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사근로자법 입법 예고:
가사노동자 처우 개선은 미미, 기업을 위한 시장주의 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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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가사근로자법(‘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 법안은 정부가 인증하는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이 가사노동자(유급으로 청소·요리·세탁·육아 같은 가사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가사서비스 시장을 공식화하려는 것이다.
가사서비스 시장 공식화를 위한 법 제정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이다. 이번 법안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자동 폐기된 정부 법안을 다시 제출한 것이다. 최근 정부는 가사노동자협회, YWCA, 한국여성노동자회, 기업 대표들과 함께 간담회를 하며 법 제정을 약속했다.
가사노동자 수는 내국인의 경우 30만∼60만 명으로 추산된다(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 가사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조항(11조) 때문에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노동법 적용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적용이 안 되고, 퇴직금도 받지 못한다. 고용·산재보험, 최저임금법, 남녀고용평등법 등도 적용받지 못한다.
가사노동자들의 처지는 매우 열악하다. 2019년 가사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107만 원 수준이었다(한국여성노동자회). 올해는 코로나19로 일감이 줄어 소득이 더욱 감소했다.
정부는 가사근로자법 제정을 통해 가사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한다고 주장한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가사노동자들이 법적 보호를 받아 처지가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가 엔지오·노동단체들 사이에 있다.
그러나 가사근로자법이 제정돼도 가사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지는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정부의 생색내기와 달리, 이 법안은 가사노동자들의 노동법 적용을 최대한 회피하고 있다.
정부 인증 업체에 고용된 가사노동자는 4대보험, 퇴직금 등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근로기준법상의 ‘소정 근로시간’(미리 정한 근로시간)이 아닌 ‘실제 근로시간’에 따라 유급휴일·연차 유급휴가·퇴직급여 등을 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계약 취소로 인해 휴일·수당 등이 줄어들 수 있는 문제가 있다.
또한 새 법안은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근무도 허용한다. 초단시간 노동자들은 유급주휴·연차 유급휴가·퇴직급여·고용보험 등의 노동법 적용을 받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는 가사노동자들의 실질적 처우 개선에 별 관심이 없다. 지난해 11월 가사서비스 플랫폼 ‘대리주부’를 운영하는 ‘홈스토리생활’에 실증특례(제품과 서비스를 시험·검증하는 동안 규제를 면제해 주는 조치)를 부여해 회사가 가사노동자들에게 각종 노동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게 허용한 바 있다.
가사근로자법 제정의 진정한 목적은 가사노동자가 아니라 가사서비스 플랫폼 업체들의 이익을 보호하며 가사서비스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것이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과 맞벌이의 증가로 가사서비스 시장이 커져 왔는데, 최근 몇 년 새 가사서비스 플랫폼 기업들의 진출이 크게 늘어나고 기업들의 매출 규모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기존의 인력중개업체들을 통해 계약이 이뤄지는 방식으로는 “서비스 품질 제고”에 한계가 있다며 가사근로자법 제정을 통해 가사서비스 시장을 “신산업”으로 키우겠다고 한다. 기업에 부담이 될 노동자 처우 개선책은 최소화하면서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업체 신뢰도를 높여 시장을 키우려는 것이다.
가사서비스 시장 활성화는 정부가 돈을 들이지 않고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를 늘리려는 방안이기도 하다. 가사·돌봄 서비스를 상품으로 구입하는 것을 장려해 노동계급과 서민층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노동계급과 서민층의 부담을 줄이고 여성의 평등한 사회 참여를 위해서는 가사서비스 시장 활성화가 아니라 공공서비스 확충이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