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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인천 초등학생 형제 화재 사건 :
어두운 현실을 드러낸 비극

며칠 전 인천 미추홀구 빌라 2층에서 10세, 8세의 형과 동생 둘이서 라면을 끓이다 화재가 일어나 중상을 입고 여전히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평소에도 이들은 아동급식 카드로 편의점을 통해 끼니를 해결했다고 한다. 보호자인 어머니는 자녀 방치와 폭행으로 아동복지법상 방임과 신체적 학대 혐의를 받고 있다. 행동장애(ADHD)를 가진 큰 아들을 평소 수차례 때렸다고 알려져 있다. 어머니 자신도 우울증과 불안증세 등의 병력이 있고 기초수급대상자이며 시간제 자활근로를 다녔다고 한다.

화재가 발생한 주택 내부 ⓒ출처 인천미추홀소방서

경제위기와 코로나19의 사회적 위기 속에서 더욱 불행해지는 가난한 아동의 현실이 송곳처럼 뉴스를 뚫고 나왔다.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몹시 가슴 아파하는 이유다.

1990년 3월에도 서울 마포구에서 비슷한 비극이 있었다. 지방에서 상경한 가난한 맞벌이 부부가 빌라 지하 셋방에 5세, 3세 남매를 두고 밖에서 문을 잠근 채 일하러 가야했다. 성냥불 장난을 하다 번진 화재 속에서 아이들은 너무 고통스러운 나머지 손톱에서 피가 나도록 방바닥을 긁으며 숨졌다.

가수 정태춘은 이 모습을 〈우리들의 죽음〉이란 너무 가슴 아픈 노래에 담았다. (아직 듣지 못했다면, 유튜브에서 찾아 꼭 들어보길 바란다) 당시에 밖에서 문을 잠그고 나간 부모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었다. 하지만,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진정으로 아이들을 불행으로 내몬 것은 취약한 이들을 더욱더 취약한 처지로 내모는 이 사회의 운영방식이요 운영자들이다. 부와 돈, 아니 실상은 이윤이 전부인 이런 세상이 지속된다면, 전 세계 어디서나 어떻게든 계속 반복될 비극일 것이다.

〈우리들의 죽음〉의 시점인 1990년 3월은 지금과 비슷한 데가 많다. 1986~1988년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이었지만, 1989년과 1990년에는 끝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래서 1989년과 1990년, 현대중공업의 강력한 노조조차 128일 연속파업을 했고, 골리앗크레인에 올라가야 했다. 경제가 불길해, 정부는 울산지역 위수령 발동(군투입)까지 엄포하며 강경 진압했다.(노동자들은 열흘간의 시가전을 치르며 저항했다)

1986~1988년 호황기 동안 전두환과 노태우 정부는 대국민사기극(“평화의 댐” 건설)으로 초등학생의 동전 한 닢까지 훔치고 있었고, 부유층은 부동산 투기에 극성이었다. 그러자 1986년 말부터 1990년 2월까지 전국 도시지역 주택 매매가격이 47퍼센트 올랐고 전셋값은 무려 82퍼센트나 올랐다. 결국 1990년 3월과 4월에 전셋값 폭등으로 17명이 자살했다. “일가족동반자살”로 불린, 자녀살해 후 부모자살이란 충격의 뉴스들이 이때부터 잦아졌다.

지금도 서울 전셋값이 64주 연속 상승중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는 용적률 상향 같은 규제완화를 들고 나온다. 오히려 이윤을 키우고 주거와 환경을 악화시키는 술책이다. 이미 IMF 위기 때처럼 전셋값이 집값을 앞지르기까지 했다. 청년들은 대출 상환을 연기하는데 은행들은 대출 금리를 인상한다. 자살과 자살시도가 증가하고 있다. 서울시 20대 자살률은 2배가 됐다.

인천 초등학생 형제 사건은 이처럼 짙은 어둠 한복판을 송곳처럼 비집고 드러난 현실의 모습이다. 자본주의는 무슨 짓을 했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과연 대안은 무엇인가?

아동학대를 막기 위한 진정한 대책

아동학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가난’이다. 유엔과 세계은행,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해마다 그리고 날마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가난해서 죽는다. 불황, 기아, 전쟁, 난민발생, 기후재앙, 감염병위기 등 심각한 사회 위기는 가난한 아이들에게 훨씬 더 치명적이다.

평상시에도 가정 내의 여러 조건들은 주로 계급에 따라 결정된다. 계급에 따라 가정에 필요한 재원을 얼마나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가 다른 것이다. 예컨대, 기초적인 의식주가 위태로울 때 육아의 어려움은 훨씬 배가된다. 재정적 사회적 불안정과 좌절감이나 무력감에 짓눌린 부모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럴 때 가정은 지옥이 되기 쉽고, 가장 큰 피해자는 아동이 되기 쉽다.

그러나 개별 가정의 경제적 어려움과 불행은 부모들이 무능력한 탓이 아니다. 부와 돈을 좇는 자본주의 체제가 가난한 지역, 가난한 나라, 가난한 동네, 가난한 가정, 가난한 이들의 어려움과 불행을 방치(외면)하기 때문이다.

유엔과 세계은행, 세계보건기구, FBI는 경제적 불평등이 심한 곳일수록 학대와 폭력이 더 많이 발생한다고 보고했다. 이것은 가난한 가정과 부모가 문제라는 뜻이 아니다. 불평등과 가난이야말로 체제가 저지르는 심각한 아동학대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학대부모에 대한 “엄중처벌”이나 가정에 대한 “국가개입의 강화”(“행정력 강화”라고도 말하고, “공권력 강화”라고도 읽힌다)는 좋은 대책이라 보기 어렵다.

어떤 아동학대는 너무나 끔찍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동학대를 한 개인에 대한 처벌도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동학대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해선 안 된다. 처벌강화는 실제로 아동학대를 줄이지도 못한다.

실상, 국가는 가장 중요한 개입은 강화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개입 말이다. 정부대책회의의 대책이란 문제해결의 실질적 대책이 아니라 문제봉합의 일시적 대책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동복지, 아동학대예방, 피해아동보호 예산을 증액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턱없이 부족한 상담사, 복지사, 보육사 인력을 대폭 확충하고 열악한 노동조건과 처우도 개선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피해아동을 보호하고 돌볼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피해아동들도 잘 보호되고 안정될 것이다.

무엇보다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질 자체가 향상돼야 한다. 임금이 인상되고, 고용이 안정되고, 주거가 안정되고, 보육, 의료, 교육, 돌봄 등에서 제대로 된 공공서비스들이 대폭 확대돼야 한다. 이리 될수록 아동학대를 더 크게 줄일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자본주의의 우선순위에 대한 도전이다. 체제 전반이 이윤율 저하 위기에 빠진 지금, 더욱 그렇다. 그러나 전쟁무기에 300조 원을 쓸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쓰게 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본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 궁극으로 아동학대를 막는 획기적인 대안은 극소수를 위한 착취와 차별을 통해 유지되는 자본주의를 끝장내고 대다수의 필요를 중심으로 운영될 새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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