻게 체제를 위기에서 구원했는가?

사회민주주의 의사가 자본주의 환자의 쾌유를 바라며 치료하는 모습을 풍자한 만평 (이 책의 영어판 표지 그림, 영어를 한국어로 바꿈)

저자 이언 버철은 이 책의 목적을 이렇게 밝혔다.(이언 버철은 영국의 사회주의자이자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이다.)

“1945년부터 1985년까지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단독으로 또는 연합해서) 정권을 잡았다. 어떤 때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그랬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영향력과 탄력성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경쟁자들[공산당]이 쇠퇴했고 현대 자본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해야 할 독특한 정치적 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 이 책은 1945년부터 1985년까지 서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그들의 탄력성과 반동적 구실을 실증적으로 설명하고자 쓴 것이다.”

훌륭한 책이다. 이 책은 영국·프랑스·이탈리아·서독에 집중하지만, 소련 블록 밖 다른 유럽 나라들에서 전개된 상황도 다룬다.

이 책은 1986년 영국에서 처음 출판됐지만, 지금 한국 정치 현실에도 마침 맞다. 한국에도 사회민주주의 정당(정의당)과 스탈린주의 정당(진보당)이 존재한다. 물론 두 정당은 유럽에서처럼 집권은커녕 아직 그 문턱에도 못 갔다. 그럼에도 한국 노동계급 정치 세력 가운데 1부 리그에서 뛰고 있는,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되는 정당들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이곳에서 두 정당의 정책과 실천의 내재적 논리와 부침의 동학을 이해하는 데 큰 영감을 얻었다.

사회당·공산당의 자본주의 ‘정상화’ 노력

1944∼1945년과 그 직후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하 사회당)과 공산당이 대거 부활했다. 유럽 노동계급이 대규모로 급진화한 덕분이었다.

곳곳에서 비슷한 유형들이 나타났다. 사회당과 공산당은 좌파적 언사를 사용했지만 그들의 실제 정책은 최대한 빠르게 자본주의의 ‘정상화’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당시 많은 나라들에서 사회당이 집권했고, 보통 공산당도 포함된 연립정부 형태였다.

1945년 10월 프랑스 제헌의회 선거에서 공산당과 사회당이 대승했다. 두 당의 득표수가 전체의 절반 이상이었고, 두 당의 의석수를 합치면 302석(총 586석)이었다. 두 정당만으로도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지만, 신생 기독교 민주주의 정당인 민중공화국운동(MRP)을 연립정부에 끌어들였다. 사회당이 공산당하고만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위험 부담을 피하려 했기 때문이다.

이 정부는 나치 점령에서 해방된 직후 크게 산산조각 나 있던 자본주의 국가기구를 신속하게 복구하고, 긴축 정책(공공지출 삭감, 세금 인상,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 등)을 주도했다. 특히, 식민지 정책이 끔찍했다. 1945년 알제리의 민족주의 봉기를 탄압했고, 베트남에서도 프랑스의 지배에 반대하는 저항을 짓밟았다.

좌파적 언사(와 꽤 광범한 국유화 조처)를 쓰며 이런 일들을 했다. (나중에 프랑스 사회당 사무총장이 된) 기 몰레는 1946년 7월 당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당이 조직화와 선전, 대중 속으로의 침투라는 필수적 임무를 무시하고, 활동을 의회와 정부로 제한하고, 해방 이후 정치적·전술적 실수들을 저지르게 된 것은 당내에서 마르크스주의 사상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이때 “무시”라는 말뜻은 더 크고 더 잘 조직된 프랑스 공산당에 의해 주변부로 밀려난 사회당 지도부의 두려움을 가리켰다. 프랑스 공산당은 사회당과 매우 똑같은 정책들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얼마 가지 않아 바뀌었다.

냉전의 영향

제2차세계대전은 세계를 재분할하기 위한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승전국들의 사이가 틀어졌다.

미국은 마셜 플랜(미국의 전후 유럽 부흥 계획)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이용해 유럽(서유럽과 동유럽 모두)을 지배하고자 했다. 소련은 코민포름(공산당 정보국)과 바르샤바조약으로 대응했다.

