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왜 스스로 만든 질병을 치료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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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의 치명적 특성은 바이러스 자체의 성질보다는 그 바이러스가 계속 피해를 입히는 전지구적인 사회적 맥락에서 주로 비롯한다.
세계 인구 집단들의 건강 상태는 상이하다. 국제 자본은 유전적 요인이나 생활 습관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사회적·정치적 요인 때문이다. 사회적 요인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으로 보면, 우리의 일상 건강과 병내성(病耐性)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유형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당뇨·심장병 등 소위 ‘비전염성 질병’들(NCD, 사회적 전염병이라 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이 더한층 유행한 것은 1980년대 이후 착취율과 긴축의 증대와 직결돼 있다. 이런 조건은 노인, 유색인종, 저임금 노동자 등 특정 인구 집단을 코로나19에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특정 바이러스의 영향이 사회적 조건에 따라 증폭·악화되는 현상을 일컬어 ‘신데믹’이라고 한다.
‘더 많은, 더 강력한 항(抗)바이러스제가 해답’이라는 생각이 과학계에서 지배적이다. 선구적인 마르크스주의 생물학자 롭 월러스는 이를 ‘분자 수준의 서사’라고 부른다. 질병·건강 문제를 자연 대 과학의 투쟁으로 환원하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장기적 해결책은 단지 백신을 더 많이 만드는 것에 기초할 수 없다.
9월에 영국 의학 저널 〈랜싯〉의 편집자이자 진보 성향 의학자들의 대표 주자인 리처드 호튼은 이렇게 말했다. “신데믹의 특징은 여러 조건과 상태가 생물학적·사회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질병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을 높이고 건강 상태를 악화시키는 것이다. 코로나19의 경우, 비전염성 질병에 대처하는 것이 성공적인 방역의 전제 조건이다.
“대개 저임금이고 사회복지 보호가 줄고 있는 노년층, 흑인·아시아인, 소수인종·민족 집단, 필수 노동자들의 취약성은 여태껏 무시되기 일쑤였던 진실을 가리키고 있다. 즉, 아무리 치료제나 백신이 효과적이어도, 순전히 생물의학적인 코로나19 대책만 추구한다면 실패하리라는 것이다.”
세계 곳곳의 인구에 대한 백신 상용화를 목전에 둔 지금, 이런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무엇보다, 백신의 성공이 보장된 상황이 아님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화이자가 서둘러 출시한 백신은 제4상 임상시험을 앞두고 있다. 제4상 임상시험은 인구 전반을 상대로 백신을 대규모로 테스트하고 부작용을 관찰하는 기간이다. 스트래스클라이드 대학교 출신 면역학자이자 평생 백신 업계에서 일했던 나의 장인이 말씀하셨듯, 부작용은 “붉은 반점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오늘날 제약 산업의 특성을 다시 설명하지는 않을 것이다[관련 기사: 본지 330호 ‘자본주의 경쟁이 백신 개발을 망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우려할 점들이 있다. 실험의 세부 사항에 대한 우려도 많다. 백신이 이토록 빨리 생산된 것을 보면, 이 백신뿐 아니라 생산 공정에 있는 다른 백신들에 대해서도 이제껏 테스트가 얼마나 철저하게 이뤄졌는지 의구심이 든다.
예컨대, 옥스포드에서 현재 개발 중인 아스트라제네카의 백신은 첫 번째 투여량을 절반으로 줄였을 때 더 효과적이라는 점이 제3상 임상시험 중에 순전히 우연히 밝혀졌다.
또, 앞서 지적했듯 많은 건강 결정 요인이 상호 작용하는 지금의 ‘신데믹’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겪은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백신을 충분히 테스트했을까? 예컨대, 이 백신은 심장병 환자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더 근본적인 우려는, 이 같은 제약 개발의 근저에 있는 동기일 것이다. 소위 ‘의료·산업 복합체’의 부와 권력, 그리고 이들이 약물 치료 과정에서 벌어들이는 막대한 수익은 이전에도 지적된 바 있다. 코로나19 백신이 11월 말쯤 개발될 수 있다는 소식이 보도되자 화이자 주가가 폭등하고 CEO 앨버트 불라가 하루만에 거의 560만 달러[한화로 약 60억 원]를 벌어들인 것은 제약 개발의 순전히 금전적인 동기를 적나라 하게 보여 줬다.
건강보다 이윤이 우선시되는 한 제약 산업의 동기를 신뢰하기는 어렵다. 그들의 제품도 온전히 신뢰할 수 없다.
이 모든 일을 보면 당연히 떠오르는 물음이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지금 같은 세계적 보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두 가지 방법으로 답할 수 있다.
첫째, 자본주의 세계 안에 사회주의 정부가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당장 취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처가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사회주의 정부라면 국민 모두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민주적이고 중앙집중적으로 전략을 구상할 것이다. 다양한 온라인 회의 플랫폼 덕분에, 민주적 토론은 한정된 공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완전히 반박됐다.
사회주의 정부는 유급 휴가를 전면 보장하고, 월세 납부와 주택 융자금 상환을 모두 중지시킬 것이다.(이런 것들은 아무런 부를 생산하지도 않으며 그저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부자의 지갑으로 고스란히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 산업 시설의 용도를 변경해 개인 보호장비 등 필요한 장비를 생산하게 할 것이다. 식료품 가격을 인하하고, 면역력을 키울 수 있는 식단을 일러주고 식량을 제공할 것이며, 외로움을 느끼거나 격리된 사람들에 대한 지원책을 마련할 것이다. 이밖에도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사회주의적 접근법은 다면적이고 지극히 창의적일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의 접근법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두 번째 측면은 근본적인 출발점부터가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주의 사회는 전염병의 위험 자체가(그리고 기후 재앙의 위험, 핵전쟁으로 인한 종말 위험도) 영원히 사라진 사회일 것이다.
본지는 자본주의가 식량을 생산하는 방식에 의해 어떻게 코로나19가 활개를 치게 됐는지를 자세히 다룬 바 있다.[관련 기사: 본지 348호 ‘진화생물학자 롭 월러스 강연①: 자본주의 하에서 팬데믹이 재연될 수밖에 없는 이유’]. 따라서 우리는 숲을 밀어서 지구를 헐벗게 하고 토양의 천연 양분을 고갈시키는 공장식 축산과 산업적 농업을 끝장내야 한다. 그리고 계획적이고 집단적으로 운영되며 안전하고 인도적인 목축업, 지속 가능하고 인류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는 농업을 도입해야 한다.
그러려면 자본주의를 끝장내야 한다.
이 글은 영국의 혁명적 좌파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 2020년 12월호에 실린 ‘Why capitalism can never be the cure for the sickness it creates’를 발췌·번역한 것이다.