냉전이 시작됐다. 사회당은 미국 진영에 줄을 섰다. 당시 집권당이었던 영국 노동당이 제일선에 나선 냉전의 전사였다. 영국 최초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나토에 가입했다. 다른 사회당들도 곧 뒤를 따랐다.

사회당은 중요한 구실을 했다. 이언 버철은 이렇게 썼다. “노골적 빨갱이 탄압에는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모종의 ‘좌파적’ 반공주의에는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사회당들은 급속하게 우경화했다. “사회주의 혁명”이니 “마르크스주의”니 하는 얘기는 이제 사라졌다. 1947년쯤 공산당은 여러 정부들에서 쫓겨났고 어느 정도는 좌선회했다.

냉전은 유럽 노동계급 운동을 친(親)모스크바 진영과 친(親)서방 진영으로 양극화시켰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지에서 미국이 기존 노조 총연맹으로부터의 분리를 후원했고 그 결과 또 다른 전국적인 규모의 노동조합 연맹들이 생겨났다. 1948년 프랑스에서 친미 우파가 노동조합총연맹(CGT)에서 분열해 나와 노동자의힘(FO)을 만들었다. 이탈리아 주요 노총인 이탈리아 노동(조합)총연맹(CGIL)에서도 두 차례 우파적 분열이 일어나 노동(조합)연합(UIL)[사회당 계열]과 이탈리아 노동조합연맹(CISL)[기독교민주당 계열]이 결성됐다.

국제사회주의경향처럼 원칙적인 국제주의 입장 — 워싱턴도 아니고 모스크바도 아닌 국제사회주의 — 을 지지한 사람들은 극도로 고립됐다.

무엇보다, 반동적인 사상들이 득세했다. “1950년대 초가 되자 자본주의를 위해 임무를 완수한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폐기 처분당했다. 이후 10년은 우파가 득세하는 시기였다. … 그때는 개혁주의자들에게 암울한 시기였다.”

개혁주의의 탄력성

그러나 사회민주주의는 살아남았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격화된 군비 경쟁으로 인한 장기 호황 덕분에 오랜 시간 조직된 좌파의 만만찮은 위협이 대체로 차단됐다.

스탈린주의의 저성장 위기가 사회당의 경쟁 세력인 공산당을 약화시켰다. 이탈리아는 예외적이었는데, 그 나라에서는 공산당이 유력한 개혁주의 정당으로 변신했다.

자본주의 경제가 점차 멈출 수 없는 위기에 빠져들자, 체제는 다시 한 번 사회민주주의의 본질적인 구실을 필요로 했다.

“스탈린주의가 파산하자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중재하는 근본적 임무는 사회민주주의가 맡게 됐다. … 노동계급이 만들었지만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일에 완전히 헌신하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야말로 … 최상의 조직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배계급이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이상적인 집권당으로 여긴다는 말은 아니다. … 부르주아지에게 알맞은 체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는 대안이 위기의 해결책으로 남아 있는 그런 체제다.”

그리하여 1970년대와 1980년대 전반부 동안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여러 번에 걸쳐 영국·아일랜드·프랑스·서독·오스트리아·벨기에·네덜란드·스페인·포르투갈·그리스·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에서 집권했다.

이 책은 이 물결이 쇠퇴하는 시점에서 끝난다. 그 뒤 1990년대 중엽 유럽에서 우파 정당들이 곤경에 처하자,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사회당들이 다시 자본주의를 구출하기 위해 대거 집권했고, 신자유주의적 긴축 정책을 밀어붙이다 대중의 실망과 분노를 사 선거에서 패배하는 상황을 우리는 목격했다. 그 뒤 그리스에서 긴축 반대 투쟁이 상당 수준으로 고양된 덕분에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시리자)이 집권했지만, 얼마 못 가 사회민주주의 정부들처럼 지지자들을 배신하더니 급속하게 여느 평범한 개혁주의 정당으로 전락하는 상황도 목격했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사라지거나 끝나지 않았다.

이 책은 오늘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그리고 술술 읽힌다. 이 뛰어난 책도 믿고 읽는 번역자의 훌륭한 번역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그 오래 전 많은 독자들의 독해력을 몹시 괴롭혔던 한 출판사의 번역본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잊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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